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몇 십 년 전 네가 한 일을..

알고 있을 것 같은 기차역. 문산 폐역(1)

by 노사임당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을 거예요. 바쁜 세상, 작은 유리 파편 같은 힌트를 이어 붙여가며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을 테고요. 제가 일 하던 슈퍼는 진주 문산읍이라는 곳에 있어요. 제가 살고 있는 곳도 면이라 충분히 구석지고 시골스럽고 만족스러울 만큼 조용함에도 일마저 그런 곳으로 찾아간 거죠.


같이 옷을 짓던 언니는 항상 말했어요. "진주로 나와 살아. 자주 보자!" 그러면 항상 의아했지요. '읭? 난 진주에 안 사는 건가? 나 진주 시민인데?' 하면서요. 그때까지만 해도 마음속에 있던 말을 함부로 하던 때가 아니라서 그랬는지. 친함의 강도가 최상급이 아니라서였는지, (한 템포 쉬고) 나 혼자 묻고 답하며 입 밖에 내지는 않았던 거 같네요.


예전 진주로 편입되기 전의 기억이 있어서인지 금호지를 끼고 있는 저희 집 동네를 오려면 직행은 하나뿐인 상징적인 다리를 건너야 하는. 마음의 거리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곳. 뭔가 은둔지 같은 이곳에 사는 사람의 거주 이유가 궁금해지는 동네로 여기곤 했나 봐요.


그러니 면에 살면서 굳이 시내가 아니라 또 읍으로 일하러 다니며 "어머, 정말 조그맣고 귀엽고 아기자기한 집들 너무 좋다. 이곳에 집 한 채 사고 싶다. 작업실로 갖고 싶다.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하며 말할 사람이 있으면 옆 사람에게 혼자면 혼자서 대답은 궁금해하지도 않고 뱉었지요. 그것도 누가 동행을 해 주었을 때. 백화점 처음 구경하는 가덕도 살던 내 대학 친구처럼 신나게 둘러봤지 혼자는 안 갔어요. 그래요. 저는 혼자서 어딜 다니질 못합니다. 아무 일 없어도 집 밖으로 나가야만 숨이 쉬어지는 사람도 있던데 저는 문 열고 나가는 게 두려워요. <혹시나 배가 고프면 어쩌지? 목마르면? 책이 읽고 싶으면? 스케치를 하고 싶으면? 갑자기 잠이 오면?> 하며 온갖 지금 나가면 무언가 예상치 못한 일들로 곤란이라도 겪을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용기를 내어 물통과 책과 스케치 도구와 라면과 이불까지 챙겨서 그 모든 일이 생겨도 해결가능하게 이민 가방을 챙겨서 나가도요. 예상치 못한 감정이 또 들어요. '여긴 어디고 나는 어디 가야 하고'하는 뭐 마려운 강아지 같은 우왕좌왕 하는 게 저조차 제가 수상해 보여 간첩신고하고 싶은 모습이 연출이 되는 데다가요. 속옷을 안 입은 기분이 스리슬쩍 드는 거예요. 항상요. 윗 속옷인지 아래속옷인지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인지는 모르겠는데요. 그 기분이 들면 이민가방 둘러메고 빨리 집에 가고 싶어요. 겨우 산책이니 바람 쐬러 나와놓고 편의점 가서 속옷을 또 사서 입을 수도 없고 이건 내 마음이 만들어놓은 허상이라고 얘기를 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온몸으로 퍼진 속옷 생각에는 집이라는 독풀이약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니까요.


그래서 그런가 봐요. 편안하지 못한 감정으로 어딜 다니니 더 길을 못 찾는 것도 있나 봐요. 길과 집이 겹쳐 보이니 기억도 나지 않고 아는 길도 헷갈리는지도요.


근데요. 지금 문산폐역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 언제 가나요? 너무 돌고 있네요. 정신 차려. 예 예. 지금 출발합니다. 잠시만요. 뿡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