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오늘 아이가 어린이집 친구에게 맞았다

- 그리그 페르 귄트 조곡 1권(op.46) 중 ‘아침의 기분’

by 피아니스트조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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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서울의 어린이집은 달랐다. 대부분이 외동아이였고, 아이들이 훨씬 어른스러우며(?) 빨랐다. 모든 면에서...

내가 말한 어른스러움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어른답다는 말은 성숙하다는 말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아이다움의 반대이기도 하다. 순수하고 순박한 느낌이 줄어든 그래서 아이답지 않게 영리한 아이들이 있었다. 나의 것을, 나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선전 포고를 늘어놓으며 철저하게 자기 것을 지키는 아이. 자기만 소중하다며 다른 아이들에게 함부로 하는 아이.




하지만 세상 어떤 아이든 집에서 사랑받고 자란 소중하고 보물 같은 존재다. 누가 더 특별하고 누가 덜 특별한 것이 없는 모두 함께 소중한 아이들인데, 그 안에서도 경계를 지으려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벌써부터 저러면 안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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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보름 정도를 집에 있다가 어린이집을 가게 됐다. 대기자 명단에 올랐던 어린이집에서 갑자기 연락을 주는 통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2주 만에 어린이집 출근을 했다. 처음 일주일 정도는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재밌게 지내다가 슬슬 10일이 넘어가니 온 몸이 근질근질했다. 아이도 나도... 이쯤에선 어린이집에 가면 좋겠다 했는데 연락이 온 거다. 새 친구들, 새 선생님을 만난다는 설렘과 두려움을 가지고 아이를 보낸 후 나는 조심스러운 하루를 시작했다. 첫날이라 아이랑 등원해서 같은 반 아이들을 잠깐 둘러보고 집으로 왔다. 괜찮을 거라 믿으면서 한편으론 괜찮지 않으면 어쩌겠어 아들을 믿어야지. 하는 막무가내 생각을 하며 돌아섰다. 하원을 하고 집으로 온 아이는 특별하게 문제는 없는 듯 별 말을 안 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다. 거의 적응이 다 됐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그즈음 일이 터졌다. 역시 인생은 항상 복병이 있다. 방심은 금물이라는 말은 왜 틀린 적이 없을까...




어린이집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아이가 친구랑 싸우다 좀 다쳤다고.


아니? 대체 무슨 일인가?


‘아이들이 지내다 보면 서로 싸울 때도 있고, 울 때도 있고, 다칠 때도 있지. 뭘 저렇게 유난이지?’라고 생각했던 소싯적의 나를 크게 가격한 기분이었다. 선생님의 전화가 무슨 큰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난 놀랐을까?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어서(그리고 대부분의 상황은 바로 달려갈 것까지는 아니다.)


선생님께 “아... 그래요?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집에서 준서랑 이야기해 볼게요.”하고 말하고서는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마음은 내 말과 다르게 움직였다. 전화를 받고 나서는 일이 잘 안 잡혔다. 괜찮지 않았다. 다행히 얼굴은 아니라고 하니 일단 애써 안심해 보기로 했다.




집에 와서 아들을 보니 표정이 영 뚱하다. 다친 데부터 보려고 상처를 찾았더니 갑자기 봇물 터지듯 울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말하는 분위기로 봐서는 어지간히 억울했나 보다. 말이 자꾸 끊긴다. 등치 큰 아이랑 블록을 가지고 노는데, 자꾸 준서가 필요한 색깔의 블록만 가져가더라는 거다. 그래서 “나도 그거 필요해” 그랬더니, “여기 있는 블록 다 내 거야! 넌 손대지 마!” 그랬단다. 이에 질세라 아들은 “이게 왜 다 네 거야? 우린 친구고 친구들은 함께 가지고 노는 거야!”라고, 내가 매번 아들한테 했던 말 그대로 했단다.




말이라면 지지 않을 아들은 계속 그 친구와 공방전을 펼쳤고, 뭔가 말로는 안 될 같았는지 그 순간에 덩치 큰 친구의 펀치가 날아온 것이다. 얼굴이 아니라고 하셔서 안심했는데, 팔뚝이 멍들었다. 허허...




이성적으로 생각해 볼 때 내가 그 아이의 엄마라면 난 오늘의 이 사태를 아는 즉시, 상대 아이 부모님께 전화를 해서 사과부터 할 것 같다. 꼼꼼히 따지자면 블록을 자기 것처럼 모두 다 차지하려고 했고, 친구를 때리기까지 했으니 이건 엄연히 그 아이의 잘못이다. 그러니까 나 같으면 무조건 전화해서 상대의 용서를 구할 텐데... 그날 밤 난 은근히 전화를 기다렸지만 그 아이 부모님은 전화를 하지 않았다. 갑자기 화가 났다. 이건 뭐지? 전화를 해도 용서를 할까 말까 하는 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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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 나도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도 자꾸 화가 나고, 아이의 아픈 팔이 걱정됐다. 집중도 안 되니 일을 좀 빨리 끝내고 어린이집에 가서 때린 아이를 만나보려 했다. 어린이집 입구를 들어서는데 선생님과 어른의 대화가 들린다. 정말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난 딱 그 순간에 멈췄다. 혹시 때린 애 엄만가?




