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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층소화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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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Nov 17. 2023

2019년 12월 어느 날

그들이 내 귀로 들어왔다.

그동안 알지 못했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아파트라는 주거공간은 나무 합판 몇 개로 만들어진 인형의 집이었단 걸. 거기에 뼈가 되어줄 쇠 몇 줄 근육이 되어줄 시멘트 몇 포대로 이루어진 한 지붕 다세대. 모르는 사람으로 살아가지만 서로의 움직임을 속속들이 잘 아는 한 집 사람이라는 것을.



'이사 와서 너무 좋은가보다' 얼마나 신나면 잠시도 안 쉬고 깡충깡충 일까?

세대가 적은 빌라에 살다 이사온다고 윗집 살던 선생님이 말씀 주셨던 것 같은데.. 거기서는 1층이었으려나? 그 집은 전세를 주고 온다고 하니 세가 확장된 느낌이 들까? 영토를 넓힌 기분 같은? 여러모로 행복이 자꾸 커지는, 내 세상이 커지는 그런?


물려받은 땅 한 평도 없는 나는 그 기분 모르겠다. 아니지 내가 열심히 모으고 아껴서 산 땅 한 평도 없어서 그 기분 모르겠다. 공동 주택을 샀으니 공용 땅으로 치면 지상에 소수점만큼의 땅은 지분이 있으려나? 괜히 기분이 가라앉는다.

매일 십원 한 장(?)도 아끼고 안 써야 한다 세뇌교육을 하던 어머니셨다. 더는 점심값 고민도 집까지 걸어 다니기도 싫어 가리지 않고 아르바이트하던 대학시절. 손톱 밑 기름때 묻히며 번 주유소 월급까지 홀랑 가져가서 모은 돈으로 지하철 앞 1억짜리 집을 사셨지. 재개발 붐이 일며 6억이 된 집 한 채 그거 있는 것도 "큰오빠 다 줄 거다" 유언 예고를 하는 엄마. 듣고 나니 돈 욕심도 없던 나는 버림받은 기분에 소송을 해서라도 정신적(?) 지분을 갖고 말 테다 허무한 다짐을 하고 있긴 한데. 그래서 그런가? 어쩌자고 윗집이 이사를 왔으면 온 거지 기분은 왜 때문에? 나의 상상 확장력도 참 쓸데없이 활발하다.

뭔진 모르지만 지고 시작한다. 걸지도 않은 싸움에 이미 의문의 1패. 구질 구질하게 이곳에도 저곳에서 엮여있는 내 과거와 현재, 남 생각은 1도 없이 편안하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윗집.


"세대를 호출하였습니다. 세대를 호출하였습니다"

"예"

"아랫집입니다. 층간 소음이 심하니 조심 좀 합시다"

"예, 죄송합니다."

"...."


"아니, 좀 구구절절 잔소리도 하고 조심 좀 하라고 얘기를 해야지 그렇게 뭉떵거려서 얘기를 하냐!" 퉁명스레 한마디 한다. 남자들이란..

그래도 그렇지. 뭐야. 두 달이 넘도록 새벽 5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산책 30분을 제외하고 밥도 뛰면서 먹는 애가 있으면서. '도저히 안 되는데 3년만 시집살이한다 생각하고 좀 봐주십시오.' 하든지. '저희가 많이 시끄럽죠?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던지. 뭐 내용이 있어야지. "죄송합니다." 끝이라고? 이사 오고 떡 돌리는 문화는 사라졌겠지만 '이사 온 윗집입니다. 저희 집에 식구가 좀 많습니다. 어린 남자아이도 있고요. 미리 양해 말씀 드립니다.'라고 했으면 <내 언니네가 위에 산다> 생각하고 귀 노화 기능 작동을 시키고 살았을 거 아냐!

'저집! 그래도 좀 그렇긴 하다? 애도 엄청 활발하네 ㅋㅋ' 하며 웃으며 우리끼리 얘기도 하고 말이지.

아니야, 그걸 알면 저렇게 살겠나. 새벽 4시 30분부터 화장실 가면서 쿵쿵쿵 코끼리 흉내 내며 걷고 쾅쾅 문 닫으며 도대체 누굴 깨우고 싶은 거냐 싶게 사춘기처럼 굴면서 빨래를 시작하니. 5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작은 치타는 깨어 첫 발로 쿵쿵 내가 일어났다 기침을 알리는데. 기침하신 후에는 예의 뛰기 시작, 그걸 아는 사람들?

호출은 그걸 확인하는 절차일 뿐. 그렇게 주어졌다, 그날 1시간의 스누즈기능. 춤추는 부엌등도 없이 먹는 오랜만의 식사는 말이다. 이쯤 되면 조카라도 머리는 쥐어박아야겠다. 언니 옆구리도 꼬집어줘야 된다.


