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몇십 년 전 네가 한 일을..

알고 있을 것 같은 기차역. 문산 폐역(2)

by 노사임당

진주 문산. 과거 제법 역사가 긴 동네답게 둘러볼 곳이 많습니다. 과거가 복잡한 시골답게 넓던 평지는 혁신도시로 반은 떼어 재산 분할해서 분가를 시켰고요. 그럼에도 천석군 만석꾼처럼 넓은 읍은 구석구석 '이런 곳이? 저런 곳이?' 하며 볼 만하죠. 아! 잊지 마세요. 제가 살고 있는 금산도 다리품 팔아 다닐만한 곳이 많으니 팔아놓은 다리품 아깝지 않게 글 올리겠습니다. 아주 촘촘하게 할 테니 1년을 써도 금산을 못 벗어날지도. 집 한 채씩 그리면 몇 년 걸릴.. 방대하고 지루한 연재가 될지도. (도망가 도망가.)


처음 문산에 폐역이 있다는 걸 알고는 깜짝 놀랐어요. 경남지역 독후감 경진대회(?) 뭐 이런 곳에 내려고 읽어본 책에 소개가 되어있었거든요.(예, 상은 받았습니다. 2등~유휴) 아니 "강원도래요"하는 폐광이 있는, 지금은 인적이 끊긴 옛 번성했던 도시도 아니고. 매일 쇠 두드리는 소리가 나던 동해의 조선소 가는 길도 아니고 '이런 곳에 폐역이? 옛 영광이 남아있어야 폐역이 있는 거 아니었어?' 하는 이상한 소리를 하며 신기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폐역>이 주는 단어의 낯섦, 생소함은 묘한 매력으로 저를 이끌었죠. 집 밖을 나가는 두려움을 이길만큼이라 말하고 싶지만.. 문산에 있는 진양도서관. 그곳 그림 동아리가 끝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차로 가 봤습니다. 그 첫 느낌은 말이죠. 그러니까 말입니다. 그 뭐냐 하면.




"뭐지? 하하하하" 죄송합니다.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그 화려한 과거의, 복잡한 6번의 이혼이 만들어 놓은 인생 풍파를 견딘 그런 속을 알 수 없는 복잡 묘한 느낌을 주리라 기대한 폐역은 너무 '빈집' 느낌이었습니다. 그냥 "재작년까지 택배사무실이었는데 지금 비었네요" 하고 설명 들어도 "이 중개사 양반이 내캉 뭐 하자는 거여?"혀며 멱살 잡을 수 없는 고개를 끄덕일 그런 느낌이었죠. 뭔가 이 폐역 주변으로만 와도 내 몸으로 과거가 푸악~하며 순식간에 뇌를 지배하게 되리라는 기대는 마스크 속 입만 벌려놓았습니다. 어깨를 아래로 떨어뜨리며"에?"하고 소리 냈던 기억이 나네요. 폐역이 이렇게 으슥한 느낌도 처연한 느낌도 없이 다음 입주자 기다리듯 빈집 느낌만 풍겨도 되는 거야? 했던.


죄송합니다. 폐역이 주는 그 '아름다운 과거의 이야기'도 역사에서 일어났던' 헤어짐이 만들어낸 수많은 사랑의 속삭임'도 들려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소개해야 해요. 왜냐고요? 그. 뭐. 그러니까 소개할 게 있어요. (주머니 뒤적 뒤적하며 둘째가 그린 하트를 들어 보여주며) 제 마음.. 악 그러지매요~ 사람한테 돌 던지는 거 아니에요.


정신 차리고.


도서관을 가다 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자전거 도로가 있어요. 이 도로는 어쩌다가 이런 동선으로 생기게 되었을까? 끝은 있을까? 자전거로는 직진밖에 못 하지만 한 번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보고 싶다. 생각한 길이 있어요. 그러면서도 항상 도서관 볼일 끝나면 집으로 쌩 들어가기 바빴던 <궁금증만 남겨둔 길>이 있는데요. 폐역에 가보니 그 이유를 알겠더군요.


예, 맞아요. 그 자전거 길은 진주-마산 간 경전선(2012년 폐쇄) 구간을 자전거길로 만든 곳이었죠. 진주역에서 진주수목원까지 약 21Km. 진주 사는 동안 한 번 도전해보고 싶어요. 이 길 자전거 타봤다 할 만큼이라도요. 그만큼 매력적이에요. 사람이 걷기 좋지 않은 동선에 있으니 따르릉도 못 해보고 길 옆 수풀로 쓰러질 일도 없을 거고요. 그러면서도 군데군데 도심도 통과하고 상권도 지나니 샛길로 빠지며 먹는 게 남는 거 하며 길을 아무렇게나 마쳐도 즐거울 수 있습니다. 이렇게 궁금했던 자전거길의 유래와 폐역의 폐기된 적 없는 기억도 이어보았습니다.

그런데요. 반전이라면 반전이고. 그런 게 있어요. 뭐게요?


부동산중개사 아저씨가 또 나와야 해요. 그 폐역이요. 지금은 찻집으로 변신해 있어요. 도서관 글쓰기 수업을 해주셨던 채도운 작가님이 운영하는 <보틀북스>가 폐역 바로 앞에 있는데요.(아기자기 귀여운 책방 겸 찻집) 영업에 영향이 있으면 어쩌나 걱정은 되지만, 짹짹 커피가 생겼답니다. 폐역의 외형은 그대로 두고 그 당시 있었던 간판이며 부속 건물도 역사를 역사적으로 간직하면서 현대적인 내부로 바꾸어 문을 연거죠. 엄청 순식간이었어요. 얼마 전까지 폐역에게 기대이하의 인상으로 실망해 삐져있었는데 찻집이 생겼고. 그곳이 좋아 벌써 몇 번이나 갔으니까요.

왼쪽 조그맣고 네모난 건물이 보틀북스입니다.


예, 좋아요. 약간은 서늘한 역사 아니 찻집 내부는 필요한만큼 경건함을 주기에 안성맞춤이고요. 떠들썩하지 않은 내부에 특별히 맛이 있는 달달구리 커피는 맛에 깊이가 있습니다. (과거의 흐름도 군데 군데 박물관처럼 기술되어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나의 현재 모습처럼 공존하는 그곳이 그림을 그리기에도 더 좋을 수없는 공간이고 친구를 만나기에도 또 더 오붓할 수 없는 곳이 된 거죠.


다음에 진주 오시면 제가 제일 비싼 커피 살게요. 싼 소고기 사주세요. 그럼 오늘 짹짹 커피로 변신해서 아쉬운 척은 해야 하지만 오히려 자주 보고 싶어 좋은 문산 폐역 소개 그리고 그림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