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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Jan 25. 2024

사임아! 대학 가자

방통대 지원 기록

1년에 책 1권 읽을까 말까 한 지인이 있다.




내 남편이다. 마누라 동선에서 도망가는 것도 한계가 있다 보니 책방에 자주 간다. 반의사불수용법(내 맘대로 정한 법)에 따라 강제로.

갑자기 누군가(얘기했는데 잊음)에게 얻어온 기타를 치겠단다. 책 사달란다. 사준다. 안 한다.

흥미가 있어 보이는 책을 고른다. 사달란다. 사준다. 안 읽는(것처럼 보인)다.

이럴 거면 왜 사는지 모르겠는데 그나마도 안 사면 몇 장도 안 읽으니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사는 책은 1년에 두어 권인데 읽은 책은 1권도 안 되는 거다. 필요한 부분 읽었으니 읽었다 쳐도 되지만 본인이 다 안 읽었다고 굳이 이실직고하니 의견을 수렴할 뿐. 1년에 1권도 안 읽는다.


누구의 눈으로 보자면 맨날 책만 보는 여자가 있다. 당연히 남편의 눈을 통과한 나다. 살림은 언제 할 건지 부엌에 설거짓거리가 그로데스크하게 쌓여 있다. 집에는 서부 영화에서 보듯 회전초 같은 먼지가 굴러다닌다. 사막에서나 볼 법한 회전초가 가정집 거실에 왜 출몰하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하지만 묻지 않는다. (서부사람끼리 그런 거 묻는 거 아니다)


이쯤 되면 필요하다. 내 사회적 지위와 명예와 평판을. . . 가질 날을 대비해서. 자 변명 타임. 설거지는 다 했는데 깜빡하고 냄비니, 프라이팬을 안 씻으면 덩치가 커서 엄청나게 쌓이지만 개수로는 몇 개 안 되는 그것들이 아슬아슬하게 쌓인다. 애를 재웠는데 달그락거리면 깰까 봐 극도로 예민해지므로 늦은 밤의 설거지는 미루어 두므로,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

똑같은 집에서 15년을 살았으니 붙박여 있다시피 한 가구 밑으로 먼지가 살고 있을 테다. 가끔 그놈들이 세상 구경하느라고 나오면 회전초 같은 모습으로 굴러다닐 뿐이다. 내가 지극히 게으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라는 항변이다. 나는 억울하다. 누워있기 좋아하는 내 성향상 매일 쓸고 거의(?) 매일 닦으니,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 힘주어 말해도 된다고 뻔뻔하게 굴어본다.


책을 읽지 않는 남자가 보기에 책을 많이 보는 여자는 지혜로워야 하고 깨달음도 늘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책은 책이고 사는 건 그대로다. 도대체 뭘 읽었고 뭘 느끼고 어디에 적용하는지 모를 일이다. (청소가 안 되어 있어서 하는 소리만은 아니다)


"아니 책을 그렇게 보는데 그것도 모르냐?"

"...."


'아니, 심심해서 읽는 거고, 재미있어서 읽는 거지 책 읽는다고 현명해지고 아는 게 늘(어나는건 좀 맞는 것도 같은데)거 까지야 있나 뭐.' 한소리 할까 하다가 맞는 말이라 썩소만 날려준다.

"흥"


나도 안다. 내가 무식한 거. 교양도 없고 아는 것도 없다. 사실 학창 시절에는 호기심이 많아 넓고 얇은 지식을, 방대함을 인정받았다. "너는 어떻게 그런 것도 알아?" 하는 소리에 "이 정도야" 하며 반소(반만 미소 짓는 입술 모습)를 하곤 했던 나란 말이다. 어느 순간 사회에서 격리되어 아이만 키우며 중고 마켓과만 소통하고 당근으로 세상을 보다 보니 온 신문과 뉴스를 도배하는 새로운 사회 현상도 모르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머릿속에 든 얕은 상식도 유행 지난 나팔바지 취급을 받고 내가 알던 예전 정보는 새로운 연구로 폐기된 논문 같아졌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기존에 들어있던 지식의 양과 질도 허접했음을 밝힌다.


상식 혹은 교양 혹은 무엇이든 앎이 필요하다. 게다가 어쭙잖은 글마저 쓰려니 아는 게 더 없다 싶다. 무식하니 용감은 하고 있는데 용감도 밑천은 좀 필요한가 보다. 끝도 없이 나오지는 않는 거 같다. 뭐 좀 아는 게 있으면 좋겠다. 작가님들이 유식을 글 속에 흘려놓으면 좀 알아듣고 싶다. 글자는 읽는데 무슨 말인지 몰라서 논문 읽는 기분이다. 도통 처음 듣는 무슨 '-이즘' 같은 말들이 많다. 무식 타파가 절실하다. 나도 저 글들 속에 끼고 싶다.


