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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의글 Aug 11. 2022

차가운 피로 맹렬히 질주하는 박력 [헌트]

빗발치는 총알과 신념의 회색지대에서

서로를 향한 총알과 신념의 교착점을 향해 맹렬히 달린다.


감독 이정재의 데뷔

영화 <헌트>의 가장 큰 화제성이라고 하면 감독 이정재의 첫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배우로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던 이정재였기에 대중의 관심이 높았습니다. 또한 데뷔작인데도 불구하고 칸 영화제에 초청됐다는 소식, 절제된 서늘한 느낌이 돋보이는 예고편을 통해 개인적으로도 기대를 안고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고 감독 이정재를 중심으로 생각했을 때 훌륭한 데뷔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감독의 색깔을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중심을 잃지 않는 감독이라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영화의 스케일이 크고 다뤄지는 소재도 적지 않으며 인물과 세력 또한 많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클라이맥스를 위해 가고자 하는 길을 고수합니다. 그 길의 토대에는 감독의 각본이 있었습니다.


한 곳을 향해 맹렬히 달리는 영리한 각본

감독 이정재는 <헌트>의 각본을 작성하는 데 4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영화 헌트의 전개는 4년이라는 고민의 시간이 느껴질 만큼 깔끔하게 정돈된 인상이 강합니다. 두 인물이 서로를 향해서 의심을 하게 되는 계기와 각자를 파헤치는 이야기까지 두 세력을 중심으로 분량이 적절히 분배되어 있습니다. 두 세력이 다른 길로 새지 않고 온전히 서로의 비밀을 드러내기 위해서 치밀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관객은 그 치밀함을 따라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반전의 큰 충격에 빠집니다. 특히 <헌트>의 각본은 다음 사건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유려합니다. 이 또한 앞서 서술했던 치밀하게 질주하는 두 세력을 훌륭하게 빌드업한 각본에 기인합니다.


명분과 진심이 드러나는 순간

<헌트>의 치밀한 각본 덕분에 가능했던 선택은 후반부 이전 명분의 부재입니다. 초반부부터 조직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을 봤을 때 관객으로서 대부분의 인물이 조직만이 그들의 명분이라는 인식하게 됩니다. <헌트>가 이러한 선택을 한 이유는 영화의 후반부이자 클라이맥스 이전에 인물을 입체화하면서 영화의 피날레에서 발생하는 무대 그리고 붕괴에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관객은 영화에서 첩자로 묘사되는 동림의 정체를 궁금해했지만 동림의 정체와 각자가 숨기고 있었던 인간 박평호와 김정도의 진심과 명분이 드러나는 순간 그들의 불안정한 질주의 끝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지 지켜보게 됩니다.


각자의 신념이 뒤섞여있는 회색지대

결국 모든 배후가 밝혀지고 각자의 진심과 명분이 클라이맥스 직전에 드러나면서 클라이맥스는 여러 인물의 신념이 충돌하는 무대가 됩니다. 다만 이는 여러 인물과 세력이 한 시퀀스에서 모두 격돌하는 전개이기 때문에 난잡한 인상을 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헌트>는 이 혼란을 긴장감의 원동력으로 삼아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영리한 전개를 이어 나갑니다. 박평호와 김정도가 서로의 진실을 알았음에도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회색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전개의 변환점마다 각자의 선택이 서로의 예상을 벗어나며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즉 <헌트>의 클라이맥스는 모든 박력이 충돌하는 교착점이자 여러 신념이 분출되기 직전의 인물들, 흑과 백이 뒤섞여 있는 일촉즉발의 회색지대입니다.


같은 운명 다른 끝

영화의 두 주인공인 박평호와 김정도가 맞이하는 다른 모습의 끝도 기억에 남습니다. 동림의 정체가 밝혀지기 이전에 관객의 시선은 박평호를 따라가며 박평호와 조유정 사이의 관계를 목격하며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인식합니다. 반면에 김정도는 과거의 기억이 조금씩 나타날 뿐 인간적인 모습보다는 박평호를 향한 의심이 그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후 동림의 정체가 드러났을 때 그동안 조직의 인물들을 죽게 하고 미스터리하며 입체화되지 않았던 모습이 점점 박평호의 인간적인 모습과 겹치면서 가장 입체화된 인물로 변화했습니다. 결국 김정도는 자신이 원래 갖고 있었던 대의를 위한 명분만을 추구하며 목표를 이루기 직전에 끝을 맞이하고 박평호는 자신의 인간적 관계를 상징하던 조유정과의 만남에서 김정도와는 다른 모습의 끝을 맞이합니다.


이렇듯 감독 이정재의 데뷔작 <헌트>는 절제되고 치밀하게 설계된 각본 위에서 온전히 목표를 향해서 질주했던 작품이었습니다. 이번 해 여름 빅 4라고 불렸던 한국 대형작품 4편 중에서 돋보이는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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