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 마린 블루에 반다이크 브라운을 섞어 만든 중간 무채색에 녹색 미량을. 그러니까 하엽색에 가깝다. 암녹색과 진녹색의 중간 정도라고 해야 하나. 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무채색에 군데군데 하엽색이 점처럼 놓여있다. 날개는 검은 기하학무늬가 장식되어 있어 흡사 자수 원단을 보는 듯하다. 자수가 놓여있는 레이스 치마처럼 속이 보인다.
어라? 생각보다 본채가 짧다. 날개가 몸을 감싸고 있다 생각했는데 날개의 반 정도나 될까 한 짧고 뭉뚝하여 볼품없는 몸뚱이를 하고 있다. 뭔가 구색이 맞지 않다. 되는대로 끼워 넣은 것 같다.
직접 보지 못한다는 점을 이용, 사진만 고급지게 찍어놓고 눈속임만 대충 한 온라인 판매용 싸구려 해외 배송 물건 같다. 과거 해외 배송은 국내 판매가 안 되는 유명 제품을 사려고 한 행위였다면 요즈음은 알아먹지도 못할 그 나라 글로 쓰여 있는 가격은 '실화냐?'를 내뱉을 만큼 싸지만 왠지 '그럼 그렇지'를 말하게 될 것 같은 그런. 시간이 빠듯하여 반품도 못할 줄 알면서 사야 하는 물건 같다.
아마도 7년이라는 기간 동안 그 무거운 흙을, 땅을 이고 살면서 한 번도 힘들다 생각지 않았을 든든했던 몸뚱이가 갑자기 빛 속으로 나가려다 보니 취향도 주제도 모르고 "제일 좋은 것으로 주세요." 해서 산, 대학 입학식용 양복 같다. 짧은 회색 모직 재킷. 흰색에 가까운 미색과 검은색의 체크무늬 미니 주름스커트를 입고 무릎을 덮는 검정 양말과 금강제화에서 산 갈색 옥스퍼드화 게다가 베레모까지. 한껏 멋을 냈던 1995년 어느 봄날의 내 얘기 같다. 제법 예쁜 치마가 교복이었지만 속바지인 양 체육복을 껴입고 4계절을 나던 선머슴 같은 내가 여대생이랍시고 미니스커트까지 차려입었는데 난 무얼 위해 이 짧은 입학식에 이렇게 유난을 떨었나 밀려오는 후회. 누가 볼까 부끄러웠던 기억. 그렇게 꾸며 입고 축하할 친구도, 같이 와준 가족도 없어 바로 집으로 들어갔던 허무했던 대학 첫날 같다.
그렇게 열심히 울고서 겨우 온 곳이 마트 계산대 뒤 먼지 가득한 구석이라니.
마트를 휘젓고 다니는 초파리, 그냥 파리들과 달리 덩치가 커다란 곤충이 초대하지도 않았는데 어쩌자고 매일 온다. 어제도 죽은 그놈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와 네모난 휴지통 속으로 입관(?)시켰고. 그 전날도 또 그 전전날도 그랬다. 그러니 어제 그 녀석인가? 할 수도 없는데.
생을 소비하고 몸을 떠나면서 이렇게 삶이란 게 허무하구나 하지는 않을 듯하다. 긴긴 세월 땅속 세상에서 무언가를 준비하듯 살다 장원급제하여 빛 속으로 출세(?)하고 영세(永世)를 위하여 유전자를 남기는 일. 이루어 낸 과업이 성공적이어서 더위도 잊고 있었지만 새삼 돌아보니 더위의 한복판이라. 차양막 같은 날개가 가는 그늘을 만들어 준다 하여도 성공을 자축하는 마당에까지 고생스럽지 않으리라 생각한 지도.
정확히 '에어컨이 자리한 계산대 옆'에 누울 자리를 정한 매미라는 녀석의 꿍꿍이는 말이다.
파리들이 먹을 것을 찾아 들어온 것과 달리 향기로운 복숭아와 시원한 냄새를 풍기는 수박 사이는 갈 생각도 없는 것 같다. 그저 반듯하게 누워 천국의 시원함을 즐기는 듯 보이기까지 하다. 그렇게 여름은 매미가 누울 자리를 찾는 사이 막바지로 흐르고 있다. 그 녀석들이 한 마리 두 마리 공동묘지를 만드는 동안 혹독한 더위로 사람 목숨을 앗아갔던 이 여름도 매미도 간다.
폭탄이 떨어져도 하던 일을 멈추어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거나 놀라지 않는다고 한다. 계속 맴맴 울며 집중하여 목적을 달성한단다. 인간은 그보다 훨씬 더 긴 세월을 산다. 그 긴 세월 중 꼴랑 3년. 부엌 등과 텔레비전이 흔들리는, 인간이 만들어 낸 지진에도 목적을 잃어버린 듯 흔들리고 도망가기 바쁘다.
나는 누구인지. 살아갈 값어치가 있는지 없는지 몰라한다. 무엇을 해도 즐거움이 묻어나지 않는다. 생각은 다시 돌아 층간소음 그 지진 속으로 매몰된다.
삶을 살아내고자 마음을 모았다면 매미처럼? 더위도 폭탄도 경쟁자도 마지막 에어컨 옆 곱게 누워 쉴 수 있을 천국을 상상하며 용맹정진하여 볼까. 가끔은 너무도 많은 생각이 걱정을 걱정하게 만드는 힘 같다. 너무도 많은 작전으로 오히려 목적이 흐려지는 현상도 생기는 것 같다. 오이는 자르면 단면이 달라져 버리지만 버터는 잘라도 변함없이 노란빛을 발하는 버터이듯 쳐 내자. 더 나은 결과를 위해 고민했지만 그 고민이 내 발목을 잡는다면 '고이 접어 나빌레라'시켜버리리라.
오늘도 경건한 마음으로 입관식을 거행하며 나는 다짐해 본다. 인생은 길지만 고민하기에는 짧은지도 모르지. 조금은 내려놓아보리라. 잔뜩 들어간 어깨를 풀어보는 거다. 마지막이 될 모습에 고개를 숙이며 주문을 외운다. 고이 잠드소서 용자 아니, 용(勇) 충이여! 용기를 기억할 테니.
-층간소음을 벗어나기 위해 마트로 도피한 주부의 '을'질 적응기-
글 사진 노사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