그에게는 오랜 기간 함께한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마음속 비어 있던 2%가 채워지는 것 같았다.
가족처럼 편했고, 그녀와 함께 있을 때면 세상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듯했다.
퇴근 후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은 언제나 마음이 들떴다.
설렘이라기보다, 그녀와 있으면 재밌고 편하고 사랑스러워서 그저 만나러 가는 길이 기다려지고 신이 났다.
평일엔 직장생활로 지쳐있어도,
주말에 그녀와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했다.
그 사실 하나로 힘든 평일을 버틸 수 있었다.
그들은 차를 타고 수도권 근교로 바람을 쐬러 가기도 했고,
여러번 전국 곳곳 캠핑을 다니기도 했다.
가끔은 설렘과 기대감을 가득 안고 제주도나 해외로 여행을 떠나며 평범한 연인들처럼 행복한 추억을 쌓아갔다.
특히 여행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배로 만들어주는 공항에서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 큰 행복이었다.
그가 반지하에 살고, 그녀가 고시원보다 조금 넓은 원룸에 살 때에도
둘이 함께라면 그 좁은 공간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아늑했다.
계란감자마요네즈 샌드위치나 주먹밥, 제육덮밥 등을 해 먹으며,
나란히 앉아 서로 장난치며 TV를 보던 그 시간이 행복이었다.
그는 그녀와 함께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행복했다.
그가 혼자 고향에 내려갈 때도,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그녀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녀가 멀리서도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그의 마음은 충만했다.
물론 권태기가 찾아올 때도 있었다.
매일 마주하던 얼굴이 무심해 보일 때가 있었고,
서로에게 싫증이 스며들던 시기도 있었다.
그렇게 작은 틈이 쌓여 한번은 결국 한 번은 서로 헤어진 적도 있었다.
그도, 그녀도 이제 만날만큼 만났으니 이쯤이면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헤어지고 나니, 그녀와의 추억이 계속 아련하게 떠올랐다.
그녀에게 했던 화풀이, 자유를 속박하던 말과 행동들 하나하나가 생각났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마음 한 구석이 짓눌리고 뭉개졌다.
슬픈 노래를 들을때면 애잔하고 그리운 마음이 배가 되었고, 결국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서로 헤어진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였다.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보고 싶어. 생각나서 전화했어…”
수화기 너머 그녀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는 기쁜마음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한 시간 넘게 달려갔다.
그리고 문이 열리는 순간,
마치 어제도 본 것 같은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통통한 볼이 아이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녀였다.
그가 너무 반가워하자, 그녀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괜히 먼저 전화했다."
서로 싸우거나 삐질 때마다 먼저 사과하는 쪽은 늘 그녀였다.
심지어 그가 잘못했을 때조차도.
질투 많고 의심 많은 그의 마음이 문제였는데, 그녀는 그럴 때마다 넓은 품으로 그를 안아줬다.
“내가 항상 먼저 사과하고, 오빠는 먼저 사과한 적 없잖아.”
언젠가 그녀가 그에게 했던 말이다.
훗날, 그 말이 그의 삶을 오래도록 울리는 메아리가 될 줄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는 그렇게 먼저 사과해주는 그녀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쓸데없이 자존심만 세우던 그는
마음 넓은 그녀 앞에서 언제나 작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가 그에게 말했다.
“우리 이제 결혼 일정 잡자.”
그때의 그는 몰랐다.
행복의 절정이 끝나가고,
삶을 바꿔놓을 큰 변화가 다가 오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