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벼르고 있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1860~ 1911, 오스트리아)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말러의 삶을 들여다보려니 조금 겁이 났습니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너무 마음이 무거워질 것 같아서 미루다 미루다 첫 글자를 썼습니다.
그럴 때 있죠? 내 기운도 부족해서 하루 할당치만큼만 충전해서 간신히 살고 있는데, 그나마 있는 기운마저 빠지게 만드는 사람들. 세상 걱정 근심 다 끌어안고 사는 사람, 매우 예민해서 모든 것에 날이 서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과 같이 있다 보면 동시에 제 마음도 처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에게 말러가 그랬습니다. 기운 빠지게 하고 받아들이기 버거운 말러를 회피했습니다. 때론 말러의 웅장하고 큰 볼륨의 음악 때문에 머릿속이 더 시끌사끌 해지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요즘 말러의 슬픈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됐습니다.
영화 <베니스의 죽음>
말러가 불편했던 나에게
말러의 음악은 길이도 굉장히 길고, 멜로디도 복잡할 뿐만 아니라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서 그냥 흘려들어선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비슷한 연배의 프랑스 작곡가 끌로드 드뷔시 (1862~ 1918, 프랑스)와 비교해도 분위기가 정말 달라요. 짧다는 교향곡 1번이 50분, 제일 긴 교향곡 3번은 무려 100분이나 됩니다. 굉장히 철학적인 음악이기도 하고, 집중하고 듣지 않으면 끝까지 들어내기도 힘들죠.
저에게 말러라는 사람은 복잡한 내면을 가진 굉장히 불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은 말러가 편해졌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아요. 여전히 그의 삶과 음악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제 마음 그릇이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음악은 좀 달라요. 그나마 제가 말러를 듣고 아주 불편하지 않았던 몇 곡 중 하나인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를 소개합니다.
구스타프 말러. 19세기 후반 벨 에포크 시대에 어울리는 오스트리아 작곡가입니다. 보헤미아 태생이지만 오스트리아의 독일어권 지역에서 살았고 유태인인 그의 출생 때문에 삼중의 이방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말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말러리안이라고 하는데, 생각보다 클래식 애호가 중에서 말러리안이 많아요. 말러리안이라는 단어는 바그너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바그너리안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을 찾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말러는 바그너를 좋아하고 그의 음악을 많이 참고했으니 그 또한 바그너리안입니다. 현대 작곡가 중엔 14살 연하인 아놀드 쇤베르크와 쇤베르크의 제자 알반 베르크 등이 말러리안입니다. 교향곡 5번은 말러리안이 되는 입문곡으로 좋은 곡입니다.
교향곡 5번은 전체 5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악장들을 묶어 1,2,3부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1부는 1, 2악장, 2부는 3악장, 3부는 4, 5악장입니다. 목관 악기인 플루트 4대, 오보에 3대 , 클라리넷 4대, 바순이 3대에, 금관 악기 호른이 무려 6대, 트럼펫 4대 그리고 큰 트럼펫이란 뜻의 트롬본이 3대, 금관 악기 중 가장 저음역을 나타내는 튜바가 연주됩니다.
마지막으로 팀파니, 큰북, 작은북, 실로폰처럼 생긴 글로켄슈필, 심벌즈, 트라이앵글, 큰 징과 비슷한 탐탐, 딱따기 등과 같은 타악기 군도 만만치 않은데, 화룡점정인 하프도 등장합니다. 오케스트라의 4개 그룹 악기 (현악기, 목관, 금관, 타악기가 골고루 들어가는 제대로 된 음악이죠.
등장하는 악기 개수만 살펴봐도 대규모 음량의 곡임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말러의 연주엔 항상 무대가 꽉 차게 연주자가 등장합니다. 그렇게 웅장한 음악이 대부분인 말러의 곡이지만 이 4악장은 다릅니다. 이 악장은 아다지에토라는 빠르기 말을 가지고 있는데, 아다지에토란 아다지오보다 조금 빠르게란 뜻으로, 아다지오는 느리게와 아주 느리게의 중간 빠르기를 말합니다.
