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작은 별 변주곡' 에 관하여
지극히 개인주의자였지만 결혼을 한 이상 아이는 꼭 낳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대를 이어야 하는 의무도 없고, 시부모님도 꼭 아들을 바라는 그런 분은 아니시다. 그러니 굳이 어떤 성이여도 상관없다. 남편이나 나나 늦은 결혼이었으니 하는 것만으로도 그저 기쁠 뿐. 노산이라 걱정이셨다는데 신혼의 달콤함이 가시기 전 아이를 낳았다. 어머니 표현대로라면 갈수록 남편을 쏙 빼닮았단다. 아들이 아빠를 닮았다니 당연하면서도 다행인 일이다. 참고로 남편은 집안을 통틀어 막내라 내가 아들을 낳지 않으면 정말 집안의 대는 끊기는 거였다. 난 어쩌다 보니 가문의 대를 잇게 한 훌륭한(?) 며느리가 됐다.
먼저 결혼한 동생에게 이것저것 물어봤지만 이미 아이를 다 키운 상태여서 잘 모른단다. 가물가물하다나? 막상 그 마음도 이해는 된다. 7년 전 일을 어찌 다 기억하겠는가? 우리 집 딸들은 모두 일을 하느라 아이 낳고 바로 직업전선에 복귀했다. 그나마 나는 프리랜서이니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한다. 여동생을 보면 병원을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만 보는 게 답답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난 대학 방학 기간에 아이를 낳아서 전적으로 혼자 육아를 했다. 아이는 아침부터 밤까지 나와 함께 눈을 뜨고 잠을 자고 밥을 먹는다.
‘모유를 잘 먹고 응아를 잘 싸니 너무 기뻐 몸이 힘든지도 모르겠다!’라는 말은 반은 진심이고 반은 거짓이다. 잘 먹고, 잘 자니 정말 감사하고 다행이지만, 시도 때도 없이 모유를 줘야 하니 쪽잠자는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래도 그 와중에 아이가 나랑 눈을 마주치며 웃어주면 이건 완전 세상 다 얻은 기분이다. 누가 자기를 보고 웃는다고 이렇게 좋을 수가 있을까? 아이가 기분이 좋으면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다. 아니 반대인가? 내가 기분이 좋아 목소리가 밝아지니 아이도 편한 건가?
아이의 생일과 나의 생일은 며칠 차이다. 우린 모두 겨울 아이고, 또래에 비해 월등히 생일이 빠르다. 난 처음부터 딸보다는 아들이길 바랬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단순히 아들이면 덜 걱정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에서였다. 딸은 아무래도 좀 곱게 키어야 하니, 자신에게 더 집중하는 성격인 나에겐 아들이 훨씬 적합하다. 1월생인 아들은 날마다 눈에 띄게 변하고 있다. 인간의 성장이라는 게 매우 위대하고 경이로운 일인 것을 몸소 체험 중이다. 눈, 코, 입이 선명해지고 옹알옹알 입도 움직인다. 소리에 대한 반응은 상당히 빠르다. 물론 모든 감각 중에 가장 빨리 발달하는 게 청각이지만, 이 아이는 다른 감각보다 유난히 소리에 민감하다. 독일에서 혼자 살 때를 제외하곤 혼잣말을 이렇게 많이 해보긴 처음이다. 밖에서 들으면 옆에서 누구랑 대화하는 것 마냥 하루 종일 아이에게 말을 한다. 저녁이 되면 가끔 입이 아프다. 아이의 이름이 결정되니 더 할 말이 많다. 아이의 이름은 모든 문장의 주어다. 엄마가 뭐 하는지, 아이의 기분은 어떤지 계속 살피면서 말을 했다. 시끄럽지 않고 부드럽고 나직한 목소리로 때로는 밝고 높은 톤(Tone)으로, 때론 혼자 연극을 하는 것처럼 여러 목소리로 들려준다.
아이를 낳은 이후론 우울한 음악을 거의 듣지 않는다. 밝고 따뜻한 음악 그리고 단순하고 반복되는 멜로디의 음악을 주로 듣는다. 예전엔 클래식 라디오를 항상 들었는데, 지금은 시끄러운 교향곡이나 무거운 곡, 불협화음이 많이 들어간 현대음악이 나오면 잠시 꺼둔다.
아이는 최근 들려준 음악 중에서 ‘작은 별’에 가장 많이 웃었다. 음악가 입장에서 살펴보면 모차르트의 작은 별 변주곡을 좋아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아이들은 단순하고 자주 반복되는 소리에 익숙해진다. 우리가 짧은 단어를 아이에게 반복하며 말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런 점에서 멜로디가 간단하고, 운율이 맞는 동요는 최고 좋은 음악이다. 모차르트 작은 별 변주곡은 원래 프랑스의 동요 선율을 기본으로 작곡된 곡이다. 어쩌면 동요라서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더 끌리는지도 모르겠지만, 가사만 보면 그다지 좋은 내용은 아니다. 아무튼 무엇이든 자주 반복해서 듣는 게 가장 좋다. 이건 만고불변의 진리다.
두 번째로 곡이 장조여서 분위기가 밝고, 장조 중에서도 다장조라서 따뜻한 느낌이다.
전공자가 아니고서는 장조의 종류에 따른 음악적인 분위기를 파악하긴 어렵지만. 예를 들면 같은 ‘작은 별’도 조표가 여러 개 붙은 쉽게 말해 검은건반을 많이 포함할수록 복잡하게 들린다. 같은 음악을 조옮김하면 선율은 같지만 느낌이 많이 달라진다. 모차르트 곡은 처음 주제로 12개의 변주를 하는데, 그 사이에 단조는 단 한번 나온다. 그 부분을 제외하곤 모두 밝게 들린다.
마지막으로 변주곡이라는 곡의 특징 때문이다. 오른손으론 주제가 비슷하게 반복되지만 왼손 반주의 리듬은 아주 다양하게 변한다. 완벽하게 똑같은 무한반복은 자칫 지루할 수 있지만 비슷한 듯 달라지는 곡들은 듣기가 좋은 거다. 게다가 어느 악기로 듣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반응은 달라진다. 그래서 작곡가들이 원곡을 어느 악기를 위해 작곡했는지를 살펴보면 그 특징을 파악하게 된다. 이 곡은 원래 피아노 독주를 위해 작곡을 했으니 피아노 버전으로 들려주는 게 가장 좋다.
아이는 엄마의 기분과 말을 이해하진 못해도 모든 걸 느끼고 있다. 엄마의 감정을 숨길 필요는 없지만 엄마가 된 이상 최대한 웃어 주고, 눈 마주쳐 주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행복으로 메꿔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난 모차르트를 들으면서 예전처럼 피아노 건반을 떠올리지 않는다. 더 이상 곡 사이사이에 나오는 어려운 테크닉을 해결하려고 사투를 벌이지 않는다. 온전히 음악을 느낀다는 건, 음악을 이해하고 연주하는 것보다 더욱 값진 경험이다.
지금은 그저 아이와 함께 이 시간을 충분히 즐기려 한다. 아이는 분명 내가 의무감이 아닌 즐기는 마음으로 모차르트를 듣는다는 걸 표정으로 읽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