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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층소화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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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Nov 03. 2023

소음은 층 사이에 있지 않을지도

층간 소음 기록을 위한 과거로의 회귀

정말 오랜만에 예술회관을 갔다. 울림이 있는 음악을 공연장에서 들을 생각에 기대감이 차 오른다. 주차장이 만원이라 백여 미터 떨어진 곳에 대느라 늦을 뻔 하긴 했다. 예상보다 큰 공연인가 보다 생각하며 자리에 앉는다. 아는 분의 합창 정기 공연에 간 것이라 가족 같고 호젓하리라 생각한 것은 착각인 것 같다. 공연 중간중간 다른 팀들이 공연도 하는 걸 보니 나에게나 처음이지 내력이 있는 공연인가 보다.


자리에 앉자 사회자의 공연 안내와 함께 연주자들의 입장, 곧 공연이 시작되었다. 노래가 한 곡 두 곡 세 곡.

한곡씩 바뀔 때마다 누가 머리를 치는 것 같다. 이게 감동인가? 머리를 맞는 것 같은 울림의 공연이라니.. 하지만 울림은 그치질 않는다. 보통은 곡에 따라 잠잠해지기도 하는데 말이다.


텀이 길긴 하지만 메트로놈같이 박절을 알려주려나? 뒤에 앉은 분이 구두로 의자를 차고 있다. 머리를 깨우는 감동에다가 누군가의 타격까지 복합적인 충격이라니. 잠깐! 어떤 대응을 해야 하나 생각해 본다. 날 세운 듯 살던 어린 날 보다 많이 유해졌으니 양해를 해볼까? '그럴 수 있지.'로 한번 생각해 본다. 키가 2미터는 안되긴 해도 공연장의 의자는 성인 남자가 앉기에 불편할 수 있지. 다른 팀의 공연이 되는 동안에도 한 곡 또 한 곡마다 찬다. 세 번째 공연자가 바뀔 때 뒤를 한 번 쳐다본다. 보통의 내가 아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에도 눈치를 채니 그걸 바라고 행동한 거다.


소나무같이 늘 푸르른 분인가. 다리의 불편함을 못 참는 한결같은 분이라 단정해본다. 눈치채지 못했거나. 예전의 나라면? 이쯤 되면 한 소리했다. 포커페이스라 철석같이 믿지만 불편함이 고스란히 묻어난 얼굴로 말을 했을 테다. "저기요. 의자 발로 차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그러고 나면 공연은 안중에서 사라지리라. 상대는 어떤지 모르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불편한 소리를 하고 말았다는 자괴감. 점잖은 대응을 못한 자신을 남들이 어떻게 볼까 신경이 쓰여 공연이 귀에 들리지 않았을 거다. 스트레스 때문에.


아직도 남들이 흉본다는 소리가 내 행동을 제어하는 가장 큰 규범이란 생각이 든다. 나만의 이성이나 올바른 판단은 언제든 입 싹 닦고 남들 눈치만 보는 나로 돌아간다. 알고 있다니 다행이긴 하다. 하지만, 이젠 쌈닭 그만하련다. 한 곡마다 계속되는, 템포를 알려주는 발차기에서 멀어지려 머리를 의자에서 뗀다. 어? 신기하게 남의 두통같이 별 타격감이 없다. 어라, 이것 봐라. 그래 목 관절이 불편하긴 하지만 서로 얼굴도 붉히지 않고 나도 공연을 볼 수 있다. 괜찮네. 이런 방법도. 꼭 불편을 끼친 누군가의 행동 변화만이 나에게 평화를 주는 건 아닐 수도 있겠다. 하나 배운다. 적어놔야지. 내가 변해도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끄적끄적.


나는 예민하다. 남의 잘못에는 더욱 예민하다. 누가 <하지 마시오>라고 적어놓은 푯말 앞에서도 동물에게 과자를 주면 한소리 해야 한다. 째려라도 봐야 한다. 그렇다고 내가 한 실수나 잘못은 용서하고 잘 다독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긴 하다. 20년 전 혼자 있는 줄 알고 뀐 방귀에 아직도 이불 퀵을 하며 한심해하니까. 조금 전 어느 작가님께 단 댓글이 한심스럽게도 수준 낮은 글이 아닌지 생각했으니까. 댓글을 쓰지 말아야, 사람을 안 만나야 실수를 안 하지 하며 구박하고 있었으니까. 나도 별 훌륭하지도 않은 범인인 주제에 누구에게 올바름의 잣대를 들이미나 싶어 혼자 주거니 받거니 욕 배틀을 한다.


그래서 더 이 문제가 나에게 크게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세상 만물에 예민하게 구는 성격도,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을 꼭 변화시키려는 이상한 강박적 행동 말이다.


오늘도 가족 모두가 출근한 시간 문이 부서져라 닫으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윗집. 짧은 시간 동안 화장실을 저렇게 자주 갈 일도 저렇게 세게 닫을 일도 없는 나는 알 수가 없다. 할머니 혼자 있으면서 나 들으라고 하는 건지 스트레스 푸는 본인만의 방법인지 뒤꿈치로 발레를 한다. 발바닥으로 디디지 않고 뒤꿈치만 바닥에 디디며 뛰고 있다. 저 중국사람(모든 중국사람이 그렇다는 성급한 일반화로 실수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라 대명사화 했습니다)과 대화로 서로의 마음을 알 일은 죽을 때까지 없을 것 같지만 궁금하긴 하다.


그래, '나의 예민함이 스트레스구나'로 끝내지 말고 한 번 기록해 보자. 층간소음 그 지옥 같던 4년의 기록을. 잊고 싶고 잊어야 할 것 같아 기록하지 않았던 세월 동안 다행히 옅어진 기억만이 남아있겠지만 한 번 적어보아야겠다. 내 예민함도 가만히 읽어주면 억지로 지운 기억처럼 일부는 옅어지지 않을까 욕심을 내어보면서 말이다. 욕심이 과한 것이 될지 마음의 평화로 돌려줄지 윗집 인간들의 쿵쿵거리는 걸음처럼 심장이 쿵쿵 나댄다.


혼자서도 집에 있는 것이 무섭지 않을 때까지 적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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