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의 무게 속 소소한 숨결들

by 차밍

모두가 잠든 새벽, 그녀는 갑자기 몸을 일으켜 흐느꼈다.

“너무 무서워…”


그는 잠결에 일어나 서둘러 말했다.

“걱정하지 마. 괜히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몸에 안 좋아.”


그는 그때는 몰랐다. 그 말이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공감 대신, 그는 그녀를 꾸짖었다.

그는 두려움 앞에 서툴렀다.


저녁을 먹고나면 둘은 마당에 나가 간단한 체조로 몸을 풀었다.

그는 짜고 탄 음식, 구운 고기 같은 것들을 그녀가 최대한 못먹개 했다.

“먹는 즐거움도 조금은 남겨줘.”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얼마 전 제주도에서 촬영한 웨딩사진앨범이 집으로 배송됐다.

앨범 속 그녀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활짝 웃으며, 그와 나란히 손을 잡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다.


그는 사진 속 그녀를 보는 순간, 가슴이 깊숙이 아픔이 밀려왔고 숨을 쉴수 없었다.

먹먹함이 가슴 안에 넓게 퍼지면서 두려움과 불안이 머릿속을 휘감았다.


이런 천사를 잃을 수 있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싫었지만,

이미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현실 앞에서, 그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메이크업 숍에서 직원이 새하얗게 분칠한 그녀의 얼굴을 보여주며 “예비신부 어떠세요?” 하고 묻자,

그는 순간 농담처럼 그녀를 보며 “너무 하얘서 할머니 같다”라고 답했었다.


하지만 지금 앨범을 펼쳐보니, 그 얼굴은 분명 천사의 얼굴이었다.

웨딩촬영하면서 결혼에 대한 두려움을 잠시 가졌던 것도 죄책감이 몰려왔다.


항암 주기로 주어진 3주 동안 그는 작은 방안에서 암 완치 경험담이 담긴 책들을 여러 권 읽었다.

책마다 말이 달랐다.


현대의학만 믿어라, 자연치유에 집중하라

고기는 절대 먹지 말라, 아니 고기도 꼭 먹어야 한다…

너무나 다른 주장들 속에서 그는 혼란스러웠다.


결국 그는 의사 출신 저자가 쓴 책에 마음을 기댔다.
거기에는 과장이 없었다.


현대의학을 믿어야 한다는 말, 건강식품을 조심하라는 경고가 특히 마음에 남았다.
주변 사람들은 암 환자에게 여러 건강식품을 권했지만,
그 책에서는 오히려 치료를 방해할 수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암 환자는 가리지 않고 잘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지금은 음식을 고를 여유가 아니라, 힘을 보태야 할 때라는 것이다.


그 책을 쓴 이는 서울대 의대 교수였고,
말기암이라는 냉혹한 판정에도 불구하고 5%의 희박한 확률을 넘어 완치에 이른 사람이었다.


그의 기록은 그에게 희망처럼 다가왔다.

그 책을 읽을 대마다 그는 잠깐이나마 가슴을 죄어오던 불안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시간은 흘러 첫 항암 후 3주가 지나고 병원에 가는 날이 돌아왔다.
검사를 마치고 의사실에 들어갔을 때, 그들을 기다린 건 실망스러운 소식이었다.

암의 크기가 그대로라는 것이었다.

그와 그녀, 그리고 언니 모두 낙담했다.

그는 완치 사례로 읽었던 교수의 책 내용을 떠올렸다.
그 교수는 첫 항암만으로도 암이 줄기 시작했는데, 그녀는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글에서 본 내용을 떠올렸다.
젊은 나이는 암세포가 더 활발해 치료가 불리할 수 있다는 말.

나이가 많은 교수가 오히려 유리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녀는 담담했지만 속 깊은 곳에서는 실망이 번졌다.
그녀 언니는 “그래도 커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며 애써 긍정적인 말을 해 주었다.


의사실을 나와 다시 병실로 향했다.

두 번째 항암 치료를 마치고 돌아오자, 또다시 3주의 휴식기가 주어졌다.


그는 이번에는 더 독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우리 산책하면서 억지로라도 웃어보자. 웃으면 몸이 좋아진대.”

웃고 싶은 상황이 아니었지만, 둘은 억지로라도 웃으며 길을 걸었다.

서툰 웃음이었지만, 잠시나마 무거운 마음을 덜어주는 순간이었다.

작은 방에 나란히 앉아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암에 대한 걱정을 잠시 잊던 시간,

거실에서 그녀의 가족과 함께 영화를 몰입하며 본 순간들은

그와 그녀에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었다.


그녀의 고향에서 함께 지내는 동안, 친구들도 그들을 찾아왔다.
함께 녹차밭을 거닐고, 바닷가에서 소박한 캠핑을 즐겼다.


친구들과 자연이 어우러진 시골 마을에서 보내는 시간은
마치 오랜만에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을 주었다.
그녀 역시 모처럼 웃음을 보이며 즐거워했다.

그 순간만큼은 투병의 무게를 내려놓고,
잠시나마 삶을 밝히는 소중한 숨결이 되어주었다.


그의 가족도 그녀의 집을 찾았다.
그는 혹시 그녀가 불편할까 봐 오지 말라고 했고, 심지어 부모가 고집을 꺾지 않자 화까지 냈다.

부모는 그런 그의 태도가 서운했지만, 결국 자식과 며느리 같은 그녀를 향한 걱정이 더 컸다.


아버지는 작은 방이 추울까 창문 틈을 막으라며 비닐과 커튼을 챙겼고,

바닷가에서 직접 해산물을 따 와 “몸에 좋다”며 내어주었다.

어머니도 좋다는 음식을 손수 준비해왔다.

멀리서 찾아온 그 가족을 그녀는 환하게 맞이했다.

함께 녹차밭을 거닐며 사진을 찍고, 저녁엔 밭에서 열린 작은 행사까지 구경했다.


그렇게 하루를 가족과 함께 보내며,

걱정과 따뜻한 마음이 뒤섞인 채 평화로운 시간이 흘러갔다.


그는 산속 깊숙이 피톤치드를 마실 수 있게 캠핑 트레일러까지 마련했다.
그녀는 굳이 산속까지 들어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는 반강요처럼 이끌었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위해 애쓴다는 걸 알았지만, 때로는 그 마음이 족쇄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두 번째 3주 역시 흘러갔다.
그 시간은 소소한 웃음과 억지로 만든 희망으로 버텨낸, 무겁고도 소중한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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