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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층소화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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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Nov 10. 2023

층간소음.

부엌으로 윗집의 하수구 빨간 물이 내려오는 순간을 찍었습니다.

수목원을 거닐듯 집을 걷는다. 부엌, 거실, 배란다, 큰방, 화장실, 큰아이방, 둘째방, 공용화장실, 자전거들이 한켠을 차지한 전실까지..구석 구석 기억이 없는 곳이 없다.



싸움에는 35개의 병법이 있다. 미인계, 고육계, 성동격서, 순수견양같은 것부터 그 모든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마지노선. "이것만은 쓰지 않으려 했는데.." 하며 꺼내드는 방법, 36계 줄행랑까지. 사실 병법이라는 것이 교과서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라면 적의 허를 찌를수도 없으니 획기적이지도 않지만 36계를 강조하기 위해, 도망치는 적을 꼬집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한다면? 일견 고개가 끄덕여진다. 납득도 간다.


저녁 시간 내내 식탁위로 맴을 돌던 식탁등. 우리집에 식탁등은 없다는 최면을 걸어봐도 자꾸 대화는 끊어졌지. 조용한 거실 속 전두엽을 울리 발망치와 커지는 눈사태같이 머릿속을 점점 채우는 달리기라는 낙하물에 몸도 가볍게  흔들리던 69인치 텔레비젼. 어디든 소음이 없길 바라며 도망갔던 배란다, 이어폰을 꽂아 귀 속을 음악으로 채우며 잠들길 바라던 광고만 주구장창 듣던 큰방, 시간이란 개념이 의미를 잃은 24시간 안방 화장실의 물소리, 농구공 소리에 숙제하다 뛰어나온 큰아이방도. 저렇게 빠른 발재간은 어떻게 하는건지 신기하기만 했던, 좁은 방 안을 달리는 소리 잠 들지 못하던 둘째의 방. 거실을 가로지르며 쿵쿵 걷고 쾅쾅 닫으며 새벽 빨래를 알리는 공용화장실 출근 소리. 평생을 우울증과 벗하며 지냈음으로 체득된 깨달음은 겨우 하지만 강력할 <벗어나자>는 자각이었다. 혼자 집에 있으면 안되겠다는 느낌, 이러다 나를 잃을지 모른다는 체험적 각성에 밖으로 도망을 나가던, 갈 곳 없던 급한 내 뒷 모습이 남아있는 전실까지 층간 소음의 기억이 없는 곳은 없었다.


인터폰으로 첫 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관리실, 천장을 청소막대로 치며, 천장에 쿵쿵소리를 틀어놓고 살아보며, 찾아도 가보고, 포스트잍도, 손으로 꾹꾹 눌러쓴 유려한 문체의 편지로도 표현했지만 효용이 없었다. 이제 방법은 "이것만은 괘씸해서 하기 싫은데.."하며 남겨두었던, 부동산에 집 내놓기. 고작 하나다. 도망가기 싫다. 뒷모습을 보이는것이 치욕스럽다. 하지만, 잠깐의 치욕도 뒷모습도 잊혀지겠지. "흥, 그렇게 미친듯이 발악하더니 별거 아니네" 하며 비웃어도 상관없다. 내 기억에서도 그들 기억에서도. 변화하든 그대로든 이젠 내가 신경써야할 종족은 아닌 게 된다. 아직도 그러고 살지 궁금할 필요없이 나도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 된다. 생각은 나겠지만 점점 뜸해질테지.


부동산에서 사람이 올거라는 말을 전하자 첫째가 편지를 흘리고 갔다. 내 첫딸은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누구의 감정도 의견도 거스르며 일을 이어갈 생각은 없었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내가 조금 더 참으면 되니까. 내 속만 더 어떻게든 처리하면 되는 사안이다. 가족들까지 내 번뇌 속으로 끌어들이지 않고 싶으니까.  그래서 없던 일이 되었다, 이사는. 그렇게 흐지부지 되어 지나간 이슈가 되었다. 나는 이 이슈를 지나간 일로"그런 일도 있었지"로 감당할수 있을지는 약속할수 없었지만 일단 그렇게 되었다.

아이의 의견이 존중된 듯 하지만 집이 팔리지 않는 거래 부재의 시기 공급만 넘치던 때다.  


이 집에 있는동안 재밌었고 좋았던 기억들을 몇 개 뽑아왔어.(사진을 뽑아왔더군요) 엄마 말대로 안 좋은 일도 있었지만 난 내 인생의 13/15를 이 집에서 살았고 시은이는 평생을 살았잖아.

그럼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이 집에 이사오고 건강하던 아이가 경기발작을 두 번이나 하고 저도 유산을 두 번했고 건강은 자신있던 남편도 수술에 응급실에 대학병원을 두번이나 가게 된 일을 얘기 해 주며 이집에서는 좋은 일이 없다는 요지의 말을 하며 설득했습니다)

저번에 엄마가 비 오라고 제사지내는게 언젠가 올 비를 기다리며 기도를 드리는거랬잖아.

나는 이 집에 살아서 안 좋은일이 일어난게 아니라 어디 살았든 일어났을 일들이라고 생각해.

엄마, 생일이브 축하하고 결론은 이사가기 싫어.


엄마께 시후가.

