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귀엽귀 슬프귀

뭘 먹으면 이렇게 귀여워지는 거야?

by 노사임당

눈물이 한가득이다. 이미 한바탕 쏟고 왔나 보다. 눈꺼풀은 부어있고 콧물도 흘러 길이 나 있는 상태.

사진 큰딸 손가락 작은딸

가려울 법도 한데 인중으로 흐르는 콧물은 순리에 맡겨 놓고 있다. 아무래도 지금 당장은 매우 중요한 일이 있나 본데. 태권도를 마치고 얼굴에 증거는 잔뜩 남겨놓았으면서 시침을 떼듯이 발걸음 가볍게 들어온다. 혹시나 괜찮아지는 중인데 긁어 부스럼 만드는 거 아닌지 조심스럽지만 그만 참지 못하고 묻는다.



"왜 울었쪄염?" 오는 혀가 맨날 짧으니 가는 말의 혀도 짧다.


"오늘 승급 심사가 있었는데 형들이 딴 띠를 보더니 갖고 싶다고요"애 엄마가 따라 들어오다 눈빛으로 당혹감을 표하며 대답한다.

글 그림 노사임당

우리 마트에 오는 가장 귀염둥이, 일명 요미가 그랬단다. 그게 뭐라고... 모든 애들이 욕망해 마지않는다는 바로 그 태권도 띠! 빨주노초파남보도 모자라 흰색에 반반색에 유난스러운 계급이 있는 태권도 학원의 띠.

그게 또 우리 귀요미를 울린 거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사춘기 고시를 충실히 치르고 있는 중2 첫째도 검은띠까지는 땄는데. 그땐 그랬지. 승급 심사에 대회준비에 참 바빴는데. 태권도장의 일은 닫아놓고 슈퍼의 문을 엶과 동시에 과자 쇼핑에 신이 났는지 기분이 반쯤은 좋다.


그래 그렇게라도 괜찮아진다면 슈퍼의 할 일은, 내 임무는 완수다.


정신없던 마트 적응 시기를 지나고 어느 날, 마스크를 쓴 귀욤뽀짝 한 요미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타입인 나에게도 너무나 귀여워서 말을 붙이지 않을 수 없었던 아이. 3살이 지나 이제 제법 컸다는 자아가 자리하는 그 시기. 내가 이제 해보니 되는 것도 많은 나이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이 없다면 우주 최강 동생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이로운 타이밍. 동생이 있는 아이라면 동생에게 그 자리를 내줄 수 없어 아기로 돌아가기 딱 귀여운, 발레리나처럼 엄마의 꼭지를 여러 번 돌릴 수 있는 그 개월수.


뽀얗고 동그란 볼, 모공이라고는 눈에 와이퍼를 달아보아도 보이지 않는 쫀쫀한 피부, 까만 눈 쪼꼬미 코와 입. 딱 집어 그렇다 말하기는 미안하지만 약간은 가분수 상태인, 넘어질까 무서워서라는 핑계를 댈 여지를 주는 안아보고 싶은 '패티'스러움. 혀는 또 언제 자라는지 말은 모든 받침이 사라지는 그 맞춤법 오류상태란...


살기 위해 그렇다고 하지 마라. 귀여운 건 귀여운 거다. 진화론적 입장에서 귀여워야 돌봐주려는 행동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자신의 유전자를 어쩌고 '베이비 스키마'정의는 됐다. 넣어둬라. 그 감동적인 귀여움이란. 그 한없이 무해한 아기 향이란. 내가 나이를 먹었구나 이제 애가 힘듦의 주체가 아니라 구경의 대상으로 귀엽게 봐지는구나 서글퍼질 새도 없다.

과자를 계산대에 올리는 요미에게 물었다.


"뭘 먹으면 이렇게 귀여워져? 이 과자 먹으면 귀여워지는 거야?"

"이 꽈자는 따기 맛!"

"딸기 맛 먹으면 귀여워지는구나?"

"이 꽈자는 젠니"

"아 젤리도 먹으면 귀여워지는 거구나"


밑도 끝도 없는 귀여워지는 과자의 나열시간이다. 이 모든 과자를 먹고 귀여워질 수 있다면 내 둥근 배는 이미 둘리의 그것만큼 귀여움의 완성이나 그럼에도 도전할 거다. 나도 죽기 전에 귀여움, 이쁨 좀 받아보고 죽어야 소원이 없겠는데 쩝.


어느새 단골이 된 요미는 끊임없이 과자 나눠먹자 같이 귀여워지자고 옆구리 찌르는 아줌마의 유혹에, 그 저급한 몸짓에 흔들리는 법이 없다. 귀여워지는 약은 흔하게 나눠먹는 것이 아닌가 보다. 그렇게 철저하게 관리되는 귀여움이었다니. 역시 톱클래스의 자기 관리는 빈틈이 없는 거였다.


이때만큼 자기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때가 또 있을 수 있을까? 저 밖에 모르는 것도, 그것마저도 귀엽기 그지없다.


태권도를 마치고 5시 3분에 시계처럼 정확하게 오는 요미도 가끔 마트 출근을 빼먹을 때가 있다. 무려 결근이라니. 아이의 엄마에게 인사 삼아 물었다.


"어제는 마트를 쉬셨네요?"

"아, 요미가 떼를 써서요. 떼쓰면 마트 안 오기로 약속했거든요"


철저하게 관리된 귀여움에 엄격한 훈육 지침까지. 훌륭하다. 요미의 미래가 기대된다. 왕의 DNA(자기 자식의 담임 선생님께 본인 아이가 장차 왕이 될 거라고 한 교육부 사무관)를 타고 난 아이는 백성 없는 나라의 나 홀로 망왕(망한 왕)이 될 상이지만 요로코롬 바른 어머니 밑에서 자란다면 우리 요미의 미래는 인성 갖춘, 백성이 따르는 건국의 왕이 될 상이다.


마트에서 언제까지 일을 하게 될지는 미지수다. 조울증으로 갑작스럽게 기분이 널을 뛰어 일하기가 가끔 힘들다. 게다가 체력이 저질이라 자주 쉬겠다고 하는 나를 사장님이 언제까지 좋게 볼 아니, 보통의 눈으로 볼지는 모르겠지만 일하는 동안 요미의 성장과 귀여움의 반비례에 대한 논문 하나는 완성할 시간이 주어질지 그 또한 궁금증으로 남을 것 같다.






곰돌이 푸 대사 중 (그림 글씨 노사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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