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만이 주는 말이 있다. 그 공간이 내게 하는 수많은 속삭임 또는 호통 혹은 흐느낌..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건 내 탓이다.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은. 변명의 여지는 없었다. 그저 그 사실이 말할 수 없이 슬펐다.
가끔 엉뚱하게도 순진한 상상을 하곤 한다. 신이 내게 두 명의 망자를 깨우게 해 주겠으니 이름을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뭐라고 할까? 그분을 깨우기 위한 상상이었으니 다른 고민 같은 건 없겠다. "그분" 그리고 "마이클 잭슨"
무슨 관계가 있냐고 되묻는다면 그런 것은 없다. 그저 지극히 가슴이 아프다는 점만 같을 뿐.
아무 연관도 없다. 상실에 가슴이 아리다는 점만 같을 뿐.
4주간의 별거를 마치고 첫째가 왔다. 데리러 양산에 가면서 속으로 울음을 죽였다. 보자마자 눈물이 터질까. 혹시나 나의 흔들림이 아이의 약한 마음속을 헤집게 될까 조심해야지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담담하게 만날 수 있었고 아이와 나눈 얘기 속에서 걱정은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국내 캠프에서 돌아온 아이는 어제 하루를 잤고 오늘 다시 떠났다. 지금 아이는 비행기 안이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잘 자라주었고 더 마음이 큰 아이였다. 친구와도 선생님과도 원만히 잘 지냈고 모나지 않았다. 음식을 먹는 것, 생활 자세까지 어느 하나 유난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었다. 어디라도 원한다면 믿고 길을 나서게 해도 되겠다는 단단함을 전달받았다. 겨우 한 번의 별거로 알았다기에는 너무 서두르는 듯도 보이지만 말이다.
오늘 국제선 비행기를 타기 전 모여야 할 시간은 오후 4시 반. 우리가 사는 진주에서 김해까지는 1시간. 집에서 시간을 채우기보다 무엇을 할지 생각을 해봤다. 시간을 많이 잡지 않고 동선을 많이 빗나가지 않는 곳.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곳이 떠올랐다. 가깝고 의미도 있는 곳. 마음속 풀지 못한 어떤 것의 출처.
내 속으로 낳은 아이와, 살을 맞대고 지내던 아이와 잠시이긴 하나 이별을 하는 마당에 나와 28촌 관계인(진짜다) 그분의 상실에 마음이 더 흘러내렸다. 딸아이를 두 달 가까이 집이 아닌 곳에 보내면서. 군에 보내는 마음이나 마찬가지여야 하겠으나 그렇지도 않았으면서.
주차하고 입간판으로 뵙고 태어나셨던 곳을 둘러보며 눈물이 터졌다. 비염이 있는 둘째에게 휴지를 자꾸 빌리니 아이가 한 소리 한다.
"엄마, 그럴 거면 엄마가 갖고 있어!" "아냐 엄마 이제 필요 없어" 콧물 그만 닦을 거야. 아무 일도 없던 듯 살아놓고 공간이 주는 수다에 금방 귀가 연해져 버렸다.
나는 지금 봉하마을에 들어온 거다.
(다음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