2023.3월. 엄마 생일이브에


흔하게 하는 일로 점이라도 보러 갈까 싶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일이 있을때 남들은 아는 언니에게 조언을 듣듯 그곳으로 간다던데..나도 가볼까 많이 생각해 보았다. 뭐라고 할까? 그냥 보자마자 "고민이 있어서 왔구만. 앉아! 그래 네가 못 되서 그런건데 이사를 가고 싶어? 그 집이 문제인거 같아? 니가 문제야. 부적 써. 너만 바뀌면 돼!"하면 어쩌지? "니가 모든 문제의 발원지구만. 너만 아니면 아무 일도 없을건데 니가 깨방정이야. 아파트 살면서 층간소음 없길 바라? 욕심이지. 개념없는거지. 뭐? 상상초월 인간 말종이라고? 들어보니 좋은 사람들같구만. 너는 평생 우울증과 비관적인 생각과 사람을 재단하려는 성향으로 힘들게 살거다. 그리고 평생 외롭게 살거다!!!!"하면 어쩌냐구! 혹 떼러 갔다가 나는 안되는 인간이라는 <인쓰(인간 쓰레기)뱃지>만 획득하고 돌아오게 된다면? 내 돈주고 가서 외부적 문제와 내면적 문제를 곱빼기로 인지만 하고 오게 된다면? 그래서 두려웠다. 이사를 가라고 해도. 참으라고 해도. 무슨 얘기를 해도 들을 마음을 먹기가 무서웠다. 가라고 하는데 가지 못한다면? 가지 말라고 하는데 내 마음은 정리가 안 된다면?


대신 타로를 보았다. 누군가가 답이라는 깃발을 땅에다 직각으로 꽂아주면 내 마음의 기울기가 더 잘 비교되어 보이듯. 내가 어느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있는지 더 잘 알게 되는 기능으로 친구에게 해주기도 했다. 정답을 주기위한 타로가 아니니까. 내 마음을 가리는 이성이라는 커튼을 살짝 걷어주는 기능으로 타로를 본다. 누구는 문제만 있으면 용한 타로집이라며 보러오마 하니 잘 보는 타로집이 되어 나에게도 무료 점을 봐줬다. <윗집이 이사를 갈까요? 층간 소음이 사라질까요? 내가 이사를 가야할까요? 이동수라면 이사의 경우, 직장으로 나가는 경우 더 나은 선택은? 내 마음의 평화가 올까요?..>


힘들어 도저히 참기 어려우면 또 카드를 꺼냈다. 뽑은 카드는 이동의 패. 그게 이사가 되었든 직장이 되었든 어떻게든 움직이는 카드였다. 매번. 볼 때마다. 가장 충격적인 카드는 불타는 타워에서 사람이 떨이지는 것이었는데.(메이저 16번. 타워) 많은 함의가 있으나 통제력 상실. 엄청난 변화라고 하는게 그때의 마음을 가장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통제력도 상실했고 갈피를 잡지 못해 매개물인 번개도 필요없이 무너질 준비가 되어있었으니까. 점 보러 가는 용기는 못 내고 타로를 셀프로 보며 그래 이사는 힘들어졌으니 나에게 변화를 줘야겠다. 하며 일을 간 것이 엄청난 변화이기도 했다.

고통이 하나 시작되니 모든곳으로 번졌다. 아토피가 가려움의 구역을 키우듯, 산불이 이름도 예쁜 풍력 3의 산들바람보다 조금만 더 세면 걷잡을수 없이 온 산으로 퍼지듯이 옮겨 붙었다.


층간 소음이 잠시 잊었던 내 우울로 내 우울은 아이의 빠른 사춘기를 소환했다. 자살하겠다며 창문앞에 유서를 남기게 했으며 그런 아이를 이해하지 않았고 학교를 가지 않겠다는 아이의 머리를 쥐어 뜯으며 고함만 질러대어 집안의 공기는 환기만으로 되지 않는 독을 풍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남편도 중재자로의 스트레스로 건강을 잃어갔으며 둘째는 가족이 싸우는 모습을 난생 처음 보며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자다가 고함을 지르기 일쑤였다.


가족의 해체도 그리 미친소리이지만은 않아 보였다. 엄마의 고통은 관심도 없는 딸이 미웠다. 딸의 고통도 몰라주는 나는 엄마같지도 않았다. 우리는 어쩜 이리도 평행선만을 달리는가 싶으면서도 조금이라도 다가가려는 몸짓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일이 최우선처럼 보이는 남편도 그저 이방인같기만 했다. 일때문에 주말도, 퇴근 이후도 충성하는 짓이 우리를 위한 짓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감정만 퍼졌다. 맑은 물 속 빠뜨린 한 방울의 검은 잉크같았다. 스포이드로 빨이들이는 것은 불가능한 겨우 잉크 한 방울.




2019년 10월 윗집 유치원 선생님이 이사를 갈 거라했다. 학교 병설 유치원이라 차량 운행이 되지 않는 곳이어서 아이를 데리러 간 길이었다. 곧 이사를 가신다며, 둘째 유치원 선생님은 그렇게 가볍게 말씀 하셨다. "이사가는데 새로 이사 들어올 집은 아이가 많이 어려요. 괜찮을거에요. 아, 그리고 이제 시은이 어머니도 이사 나와요. 발전가능성도 없고 아이 학교 때문에도 나오는게 좋아요."하신다. 새벽 4시 매일 드릴 소리를 내던 선생님 윗집. 본인도 그런 12층과의 지루한 갈등만 아니었다면 이사는 생각지도 않았을거면서 미래를 위해 깊이 생각하고 하신 것처럼 말씀하셨다. 그렇게 12월 날도 화창한 어느날 윗집은 이사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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