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괴로운 나, 피카소처럼 즐길 수는 없을까?

by 차밍

유튜브 쇼츠나 tv 같은 콘텐츠를 보다보면 블랙홀처럼 빠져든다.

하루종일도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반대로 독서, 글쓰기, 명상, 운동 같은 활동은,

조금만 해도 어서 끝내고 도파민 자극 활동으로 탈출하고 싶어진다.

계속 하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건강한 삶을 위해 도파민과 세라토닌이 5:5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인내가 필요한 활동으로 인생의 절반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선뜻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세라토닌 활동을 한 뒤에 느끼는 도파민의 질이 더 높다

도파민 비율이 높을수록 그 자극의 질은 점점 떨어진다


차라리 적더라도 질 높은 도파민이 맘껏 누릴 수 있는 질 낮은 도파민보다 좋다.

소고기 1인분이 라면 3인분보다 낫듯이.




내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그리고 도파민의 질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세라토닌 활동을 붙들고 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 활동들 자체를 도파민 활동처럼 만들 수는 없을까


보상을 상상하며 인내로 버티는 방식이 아니라,
활동 그 자체에 블랙홀처럼 빠져드는 방법은 없을까.

피카소가 그림을 좋아하고, 베토벤이 피아노를 사랑했듯이


글쓰기의 진짜 재미는 무엇일까? 독서는? 운동은?


문장력이 늘기 위해,
새로운 사실을 하나 더 알기 위해,
근력을 키우기 위해.

그 보상을 얻었을 때의 뿌듯함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은 없을까.


글쓰기를 영화나 드라마를 보듯 몰입해서 할 수는 없을까.

독서를 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나누듯 즐길 수는 없을까.

운동을 스포츠 경기처럼 뛰어들 수는 없을까.


세라토닌 활동을 미래를 위한 투자로만 두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이렇게 적다 보니 한 가지 공통점이 보였다.

즐거움에는 항상 ‘대상’이 있었다.


영화에는 배우가 있고,
대화에는 사람이 있고,
스포츠에는 경쟁자가 있다.


나는 독서와 글쓰기, 운동을
혼자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혼자 읽고, 혼자 쓰고, 혼자 움직였다.

그래서 세라토닌 활동들은 고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과 소통한다라고


글쓰기는 내 자아와 나누는 대화.

독서는 저자와 시간을 건너 나누는 대화.

운동은 내 몸과 솔직하게 마주하는 대화.


이렇게 바라본다면
이 활동들은 더 이상 ‘버텨야 할 일’이 아니라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이 되지 않을까.


나 혼자가 아닌 내 자아와 함께

세라토닌 활동을 다시 이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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