매일 접시를 깨며 싸우던 옆집이 있던 부산의 신혼집은 약간, 재미라고 할까? 우리가 신혼이니 남 싸우는 것도 웃기고 '왜 저래?' 하며 유쾌하게 넘길 수 있었는데. 15년 밖에 안 살아본 아파트는 이제 우리 부부의 결혼생활 아니 육아만큼. 알 만큼 알 거 같다. 신혼의 신남은 소비기한이 있고 아이를 키우며 힘들어 딱 죽을 만큼 괴로운 것도 또 어느 정도 지나면 그 당시 그 힘듦은 사라진다는 거. (비록 더 큰 고개가 있다는 건 선배님들 경험담으로 추측만 한다. 사춘기, 학업, 입시, 취업, 결혼...) 아파트는 그저 사는 곳. 넓어졌다고 더 행복할 것도 좁아졌다고 미니멀해질 것도 마음이 비워질 것도 없는, 그 덩어리가 내 행복이나 존재 모두를 대변할 수 없다는 거. 오롯이 내 소유물이기만 하지 않다는 점.


언제까지 신나서 저렇게 뛰고 쿵쿵 쿵쿵따 걷고 물건을 20시간 옮기면서 끌고 금괴를 바닥에 던지고 하는지. 가족들 다 같이 하는 술래잡기는 언제까지 전 세대 다 들리게 할지. 애가 뛰는 소리는 비교도 안 되는구나. 어른이 맨 발바닥으로 뛰면서 고함을 지르니 내가 숨어야 하나 싶다. '나 없어요~ 이제 찾아보세요!' 처음부터 끼워주지도 않은 거 같은데 나는 왜 같이 하는 거 같냐? 너네는 절대 나를 못 찾을 거다. 들킬까 긴장되는 숨은 자보다 내 심장이 더 격하게 뛰지만 안 들킬 자신은 있다?!


아냐 애도 어리고 집에 식구도 5명이나 되는 거 같은데 이사하고 몇 달은 정신도 없고 짐도 계속 옮기고 공사할 곳도 계속 나오고 그러는 거야. 슬리퍼 사러 갈 정신도 안 생기고 인테리어 해 놓은 집에 매트로 도배하긴 아직 아까울 수도 있지. 조금만 참아보자. 개인주의자의 표본인 나지만 이기적이진 않잖아.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다. 눈을 감자. 나는 감자다. 나는 사람이 아니다. 심호흡. 심호흡.


1년이 넘어도 나는 감자가 되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사람인채로 죽으려나보다. 감자 같은 건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될 건가보다."산모님, 숨 쉬셔야 해요!"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첫 째를 낳을 때 들었던 간호사 목소리가.. 숨 쉬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그때나 지금이나 숨 쉬기는 그냥 되는 게 아니구나.


그 후로 쪽지도 붙여보고 인터폰도 더 해봤지만 무슨 행동도 무용하다. 힘들게, 고민하며 한 모든 행동이 이렇게 소용이 없을 수도 있다.


그게 세를 확장한 기세 좋은 정복자의 아파트 생활 행복 때문인지 그냥 그런 사람들인지는.. 모르면 안 될까 싶다. 그냥 내가 여기 이곳에 있다는 인지를 하고 싶지 않은데. 그냥 내가 있는 곳이 내가 있는 곳이면 안될까. 내가 있는 장소가 나라는 사람을 규정짓지 않고 그냥 먼지 같은 상태로 떠돌 수 있는 가벼움. 내가 가장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현실 인식 없는 공간에서의 부유하는 시간을.


아침형 인간은 바란 적이 없다. 하루 많은 시간을 잠에게 바치며 미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내게 새벽부터 시작되는 기상 북소리는 은행열매 같다. 얼마나 몸에 좋을지는 몰라도 쓰레기통에 넣고 싶다. 내가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고 싶을 뿐이다. 온 집을 울리는 듣기 싫은 불규칙한 부정기한 진동은 음악으로 가려지지도 않는데. 숨을 쉬듯 듣던 음악도 무언가를 숨기려 들으니 그냥 신경을 거스르는 불협화음의 소음이 된다. 피곤한 하루를 마감하는 것도 내가 정하고 싶다. 언제 잠들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기다리다 겨우 쓰러지듯 자고 싶지 않다. 누가 자고 나면 다음 타자가 기다리는 고문은 그만 당하고 싶다. 아니면 내가 무얼 잘 못해서 고문을 받는지 설명이라도 주든지.


가장 혼자일 수 있는 공간에서조차 혼자일 수 없도록 만드는, 벽이 무너지는 상태. 불안이 무너진 벽을 차곡차곡 채우고 있었다.


(사진:아침마다 운무에 휩싸이는 저희 아파트를 찍어보았습니다.  나무꾼이 올라갔던 하늘 위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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