공부를 해 볼까.


아~~ 언제까지 공부 타령할 거냐. 학교 다닐 때나 열심히 하지 맨날 공부가 부족하다 소리다. 이젠 글 쓴다고 공부가 부족하다는 이론을 갖다 붙인다. 지긋지긋하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언제까지 이 지긋지긋한 소리를 듣게 될지 끔찍하다. 그럴 거면 그냥 하게 하자. 공부 타령하다가 혼자 나동그라지더라도 하라고 하지 뭐. 제 능력도 좀 알게 되면 앞으로 '어... 공부 아니야...그런 거 안 할래' 하게 될지도 모르잖는가. 아니면 어쩐다고 진짜 공부를 하더니 조금 아는 게 늘지도. 다행스럽게 말이다.


공부라... 블로그를 작성하려 매일 '네벌'에 접속한다. 대구사이버 한양사이버 무슨 무슨 사이버 대학으로 와서 공부하란다. 그럴 시기인가? 어! 사이버 대학? 이런 거 학비 비싸지 않나? 아는 사람도 저런 사이버 대학 신입생으로 들어가 졸업까지 하던데. 비싸서 그렇지 할만할지도 모르지. 근데 대학은 비싸 비싸면 싼 거, 싼 거는 방통대, 방통대는 어렵지, 어려우면 자퇴. 아.... 역시 방통대인가? 그런데 방통대라는 곳에서도 졸업이 되는 거야? 도대체 주변에 졸업을 한 사람 본 적이 있어야지.

뭐 진짜 할 생각이 있으면, 그렇다면?! "잘 왔다. 공부가 목적이면 어렵고 까다로운 방통대를 해 보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학벌이 필요해서 하는 게 아닌 지식 혹은 앎을 위해 어느 정도의 강제력이 필요해서 하고 싶으니까. 굳이 돈 들여 학교를 등록할 거라면 말이다.


그래 방통대. 너로 정했다. 속으로는 십여 년 가까이 언젠간.... 하고 생각했으니 망정이지 이렇게 빠른 판단은. 한 달간 들어갔다 나왔다 하다 내린 빠른 결정은 어림도 없었을 거다.


입학지원서를 쓴다. 지난 대학 학점과 취득학점을 써넣는다. 학번도 생각이 안 나서 학교 들어가서 물어보기 했다. 거의 30년 만이다.(야! 너 며쌀이야?) 그래 다시 대학생 해보자.


나도 유식한 여자, 교양 좀 있는 여자로 변신해 보련다. 문화교양학과. 캬 이름도 문화에 교양에 다 갖췄다. 나도 문화를 아는 교양이 있는 여자 되는 거다 이거야!!



오늘 돈 넣으라는 문자가 왔습니다. 31일까지 돈 넣으라는데. 멍석 또 깔렸는데....

근데.. 이거 진짜 해야 해? 하고 싶긴 한 건가? 갑자기 컴퓨터 화면이 커 보인다. 나 어디까지 쪼그라들고 있니?




남편은 이번 달에 회사를 그만둘 거 같고 갑자기 이렇게 한가한 소리 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막 그렇습니다. 남편에게 뭘 해서든 밥 못 먹고 살겠나 해 놓고는 그만둔다니까 좀 막막하긴 합니다. 그래도 남편부터 살려야 해서. 할 수 없습니다. 어제는 밥 먹으면서 "당분간 살림해. 내가 이백 벌어올게!" 했습니다. 최저시급으로 일일 8시간 일하면 벌 수 있는 돈이니 쉽게 말은 했는데 오라는 곳도 없는 주제에 '어디 가서 일 하지?' ㅋㅋ 허언증 큰일입니다.

걱정마세요. 남편은 책임감이 심하게 강하고 오라는 곳도 있어서 금방 이직할겁니다.ㅋㅋㅋ(그래서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만 두라 큰소리 친 겁니다. 며칠전에 회사 팀장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 뒀거든요. 남편의 구인얘기에 사람 구할 생각없다고 일언지하에 자르는 사장이라.. 직원들 쓰러져도 나 몰라라 하니 그만두는게 맞습니다. 사람 잡는 회사 그만둬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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