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동생에게 생긴 호텔 무료 숙박권 덕분에, 지방에 계신 엄마와 이모가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오셨다.
내가 사는 서울에 가족이 온다는 소식만으로도 마음이 들떴다.
함께 호텔 뷔페를 먹고, 서울을 돌아다니며 웃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온종일 설렘이 가시질 않았다.
토요일 저녁, 나는 KTX역으로 가서 엄마와 이모를 태우고 강서구의 4성급 호텔로 향했다.
서울의 가을밤, 도심의 불빛 사이로 차를 몰고 가는 동안 마음속엔 뿌듯함이 피어올랐다.
‘이번엔 내가 가족을 위해 서울을 보여드릴 차례야.’
그동안 나는 블로그를 통해 서울 곳곳의 아름다움을 기록해왔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자신 있었다.
서울의 매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내가, 엄마와 이모에게 가장 멋진 시간을 선물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호텔 뷔페에서의 저녁은 완벽했다.
오랜만에 엄마와 이모네가 함께 만나 4성급 호텔 저녁뷔페를 먹는 것만으로도 해외 여행 온 것만큼 기분이 좋았다.
뷔페의 따뜻한 조명 아래서 엄마의 얼굴은 오랜만에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마침 호텔 옆 거리에서는 강서구 축제가 한창이어서 우리는 뷔페를 든든히 먹고 밖으로 나갔다.
무대에서는 노래가 울려 퍼지고, 거리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악세사리와 소품, 다양한 길거리 음식 냄새가 뒤섞여 활기 넘치는 밤공기를 만들어냈다.
엄마와 이모는 “역시 서울이 좋다”라며 연신 감탄을 하셨다.
손잡고 사진을 찍으며, 오래 기억될 만한 저녁을 보냈다.
그날 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이 순간이 오래도록 기억되길 바랐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호텔로 돌아와 엄마와 이모는 객실로 들어갔고,
나는 사촌동생을 KTX역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다음 날 아침 엄마와 이모를 만나 뷔페를 먹고 서울을 구경 다닐 생각에 오랜만에 편안한 설렘과 기대가 마음속 깊이 피어올랐다. 아, 이게 바로 행복이구나 싶었다.
사실 그 이전, 금요일 퇴근길부터 계속 이런 편안한 설렘을 느끼고 있었다.
토요일 저녁에는 호텔 뷔페 음식과 행사 축제로 이미 충분히 만족스럽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 일요일, "서울의 중심가, 진짜 서울의 매력을 보여주리라!" 다짐하며 새벽 일찍 일어났다.
서울 어디를 돌아다닐지 머릿속으로 꼼꼼히 정리한 후, 엄마와 이모가 머무는 호텔로 향했다.
호텔 뷔페는 언제나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것 같다.
시원하게 뻥 뚫린 풍경이 내다보이는 넓은 통창이 있는 화려한 식당에 들어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뷔페 음식들을 고르고 담아온 후,
자리에 앉아 여유롭게 먹는 그 순간이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이자 묘미였다.
조식 뷔페에서 샐러드, 스크램블 에그, 과일, 요거트, 커피까지 든든히 먹고 객실로 돌아가 가볍게 뒷정리를 마친 후, 체크아웃을 하고 드디어 본격적인 서울 나들이를 떠났다
나와 엄마, 이모 이렇게 셋은 내 차를 타고 서울 중심가로 향했다.
전날까지 비 내리고 흐리던 날씨가 그날만큼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맑고 선선한 가을 날씨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나는 서울 종로 북악산 주변 고궁들과 어우러진 감성 카페들이 즐비한 도심 속 한옥의 정취를 엄마와 이모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현실은 달랐다.
오전 약간 이른 시간이라 그랬을까,
내가 자신 있게 믿었던 서순라길 풍경은 쓰레기가 여기저기 흩날리고 텅텅 비어 있는 지저분한 골목길 그 자체였다.
카페들은 모두 셔터 문을 내린 상태였고, 길을 다니는 사람들도 거의 없어 마치 황폐한 거리 같았다.
엄마와 이모에게 "서울 중심엔 가볼 만한 예쁜 곳이 많다"고 자신 있게 말했던 나는 너무 민망했다.
이모는 그런 내 마음을 아셨는지 "나이가 들어서 이젠 어디 예쁜 곳도 잘 안 찾게 되고,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좋다"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날 처음 깨달았다. 사람들이 많고 적음에 따라, 그리고 가게들이 문을 열었는지에 따라 그곳의 분위기가 얼마나 큰 영향을 받는지 말이다.