영화 <베니스의 죽음>에 거의 ost처럼 흘러서 이 곡을 영화음악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베니스의 죽음>은 독일 소설가 토마스 만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6년 만인 1971년에 이탈리아의 비스콘티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죠.
토마스 만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은 미모의 소년을 보며 느꼈던 마술 같은 느낌을 직접 서술했습니다. 아내가 있는 늙은 작가가 젊은 청년을 보며 느꼈던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강렬하고 묘한 이끌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는 자신이 생각해오던 젊음의 이상향을 보고서는 넋을 잃습니다. 영화에서는 비스콘티 감독이 소설 속 작가 대신 주인공을 작곡가로 바꿔 표현했는데, 영화 속 주인공은 흡사 말러를 보는 듯합니다. 아이가 죽는 스토리나 본인이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상황이 말러를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확실하게 합니다.
4악장은 사랑을 노래하면서 슬픈 악장입니다, 오롯이 현악기와 하프로만 연주되는 악장. 어쩌면 말러의 교향곡 중에 가장 듣기 감미로운 이유는 특별한 악기 구성 덕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좋아했던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시선의 동기가 인용되었고 마지막에는 베이스 파트에서 자신의 가곡을 다시 사용합니다. 말러의 뤼케르트 시에 의한 가곡 <나는 세상에서 잊히고>입니다. 말러의 교향곡은 그에게 하나의 거대한 세계나 다름없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지휘자·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출구 없는 말러의 음악
말러의 음악은 출구 없는 음악입니다. 입구는 있지만 출구가 없는, 한 번 빠지면 당최 헤어 나올 수 없는 마력의 음악이죠. 그런가 하면 말러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꽤 많습니다. 듣기도 어렵고 연주하기도 긴 음악 말러를 두고 우스개 소리로 ‘말러는 말을 말라’며 농담했던 대학시절 선배들이 생각납니다. 말러는 워낙 국적도 논란의 여지가 많고 살면서 격동의 순간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맨 정신으로 듣기 힘든 말러 음악. 그는 음악이라는 장치를 빌어 세상 사람들에게 할 말이 참 많았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교향곡이란, 하나의 세계를 이룩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기술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 말했던 말러. 이 문장만으로도 말러가 교향곡에 쏟은 애정을 짐작할 수 있어요. 그는 모든 자신의 경험과 음악에 대한 실험정신을 교향곡에 투사했습니다.
말러가 교향곡 5번의 작곡을 시작한 건 1901년인데,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했던 그는 1902년 심각한 장출혈을 겪고 난 후 교향곡을 완성합니다. 비록 말러는 교향곡 5번에 어떤 표제도 붙이지 않았지만 1악장의 절규 어린 선율의 장송 행진곡으로 시작해서 경쾌한 5악장으로 끝을 맺습니다. 교향곡 5번은 죽음의 위기와 결혼의 행복이라는 두 가지 사건을 표현합니다.
말러는 1898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선출됩니다. 이때 뵈르터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알프스 마이어니히의 별장을 구입하고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위대한 작품들을 창조하기 시작합니다. 마이어니히의 별장에서 보내는 말러의 여름휴가는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별장의 오두막에서 말러는〈교향곡 제5번 C#단조>를 작곡하기 시작합니다. 말러가 교향곡 제5번 작곡에 착수한 1901년, 그는 심각한 장출혈을 겪으며 건강을 잃지만, 이듬해 교향곡도 완성하고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알마와 결혼하면서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시절을 보냅니다.