나의 예감이 맞았다. 그 아이의 엄마였다. 엄마는 출장을 다녀오느라 이 사실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가 하루 지난 어젯밤에서야 알게 됐다. 그러고는 오늘 직접 선생님께 찾아와서 사과를 하고, 나의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중이었다. 난 우연이었지만 그 엄마의 이야기를 모두 듣게 됐다. 엄마의 이야기는 이렇다. 그 친구는 연년생 형이 있는데, 워낙 형이 등치도 큰데다가 자기 물건에 대한 애착이 커서 동생한테 양보를 하지 않는단다. 항상 집에서 형한테 당했던 아이는 어린이집에 와서 자기보다 등치가 작은 아이들을 보니 일종의 보복심리가 생긴 거다. 쉽게 말해 만만해 보이는 상대를 만나니 자기가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고 싶은 거다. 인간의 본성이 이렇다. 사실 어른도 마찬가지다. 아무튼 아이는 형이 자기한테 했듯이 그대로 아이들에게 했다. 어린이집에서는 자기보다 등치 큰 형도 없고 다른 애들은 만만했는데, 새로 온 우리 아이가 뭣도 모르고 덤빈 거다. 그 엄마는 이런 작은 아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일하는 엄마가 갖는 근거 없는 미안함 때문에 혼도 못내고 하지 말라고 몇 번 주의를 준 게 전부였단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둘의 대화를 더 이상 뒤에서 들으면 안 될 것 같아 말을 끊고 내가 인사를 했다. 그 엄마는 머리가 땅에 닿을 만큼 인사를 하면서 계속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다 자기 탓이라고.... 아... 이렇게까지 사과할 건 아닌데... 그녀는 몸도 엄청 야윈 데다 인상도 너무 선해보였다. 아들 둘을 키우며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이 상상이 안 됐다. 난 그 엄마를 보고서는 지난밤 혼자 화냈던 것이 은근 무색해서 사과는 이 정도면 됐으니 어디 가서 커피나 한잔 하자고 했다. 때린 아이 엄마와 맞은 아이 엄마가 이렇게 우아하게 마주 앉아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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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어색한 상황이지만 난 그녀를 동생처럼 대했고, 졸지에 그녀의 지나간 시간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됐다. 아이 일로 만난 건데 상담을 하고 있었다. 이미 아이가 맞고 온 일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아이가 하원을 하는 시간까지 난 이야기를 들었다. 결론은 엄마도 그 작은 아이도 지쳐 있었고, 누군가의 진정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상황이었다는 거다. 엄마가 너무 과부하된 상태여서 자신의 마음을 돌 볼 여유가 없었다. 그러니 엄마는 엄마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각각 사랑을 갈구했다.




사람은 사랑이 부족하면 신호를 보낸다. 어떤 방법으로든 ‘날 좀 봐주세요... 날 좀 봐주세요’ 한다. 좋은 표현으로 자신의 마음을 잘 전달하면 좋겠지만, 때론 표현 방법이 부정적일 수도 있다.




갓난아이들은 심각하게 우는 것으로, 유아는 떼쓰기로 그리고 조금 크면 과격한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 아들의 친구가 그런 경우다. 난 그 엄마에게 일단 엄마가 좀 더 편해지고, 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면서 사랑을 더 많이 느끼게 해주라고 했다. 이 방법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꼭 연습해야 하는 일이다. 이게 잘 안되면 아이는 어른이 돼서도 두고두고 힘들다.




역지사지.


갑자기 아이가 맞고 온 일 때문에 알게 된 그녀인데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니 그녀가 참 안쓰러웠다. 어떤 방법으로든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클래식을 좋아하지만 음악을 찾아 들을 여유가 전혀 없다는 그녀에게 메시지로 음악을 하나 보냈다.




노르웨이 작곡가 그리그의 페르 귄트 조곡 중 ‘아침의 기분’


돌아온 탕아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에 그리그가 음악을 붙인 거다. 음악의 내용을 전혀 모르고 들어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그런 곡이다.




메시지를 보낸 뒤 잠시 후 답이 왔다. “언니.... 얼마 만에 음악을 듣는 건지 모르겠어요... 오늘 이 아침에 너무나 평온한 음악 들으니 행복하네요. 너무너무 따뜻해요. 출근길에 전철에서 듣다가 감격해서 울 뻔했어요... 고맙습니다...”




그래... 내가 그녀가 되어 보니 이런 음악이 듣고 싶더라...


누군가가 내 마음을 읽어준다는 거.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해준다는 거.


참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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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그 페르 귄트 모음곡 1권(op.46) 중 ‘아침의 기분’


https://youtu.be/kzTQ9fjf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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