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부부 VS 독박 육아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

by 피아니스트조현영

욕심 많은 여자는 개강일이 다가오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일을 계속하자니 아이 봐줄 사람이 없고, 아이 때문에 일을 포기하자니 지금까지 경력이 아깝고. 그래서 그 여자는 백일 된 아이를 데리고 지방으로 이사를 했다. 3대가 빌어야 가능하다는 주말부부가 그녀에겐 최악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독박 육아는 시작됐다.


무슨 소설 같지만 이건 바로 나의 이야기이다. 배가 남산처럼 불러서도 고속버스를 타고 강의를 다녔던 나는 개강일이 다가오자 마음이 급해졌다. 어찌어찌해서 백일까지는 버텼지만 이젠 정말 결정을 해야 했다. 대학 강의는 나 말고도 하고자 하는 이들이 무지 많다. 나 하나 없어진다고 아쉬워하며 기다릴 대학이 아니다.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겠지만.(어쩌면 회사가 나을지도 모른다. 비정규직인 대학강사의 처우열악하기가 말도 못한다.) 진즉 엄마 말대로 일반 회사라도 취직을 해야 했을까? 대학에 남아보겠다는 허황된 꿈은 애당초 꾸지도 말았어야 하는 게 맞는 걸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면 마음의 그릇이 좀 더 커질 줄 알았건만, 막상 엄마가 돼서도 나라는 인간은 변하지 않았다. 대학에서 평생 강의를 하는 게 나의 꿈이었기에 이제 와서 포기를 한다는 건 내 인생 전부를 부정하는 일이었다. 그런데다 지금은 홀몸이 아니다. 날마다 모유를 줘야 하고, 24시간 내내 엄마가 필요한 저 갓난쟁이를 두고 내 욕심 채워보겠다고 등 돌리고 갈 수가 없다. 모성애가 지극한 건 아니어도 책임질 일에 대해선 최선을 다하는 게 나의 최강점이다.


아이는 순전히 나의 책임이었다.

물론 남편도 부모이니 같이 책임져야 하는 일이지만, 막상 육아를 하는 데에는 남편의 역할이란 미비하기 그지없다. 가만히 앉아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해도 얄밉지만, 그렇다고 도와준다면서 일을 더 벌리는 것 또한 반갑지는 않다. 남편은 직업상 새벽에 나갔다가 별 보고 들어온다. 그런 남편에게 내가 뭘 바라겠는가. 착한 남자지만 육아에 있어서는 남편이라는 타이틀을 빼곤 그다지 도움이...


백일이 되자 아이는 목을 가누고 배밀이를 하고 옹알이를 시작했다. 남자 아이지만 여자 아이만큼 모든 것이 빨랐다. 웃기도 잘하고, 얼굴의 표정도 다양했다. 3~4개월 된 아이들은 구강기에 해당되기에 침을 엄청 흘린다. 하루에도 가제 수건을 몇십 개씩 쓴다. 내 얼굴에 흘리는 아이의 침을 로얄젤리라며 닦아내는 바보 엄마가 됐다. 어느 주말 난 아이의 가제 수건을 개다가 비장한 말투로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주말부부 하자!” 남편은 단숨에 “그래”라고 대답했다.

‘아니 이 남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답을 하네. 은근히 바라고 있었던 건가?’

내가 멀뚱멀뚱 쳐다보니 남편은 조목조목 이야기를 짚어낸다.

“일도 포기 못 할 거고, 아이도 남의 손에 못 맡길 성격이잖아. 그렇다고 양쪽 부모님이 봐줄 상황도 안 되고. 그럼 답은 주말부부지!“

남편의 말은 한 군데도 틀린 부분이 없다. 그래도 괜스레 눈물이 흘렀다. 아직 신혼이라 남편이 필요한데 주말부부를 해야 하고, 아이 키우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시댁도 친정도 없는 지방에 가서 혼자 애 키우며 살아야 하는 내 처지가 비련의 여주인공 같았다.


주말 내내 이틀을 머리 쥐어짜며 고민하다가 월요일에 부동산에 전화를 해서 신혼집을 내놨다. 그리고 아이와 내가 살아야 할 지방에 아파트를 구했다. 고민은 깊이 하지만 결정을 하면 진행이 빠른 게 나다. 아이의 백일을 기점으로 우린 주말부부가 됐고, 아이와 나는 주말부부와 독박 육아라는 이중고 속에서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백일 된 아이가 뭘 알까 싶지만 아이도 내 맘을 아는지, 서울에서보다 훨씬 잠을 잘 잤다. 엄마 마음을 헤아리는 대견한 아들이다. 이사 후에 변화에 적응 못하고 힘들어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가장 많이 했다. 아빠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아이가 슬퍼하면 어쩌지? 다행히 아이는 새 환경에도, 아파트에도 적응을 빨리 했다. 아빠의 부재가 있지만 신나게 잘 놀았다. 신체 발달에 필요한 체육관 장난감도 힘껏 차며 자주 웃었고, 혼자서도 누워서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 하며 잘 놀았다. 자신의 손과 발을 자유롭게 사용했다. 웃음이 많은 아이여서 너무나 다행이다.


강의가 있는 시간엔 파트타임으로 도우미 선생님께 부탁을 하고 나머지 시간들은 온전히 나와 함께였다. 좋은 육아 돌보미를 만나는 게 남편 잘 만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인데 그런 점에선 난 행운아였다.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연결해준 선생님은 우리 아들을 늦둥이처럼 예뻐하셨다. 그리고 아이를 직접 키워보겠다고 지방에 혼자 내려온 나를 대견해하셨다. 선생님도 두 아들만 키웠던 아들 엄마라 아들의 성향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다. 아이도 선생님을 무척 좋아했다.


백일 아이와 지내면서 제일 많이 한 건 내 배 위에 올려놓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임신 때부터 생각했던 캥거루 케어다. 그리고 목소리도 한 톤을 높였다. 원래 내 목소리는 그리 높은 톤이 아니지만, 목소리가 밝은 엄마가 좋다는 이론을 믿는 나는 애써 노력했다. 목을 가누는 상황이어서 내가 누워서 손으로 아이 가슴을 받치고 두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했다. 아이를 들었다가 다시 배 위에 놨다가를 반복하면서 대근육 발달을 도왔다. 아이는 내 배위에서 나의 수다를 듣는 시간을 참 좋아했다. 난 남편에게 종알대는 신혼댁이 아니라 아이에게 종알대는 수다쟁이 엄마가 됐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서 아이에게 들려줬던 이 모든 이야기는 지금 내게 커다란 추억이 되었다. 우리들의 수다를 즐겁게 해줬던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이 그립다.


유튜브 검색어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

BEETHOVEN Symphony No 6 (Pastoral) in F Op 68

Ludwig Van Beethoven - Symphony No 6, Op 68 - 1st Movement


https://youtu.be/pSEDRvNkw7I


keyword
작가의 이전글33. 피겨는 클래식을 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