말러를 이야기하면서 빠질 수 없는 여인이 바로 그의 부인인 알마 말러(Alma Mahler)입니다. 그녀는 오스트리아의 화가 에밀 자콥 쉰들러의 딸로 태어난 알마는 ‘빈의 아름다운 꽃’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수많은 남자들과 사랑을 합니다. 음악에 재능이 있었으며 총명함과 아름다운 외모로 예술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요. 그녀는 예술가의 영혼에 금방 사로잡히는 여인이었습니다. 알마는 남자의 외모나 성격보다는 그 사람의 예술가적 기질을 높이 샀으니, 그녀와 사랑을 했던 상대가 모두 훌륭한 예술가였다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알마는 말러가 평생 사랑한 여인이었던 동시에 그를 계속되는 불안에 빠지게 만든 여인이기도 합니다. 말러는 스물세 살의 알마와 결혼해 ‘푸치’라는 애칭으로 불렀던 큰딸 마리아 안나와 ‘구키’라는 애칭의 둘째 딸 안나 유스티네를 낳았습니다. 그가 빈에 머물렀던 시간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지요. 원하는 여인과 결혼도 했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두 딸을 얻었으니까요. 말러는 마이어니히의 별장에서 작곡에 열중해 1904년, 왕성한 창작을 이어나가며 인생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말러에게 엄청난 불행이 들이닥쳤습니다. 1907년 7월, 그토록 아끼던 큰딸이 세상을 떠나고, 말러 본인도 심장 이상을 발견하게 되지요. 큰딸의 죽음으로 인해 아내 알마는 우울증에 걸리고 맙니다. 마흔일곱의 말러에게는 엄청난 슬픔이 밀려온 것이지요.
빈 사람들에게 쫓겨나다시피 한 말러는 미국으로 향합니다. 미국 생활에 적응하여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자리를 잡아가던 말러와는 달리 알마는 미국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1910년, 알마는 오스트리아 그라츠 근교의 작은 도시로 작은 딸과 함께 요양을 떠났고, 그곳에서 건축가이자 조형 학교인 바우하우스의 설립자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를 만나 교제를 시작합니다. 외롭고 힘들 때는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많이 의지하게 되니까요. 두 사람은 이후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그로피우스는 한 통의 편지를 말러 앞으로 보내 자신과 알마의 관계를 고백합니다. 대담한 그로피우스 덕에 아내의 외도를 알게 된 말러는 아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지만 끝내 알마의 마음은 되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 역시 그에게 다가온 커다란 슬픔이었지요.
말러에 대한 글을 쓰기가 무서웠던 건 어쩌면 그 안에 제가 보여서이기도 했습니다. 스스로도 알고 있는 자신의 어둡고 무거운 부분을 들춰내려면 용기가 필요한데, 그 용기가 부족해서 한참을 미뤘어요. 말러를 듣고 말러를 느끼는 것은 제 자신을 거울 속에 비추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용기가 없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약점과 나의 어떤 부분들이 말러의 음악을 들으면서 그리고 말러에 대한 글을 쓰면서 그 감정이 드러날까 봐 주저했어요.
그렇게 망설이다가 쓰기 시작한 글입니다. 글을 쓰면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에는 상당한 용기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말러의 삶은 완벽하지도 않았고, 매일 행복하지도 않았습니다. 대부분 그의 인생은 죽음과 외로움, 자기 고독으로 채워졌어요. 하지만 음악이 그를 살렸습니다. 사랑하는 부인 알마를 통해 그 부족한 감정을 채우려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는 않았어요. 알마도 사랑을 받고만 싶었지 누군가에게 한없이 주기만 하는 일엔 인색했습니다. 말러가 알마를 외롭게 한 것도 있고요.
사랑받고 싶은 남자는 사랑을 주는 법을 몰라 더 외로워했습니다. 아마 우리 안에도 말러의 모습이 조금씩 있을 거예요.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먼저 더 많은 사랑을 주는 것엔 주저하는 우리의 이기적인 모습들. 그러면서도 외로워하는 나약한 모습들.
그런 자신이 느껴지는 쓰디쓴 밤엔
인생의 많은 시간들을 쓰디쓴 밤으로 채웠을 말러의 음악을 눈 감고 한 번 들어보세요.
영화 <베니스의 죽음> (1971)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