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의 값어치

부위별로 가격은 상이합니다.

by 노사임당

"저기, 잠깐만요"

"예?"

"아, 머리에 뭔가, 뭐가 붙었어요."


머리에 무언가 붙어 있다는 말에 둘째가 겨드랑이니 턱밑이니 사타구니에 흘려서 붙이고 다니던 밥풀이 생각났다. '밥풀? 아씨. 사회적 지위와 체면 같은 건 없지만 그게 밥풀이면 좀 부끄러운데. 하루종일 그걸 봤을 마트 손님들도'하는 생각도 잠시. 언뜻 든 생각은 사라지고 어떤 이미지가 떠오른다.


"혹시 바코드스티커 아닌가요?"

"아, 예 맞는 거 같아요. 미닛메이드 2,380원?"

"저런. 쯧쯧. 저는 퇴근할 때 가격이 메겨지는 직종에 있습니다"

"예?"

"잠시 긴장의 끈을 놓으면 가격이 메겨져 버리는데요. 그게 참 저렴해요. 오늘 같이 일하는 채소언니는 퇴근할 때 보니까 하채는 1360원이고 상채는 2800원이더라고요"

"아하하하 진짜요?"

"저 마트에서 일하잖아요. 랩으로 채소며 과일 싸고 거기에 바코드 붙이는 작업 하다가 잠시 손님 물건 찾아드리러 간다든지, 상추 싸는데 깻잎 사려는 손님계시면 작업하던 거 잠깐 옷에 붙이거든요. 그럼 이렇게 붙였던 거 까맣게 잊고 있다가 값싼 인간으로 퇴근하게 되네요. 저의 퇴근 값어칩니다"

코드가 적힌 코팅지가 있다. 오이는 5번 사과는 204번 ㄱ부터 ㅎ까지 순서대로 채소 과일들의 코드표가 나열되어 있다. 그럼 그날 들어온 채소의 도매가격에서 이윤을 얼마쯤 붙여 소매가격으로 계산을 한 후 저울에 코드를 쳐 넣고 가격을 설정한 후 저장. 물건을 랩으로 포장하고 저울에 무게를 재어 가격을 출력한다. 그러다 소량이라 얼른 끝내야 하는 채소가 있을 경우 아까 코드번호를 또 찾고 기억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스티커를 하나 출력해 대충 작업대에 붙여놓는다. 일의 능률을 위해. 여기서 중요한 건 대충이다. 야무지게 붙이면 떼어내기 힘드니까. 그러면 완벽히 붙이지 않은 그 스티커는 어느 순간 바삐 움직이는 사람의 물결 속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탈주의 배에 승선. 동분서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열심히지만 싸구려 스티커라는 충의 숙주로 전락한 나를 보게 된다.


몸값 2,380원.


오늘 갔던 북콘서트 출연자이신 김동식 작가님은 피시방에서 하루 1,900원의 시급으로 11시간을 일하여 한 달 60만 원을 받았다 했다. 그것도 3년간이나. 그 후 친척의 소개로 서울의 주물공장에 이직을 하고 갑자기 월급(130만 원)이 두 배이상 뛰는 급성공. 고립된 공간 단순한 작업을 하며 하루 한 봉 건빵 식사에서 한 끼 피자로의 비교불가한 금전적 풍족함에 10년을 계속 일했다고 들었다.



나의 시급은 9,620원이다. 하루 5시간을 일하니 48,100원이 나의 하루치 몸값인 셈. 대학시절 주유소에서 손톱밑에 까만 기름 묻혀가며 시급 3,000원 벌었는데, 28 년 전임을 제외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사회에서 요만큼의 값어치로 메겨지는 인간인데 나 같은 사람이 소중한 미래의 자원인 아이에게 윽박지르고 훈계하고 비난을 해도 되는 걸까? 나 같은 값어치의 사람에게 이런 비난을 받는다면 이 아이는 사회에 나가서 어떤 대접을 받을까? 너무 심한 비약이라고? 맞다. 100% 맞는 말이다. 그냥 내가 한없이 값어치 없는 것이 아닐까 주눅이 들어버렸다. 층간소음의 피해가 이렇게나 크다.(이젠 아무거나 이렇게 기승전 층간소음으로 쉽게 쳐들어 간다)


살기 위해 일을 한다. 일을 한 값은 돈으로 받는다. 그게 자영업이든 월급쟁이든. 돈은 모두에게 필요한다. 돈은 많으면 좋을듯하고 적으면, 불편하다. 그렇다면 그 값은 많으면 편할 것 같은데, 월급이라는 게 나의 편, 불편 호, 불호가 정해지는 단순 계산으로 끝나지 않는 거 같다. 절대 평가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비교하여 많고 적고 가 정해지는 거 같다. 나는 해외여행 안 가도 삼천포로 빠져 남해군만 가도 바닷길 달리는 차 안 풍경이 좋고, 코쟁이 아메리칸처럼 아메리카노 한잔 뽑아 들고 모래사장을 걸어도 여행 온 거 같고, 모래성 쌓는 아이들의 모습만으로도 그림같이 예쁘며, 쏘는듯한 햇살에 부서지는 파도도 감명 깊게 행복한데. 소고기 살치살 꽃등심 말고 돼지 목살에도 충분히 '그래 이 맛이야'싶게 맛만 좋은데.


나는 물색없는 모지리 취급을 받는다.

변호사 시급은 200,000~300,000만 원이 보통이고 대형로펌은 단위가 다르고 의사는 월급을 일당으로 계산하면 또 누구는.. 식으로 비교하기 시작하면 내 삶은 나의 행복과 관계없이 참으로 한심하게도 결괏값으로 불행하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내가 편하게 보낸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내며 평범한 일상을 포기하며 그렇게 수령한 것일 수 있는 그들의 몸값을 폄훼하거나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치부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노력은 훌륭했고 그리하여 쟁취한 보따리는 누릴만하다. 그렇다고 출력물이 적은 자들의 노력이 모자랐다고 그러니 적게 가져도 불평하지 말라고 말하려는 것도 결단코 아니다. 가난의 대물림으로든 착취의 대상으로 부당하게 노동력을 빼앗기고 있든. 노동 시장이 부조리하여 구조적 어려움을 겪는다면 상응하는 대가를 받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저 나의 일당은 나의 값어치일까?


내 일당은 나의 몸값일까?


나의 학벌은 보잘것없고 나의 외모는 눈에 띄지 않으며 나의 재주는 무언가 한참 모자라다.

공부를 더 하고 고통스러울 성형수술을 하며 자격증을 더 많이 땄다면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싶을까? 내 몸값은 얼마이길 바라나?


통장에 찍힌 몇 개의 숫자가 나의 값어치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나를 과소평가 마라며 세상에 고할 필요도 없다. 삶은 상대평가보단 절대평가일 테니. 내가 원하는 바를 노력으로 얻었다면 손을 올려 머리도 쓸어 넘겨주고. 응원도 해줄 테다. 이제야 드디어 시작한 그림 공부도, 한 동안 멀리했던 글쓰기도 다시 시작한 지금. 우울에 빠져있던 내가 일상을 걷는 것에 기쁨도 느껴보고 월급날은 아르쉬 코튼 100% 종이도 몇 장 사보면서 숫자 몇 개로 우울할 뻔한 하루지만 숫자 몇 개로 이렇게 행복하구나 생각하며 그렇게 살면 되지 않겠나싶다.

매거진의 이전글나 가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