민망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서순라길을 걷던 나는 엄마와 이모를 이끌고 서순라길 근처에 있는 창경궁으로 향했다.
창경궁 내부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사람들이 있었고, 넓고 푸른 정원들과 아름다운 선의 기와지붕을 얹은 고궁들이 어우러져 운치 있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편안하게 천천히 산책하며 힐링하기 좋은 곳이었지만, 서울 구경에 들떠 있던 엄마와 이모에게 이런 운치 있고 산책하기 좋은 곳은 사실 지방에도 흔한 곳이었다.
나는 엄마와 이모에게 보여줄 곳으로 세 군데를 미리 선정해 놓았었다.
바로 서순라길, 북악산 뷰 카페, 그리고 용산가족공원이었다.
서순라길은 완전 대실패였지만, 근처에 있는 창경궁과 종묘 덕분에 그나마 조금 회복한 셈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의 타격은 컸다.
내가 애초에 보여주고 싶었던 서울 종로의 감성적인 매력을 전하기엔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회심의 일격 같은 마음으로 두 번째 장소, 북악산 뷰 카페로 향했다.
그곳은 북악산 중턱에 위치해 있어서 주변에 아름답게 가꿔진 정원과 웅장한 북악산 한복판에 있는 곳이었다.
옥상 테이블에 앉으면 아래로 넓게 펼쳐진 서울 도심과 멀리 남산타워까지 보이는,
인기 만점 뷰 맛집 명소 카페였다.
점심시간쯤 카페에 도착했는데,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주차 공간도 없었다.
나는 엄마와 이모를 우선 카페 앞에 먼저 내려주고, 오르막길을 걸어서 20분 거리에 주차를 한 다음 다시 카페로 내려왔다.
하지만 엄마와 이모는 그 카페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카페 앞에서 손수 만든 옷들을 파는 작은 길거리 가게에 훨씬 더 관심 보였다.
거기서 엄마와 이모는 바지와 스카프를 샀는데, 엄마는 사장님과 재미있게 가격 흥정하던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카페 뷰보다 옷가게를 더 좋아하신 거였다.
게다가 카페 옥상 밖에 있는 테이블은 녹이 슬고 더러웠다.
깔끔한 걸 좋아하시는 엄마와 이모에게는 아무리 그 테이블 앞 뷰가 좋아도 소용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카페를 나와 다른 곳으로 가기로 했다.
이렇게 두 번째 계획도 실패로 돌아갔다.
게다가 엄마와 이모는 차를 타러 다시 20분을 등산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카페도 만족해하지 못하고 괜히 힘들게 등산만 20분 더 한 꼴이라,
엄마와 이모를 즐겁게 해드리고 싶었던 내 마음은 계속 신경이 쓰였다.
이제 마지막 코스인 서울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용산가족공원이 남았다.
용산가족공원을 들리면 엄마와 이모가 탈 KTX 출발 시간에 맞춰 서울역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을 돌아보며, 이번엔 계획대로 하지 않기로 했다.
굳이 뭔가 더 좋은 곳을 보여주려고 했던 내 욕심이 문제였고, 그러다 보니 마음이 급해지고 모든 일이 계속 꼬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와 이모에게 잘해드리고 싶은 욕심이 너무 많아서 더 좋은 곳을 보여주려다가 오히려 일이 더 잘 안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서울역 바로 앞에 있는 고가다리에 조성된 공원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계획을 내려놓고 더 좋은 곳이 아니더라도 여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을 선택한 거였다.
다행히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오히려 이전에 갔던 두 곳보다 더 기억에 남고 좋았다.
엄마와 이모 모두 만족해하셨다.
그리고 서울역 안 식당에서 여유롭게 점심을 함께 먹고도, 기차 출발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아 그동안 서울역 안 아울렛을 구경하기로 했다.
엄마와 이모끼리 돌아다니기로 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모는 내게 고생했다며 5만원까지 쥐여주셨다.
엄마, 이모와 그렇게 헤어지고 혼자가 되어 집에 돌아오니 뭔가 마음이 허했고, 가족이 그리웠다.
어렸을 때 가족과 멀리 떨어지면 슬퍼서 울었던 그 순간과 비슷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엄마가 집에 도착했다고 전화가 왔다.
나는 그리운 마음 가득 담아 엄마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었다.
전화를 끊고 다시 혼자가 된 후, 나는 이 외롭고 그리운 마음과 친해지고자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마침내 평온한 시간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설레고도 편안하고 반가웠던, 하지만 조금은 애틋한 주말 시간이 지나갔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정말 잊을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주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