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너의 딸랑이가 되어 줄게

-백일 즈음하여

by 피아니스트조현영

이렇게 열심히 책을 톺아보기는 대학 입시 이래로 참 오랜만이다. 책을 쉽게 읽는 편인 나지만, 육아책만큼은 자로 밑줄 그어가며 주석까지 달고 있다. 이런 태세라면 논문도 쓸 참이다. 육아카페나 옆집 엄마, 조리원 동기들에게 서로 물어볼 순 있지만 전문가가 쓴 객관적인 책이 제일 믿음이 갔다. 뱃속에 있을 때는 눈에 보이질 않으니 걱정이 됐다가도 잊어버렸는데, 이젠 눈에 보이니 상황이 다르다. 아이의 발달단계에 관한 육아책을 몇 권 사놓고, 돌아가며 정독 중이다. 결혼 전엔 육아를 그냥 하면 됐지 무슨 책이야 했는데, 모르면 말을 말아야 했다. 책마저도 읽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른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이젠 더 이상 경험을 이야기해줄 할머니도 안 계신다. 참고로 우리 엄마는 본인이 직장맘이라 나보다 육아를 더 모르신다. 우리 네 형제는 모두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이럴 땐 정말 할머니가 사무치게 그립다.

요즘 책들은 친절해서 단계별 아이의 행동과 엄마 지침을 자세히 알려준다. 가끔은 과도한 친절로 오히려 걱정이 되는 경우도 있다. 내 아이가 책에서 말한 행동을 아직 안 하고 있으면 이상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모든 아이가 똑같이 크는 건 아니니 엄마의 판단에 맞춰서 키우면 된다. 이제 아이를 잘 키우고 못 키우고는 전적으로 부모 손에 달렸다.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백일이 돼가는 우리 천운이의 단계를 살펴보니 생후 2개월부터 딸랑이를 좋아했고, 3개월 즈음엔 목을 가누고 뒤집기를 성공했다. 분유에 대한 반응은 그다지 예민하지 않고 거의 모유를 먹고 있으니 일단 분유값은 아꼈다. 기저귀도 이래저래 말이 많았지만 남자 아이라 엉덩이 발진이 심하게 생기지 않으면 그냥 무난한 걸로 쓴다. 가끔은 선물을 받거나 친구가 쓰다 남았다고 주는 기저귀도 냉큼 받아썼다. 남녀 단계별로 달리 쓰는 아이의 기저귀는 남기 일쑤다. 기저귀, 분유값 벌려면 연주 많이 해야 한다고 농담한 선배가 떠올랐다. 생각보다 비용이 만만치 않다. 비싼 분유에 고급 브랜드의 기저귀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엄마 입장에서 너무 귀를 열어두면 사야 할 것이 많아지니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다. 아이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남들 키우는 대로 키우면 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정답이다.


낮밤이 바뀌었던 수면 패턴은 일주일 정도 지나니 진정이 됐다. 정말 다행이다. 잠을 안 자는 건 사람 미칠 노릇이다. 아이가 밤에 안 자고 계속 울면 천하의 사임당이라도 힘들 일이다. 안아도 보고,어도 보고, 같이 누워도 보지만 막무가내로 울어대면 어쩌란 말인지 난감하다. 참고로 남편은 등만 대면 바로 깊은 잠을 자는 분이라 밤중 육아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아이 스스로 낮과 밤을 구분해서 자주면 고마운 거다. 배냇저고리는 선물로 모두 충당했고, 병원을 갈 때를 제외하곤 나갈 일이 별로 없으니 외출복은 우주복 단 한 벌뿐이다. 아기띠나 유모차 등 고가의 장비는 모두 7년 전 동생 것을 물려받았다. 트렌드엔 한참 뒤떨어지지만, 난 그런 것엔 무감한지라 편히 쓰고 있다. 내가 올해도 결혼 안 하면 다 갖다 버릴 참이었는데, 마지막에 겨우 쓰게 됐다. 국민 장난감이라 불리는 장비들도 몇 개 빠지고 없어지긴 했지만 특별히 다르지 않아서 부품만 세탁해서 그대로 썼다. 보행기, 요람, 모빌 기타 작은 장난감들로 집은 아수라장이 되어가고 있다. 미니멀 라이프를 선호하는 나지만 아이 살림이 늘어가니 모던하고 심플한 집은 더 이상 없다.


아이의 출생으로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 가지는 새롭게 정리를 했다. 일단 신혼 때 사온 거대한 텔레비전을 없앴고, 뾰족한 가구들은 보호대를 설치하고, 침대 아래 두툼한 요를 깔고 조명을 은은한 걸로 바꿨다. 가습기는 청소가 용이한 걸로 장만하고, 물걸레를 몽땅 샀다. 소리 나는 청소기 대신 웬만한 건 바로바로 쓸고 걸레로 닦아냈다.


삼칠일까집안 식구 이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던 터라 백일 즈음해서 가까운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부지런한 그녀들은 이미 아이의 성장 앨범 촬영을 예약했었다. 백일 촬영을 위한 옷도 준비했던데, 게으른 나는 이 단계는 지나치기로 한다. 다만 한껏 안아주기로 다짐한다. 이 시기에 엄마의 스킨십은 뇌의 시상 하부에 작용하여 정서를 안정시키는 호르몬을 분비하게 한다. 음악을 하는 엄마로서 나는 누구보다도 정서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어른이 되면 정서가 메말라간다는 소리를 많이 한다. 있던 정서도 없어지는 판이니 아이 뱃고래 키우듯 이때 몽땅 키워야 한다. 엄마의 스킨십이 부족하면 아이는 불안해하고 욕구불만이 늘어간다. 당연한 일이라 생각되지만 엄마의 성향에 따라서는 힘든 일이 되기도 한다. 많이 안아주는 것이 버릇이 된다고 걱정하는 엄마들도 있지만 백일 된 아이에게 그런 걱정은 기우다. 어른도 힘들면 누가 안아줄 때 힘이 된다. 이런 면은 유럽의 엄마들에게 배울 점이다. 무미건조하기로 유명한 독일의 엄마들도 아이를 안아주는 일에는 한없이 관대하다. 스킨십이 자연스러워지면 아이들이 커서도 부모와 안는 것을 불편해하지 않는다.


아이의 물건 중에 내가 관심 갖는 물건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딸랑이다. 딸랑이는 아이 시청각과 촉각의 발달을 돕는데 필요하다. 예쁜 파스텔 톤의 색깔과 흔들면 나는 소리 그리고 손에 쥐는 힘 즉 악력이 커진다. 손에 쥐고 흔드는 이 두 가지의 동작이 동시에 가능해야 한다. 아이에겐 큰 도전이다. 딸랑이도 크기가 다르고 안에 든 내용물에 따라 내는 소리도 다르다. 난 아이에게 다양한 딸랑이를 흔들며 노래를 불러준다. 마치 리듬악기처럼.

흔드는 것도 리듬이 중요하고, 가하는 힘에 따라 음량도 달라진다.

동요를 들으면서도 아이에게 노래에 맞춰 흔들어주면 알게 모르게 박자감이 생기고 리듬을 느낀다. 아이 요람을 밀어줄 때도 발의 힘과 흔드는 템포(빠르기)에 따라 아이가 잠드는 시간이 다르다. 편안한 느낌이면 스르르 잠이 든다. 적당히 움직이는 차 안에서 잠이 잘 드는 원리와 같다. 이 모든 게 음악의 시작이다. 잠든 아이에게 속삭인다.

아가야, 엄마가 너의 최고 좋은 딸랑이가 되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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