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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Aug 09. 2023

파뿌리 필 무렵

어서오세요 여기는 외모만 어른역입니다.

"요것 봐라? 하하하 뭐냐 이 생경한 귀여움은?"

이마와 머리가 만나는 경계점. 머리카락으로 가는 대문이거나 이마로 내려오는 출입구 콕 집어 그곳.


엥? 나 흰머리 나는 거야? 나 이제 흰머리 나는 나이가 된 거? 40 중반으로 넘어가려던 때였나 보다. 앞가르마가 있는 나는 앞머리에 M자 모양 소용돌이가 있다. 그 정중앙 뾰족하게 앞으로 나온 부위에 눈부신 것이 두발을 대표하듯 자라났다. 모든 머리칼을 통틀어 1번의 자리라 명한 그 자리에. 그렇게 외모만 어른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나이는 공짜로 먹는다. 회장님이라고 잠을 많이 잔다고 서울대에 간다고 더 주지 않는다. 공평한 건 세상 그 정도라고 해도 될 만큼 누구에게나 그렇다. 그러니 나이를 먹었다고 흰머리를 보는 것에 준비가 되었을 리 만무한 법. 1번 자리에 난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하는지 몰라 나보다 나이를 더 가진 언니에게 물어보았다. 언니의 대답은 대략.


1. 일단 뽑으면 안 된다. 견인성 탈모가 될 수도 있으니

2. 1번 자리에 난 것이니만큼 굳이 잘 보일 것이니라. 보이고 잡을 수 있다면 특정하여 잘라라

3. 하지만 그것은 새치가 아닌 이상 곧 창대해지리라 마음을 준비시켜라.

이 정도였다.


1번은 금방 이해가 갔다. 여자라면 알 것이다. 어릴 적 매일 포니테일, 일명 말총머리로 묶고 다니다 보니 아기를 놓고 정수리가 휑해진 경험. 머리를 당기며 살다 보니 무게를 가장 많이 짊어져야 하는 앞머리 바로 뒷부분의 머리털이 그 무게를 어느 순간 놓아버려 두피가 보일 정도의 빠짐을 겪게 된다는 것. 그래, 소중한 정수리 머리카락은 그것이 비록 검은 것이 아니라 해도 두어야 한다. 인정


2번은 아주 쌈박한 해결책이다. 뽑으면 안 되고 염색도 안 되니 그 털만 특정하여 자른다. 눈에도 잘 띄고 잡기도 좋으니 남에게 부탁할 것도 없이 내가 보이는 족족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3번은? 이해가 자연스럽지는 않았다. 곧 창대해진다고? 흰머리가? 내가? 그러고는 앞머리 그 하얀 놈만 보이는 족족 제거하던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보고야 말았던 거다. 우연히 책장을 넘기듯 펼치게 된 머리카락 어느 한 부분이 청팀 백팀 나누어 하던 운동회처럼 두 가지의 색이 오글오글 모여있었다는 사실을. 서둘러 확인해 본 반대편 귀 옆도 판 뒤집기 게임처럼 흰색과 검은색이 결코 한쪽의 일방적 압승으로 보이지 않더라는 낭패감.


갑자기 어른처럼 보이는 나이가 된 나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했다. 어린이로 어른이로만 살았던 과거에서 어른처럼 보이는 외모와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이제 난 누가 뭐라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아무리 우겨도' 어른이어야만 했다.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고 지금도 언제나 어울리는 관용구. 과거를 돌아보니 나의 실수도 나의 성공도 내 DNA 속에 새겨져 있으니 딱 그 터널을 통과 중인 너에게 그 정도 아는 척은 해도 된다는 네비게이션스러움. 커피 우유에 만족하던 어린이는 카페라테를 마시는 어른이가 되었고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는 외모만 완전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본다.


우리는 그 터널 몇 개를 지나왔지만 우리가 한올 한올 자르며 이 흰머리를 잘라 놓으면 당분간 검은 머리카락만 볼 수 있을 거라는 짧은 생각으로 살 때. 어느 순간 잘라놓았던 흰머리와 무럭무럭 자라 새로운 흰머리로 변신한 어제의 검은 머리가 한꺼번에 뿅하고 나타날 때. 어제 흰머리 하나 정도는 안다고 생각했던 나는 모름이라는 새로운 흰머리와 조우하게 된다. 어제 잘랐던 흰머리가 어디에 나는지 정도 아는 내가 "네 첫 흰머리는 말이야"로 산 것은 아닌지. 새로운 흰 것을 찾아 머리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기며 이것 하나도 딱딱 못 맞추는 안목, 머리카락 하나 선견지명 할 재주도 없으면서. 앞 길을 안다고 생각한 무지함. 네비게이션도 막히지 않는 새로운 경로를 찾는다고 '그 길로 가라는거구나'겨우 이해한 나를 당황케 하는데. '지나 보면 알지니 내가 말한 것이 모두 실현될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가소로이 '내려다' 본 것은 아니었는지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후에 신상 흰머리 찾으러 좀 갔다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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