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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튜나 Nov 11. 2023

[아파트공화국]: 서울은 아파트 천지

근대 산업화의 유산, 주거가 아닌 위력의 상징물

서울은 아파트 공화국

이번에 읽은 [아파트공화국]이라는 책은 약 3년 전 대학생 시절, 지리학과 수업 중 '사회지리학'이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알게 되었다. 지리학도 굉장히 마이너한 학문인데, 여기에 사회까지 붙어버리니 조금 머리 아플 수 있지만, 우리 주변에서 나타나는 사회현상을 지리적, 공간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학문이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지리적 관점의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익숙한 경관을 새롭게 보는 것"이다. 이 맥락에 따라 사회지리학에서는 특정한 사회 현상을 새롭게, 다른 관점에서 조명할 필요가 있다. 아파트라는 건축 형태는 한국, 특히 경기 및 서울의 수도권에서 오래 생활해 온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하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발레리 줄레조에게 한국의 아파트단지는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예컨대, 한강변에 넓게 펼쳐져 있는 압구정 현대단지와 잠실 주공단지는 대한민국 아파트 건축의 성공적인 역사적 사례이며 강남의 아파트 개발을 대표하는 상징적 단지들이지만, 다른 문화권에 있는 연구자에게는 "병영이나 병참, 군수공장"의 느낌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과 같이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수도 서울의 변두리가 아닌 새로운 중심부에 존재한다는 것이 특수한 현상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발레리 줄레조는 이러한 한국의 아파트를 새로운 관점에서 매우 넓고 심도있게 분석하고 있다. 


한국에 아파트 대단지가 이렇게나 많은 이유

프랑스 출생 백인 여성이자 지리학자라는 정체성을 가진 줄레리 발레조는 프랑스와 한국의 '아파트'를 다양한 부분 - 공동주택정책, 정부의 성격, 사회문화적 인식체계 및 맥락 등 - 에서 비교분석하며 글을 전개한다. 본 연구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한국에 아파트 단지가 많은 이유는 1) 발전주의적 독재정권의 관점에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설은 주택의 현대화를 상징하면서 한국의 이상적인 근대화를 이끄는 요소였고, 2) 수요자인 국민들은 아파트의 현대성에 매료되어 중산층 편입의 훈장으로서 생각했기 때문이다. 


각 이유를 조금씩 풀어서 이야기해보자. 국내에서 아파트 건축은 1960년대 종암아파트와 마포아파트를 시작으로, 1970년대 강남 개발과 함께 압구정 현대단지, 잠실 주공아파트 대단지 건축을 통해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빠른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정부 운영에 따른 선택적 집중 투자, 재벌 기업에 대한 정책적/경제적 지원이 있었다. 다양한 산업 분야 중에서도 건축, 특히 '아파트'의 존재는 한국의 산업화/근대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일종의 기호였는데, 이는 실제 거주환경의 변화, 즉, 허름한 한옥과 초가에서 깨끗하고 새로운 아파트로 이동해 가는 모습이, 과거 전후국의 어두운 국가관을 버리고 세계적 표준에 가까워지는 근대적 세계로의 이동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밑바탕에는 서구화를 현대화로 이해하는 문화적 맥락도 깔려있다.).


아파트 신화가 구축되는 데에 정부가 위와 같은 입장을 가졌다면, 성장하는 대한민국의 실질적 산업역군인 국민들은 아파트를 중산층 입성의 기준으로 인식하면서, 아파트 건축을 열렬히 지지하는 조력자라고 볼 수 있다. 발레리 줄레조는 산업화 시기 대한민국에서 근대/현대화와 서구화가 거의 유사한 개념으로 인식되어 있었다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본인이 현대적 주거환경인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중산층 편입여부를 판단한다고 말했다. 또한, 자산으로서의 아파트도 무시할 수 없는데, 초기 아파트 단지 건축이 주로 대한주택영단(현 대한주택공사)에 의해 계획 및 시행됨에 따라 시세보다 저렴한 주택 공급이 가능해졌고, 부동산 거래를 통해 시세 차익을 노렸던 국민들은 아파트 개발을 막을 이유가 없었다. 위 배경에 따라 중산층에 편입되면서 경제적 여유로움도 함께 확보하고자 했던 많은 국민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아파트 건축 및 대단지 재건축 계획들이 활발히 수립되기 시작했고, 이러한 열기는 1990년대 초 신도시 개발 및 아파트 공급 계획 발표까지도 이어져 갔다.


이러한 분석 결과는 저자가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땅은 좁은데 거주하려는 사람이 많으니 자연적으로 많이 지어졌다"는 당시 한국인들의 통념과 상당한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본론에는 이러한 간극을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와 자료들이 논리정연하게 설명되어 있고, 결과적으로 기존과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아파트를 고찰해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특히, 아파트의 물리적인 기능성과 효율성, 즉 실제 인구밀도를 얼만큼 높일 수 있는지, 정말로 공간 활용에 있어서 훨씬 유리한 주택 구조인지 등에 국한되지 않고, 아파트라는 주거환경으로의 변화에 따른 주민 네트워크, 생활양식, 사회문화적 인식체계 등, 매우 다양한 부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아파트 건축에 담겨 있던 산업화의 열망과 신분상승의 욕구, 그것이 현재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전달하는 메시지 또한 분명히 있을 것이다. 저자는 결론 부분에서, 한국의 대단지 아파트 단지와 사회변화의 방정식 사이에 마이너스값, 즉, 부정적인 방향이 도출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ity, 입주민과 외부인이 강하게 단절된 사회를 의미)화 되어가는 한국 아파트 단지를 보면서 점차 개인화된 사회, 파편화된 사회가 다가올 것이며, 이로 인해 단절된 사회가 구성되며 결론적으로 서울이라는 도시는 지속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러한가?"라는 질문이 들 수 있다. 현재의 한국과 아파트 시장은 비록 치솟는 가격과 여전한 공급난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오히려 지친 일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쉼터, 그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무관계의 공간으로서 현대인의 맞춤 공간이 되어왔다. 공동체, 지역사회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러한 방향성은 서울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데에 어려움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으나, 개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야말로 안전하고 자유로운 곳으로 변모하게 된다. 


오랜만에 작성하는 서평이라 다소 두서없이 내용을 정리한 감이 있어,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점들이 잘 전달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본 책에 대한 평을 요약하자면, 아파트 단지가 너무나도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새로운 관점에서 아파트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어떤 분야에서든 특정한 개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어떤 사건을 통해 어떠한 방식으로 지금까지 전해졌는지, 계보학적 관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었을 때 더 재밌었던 것 같기도 하다. 부동산과 아파트, 비교문화에 관심이 있거나, 사회/문화지리학적 접근법이 궁금한 독자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저자와 독자의 상이한 문화적 맥락에 따라 이해가 잘 되지 않거나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이 나타날 수 있지만, 오히려 해당 지점에서 나의 관점을 고민해보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책이다.


생각의 확장

1. 한국 외 동아시아 문화권 국가들의 아파트 인식은 어떠한가? 당시 한국의 정부와 유사한 성격의 정부라면, 현재에도 동일한 결과가 도출될 수 있는가?

2. 영미 문화권 특유의 개인주택 소유에 대한 열망, 도심의 박물관화는 어떠한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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