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가 보겠습니다.

양산에 가면 뵙고 싶은 분이 이야기 속처럼 계실까 싶어..

by 노사임당

저에게는 중 2 딸이 있습니다.



올해 3학년이 되지요. 그 밑에 5살이 어린 동생도 있으니 딸 둘을 키우는 엄마입니다. 결혼식과 함께 '옳다구나' 허니문 베이비를 가지며 육체의 권리를 행사했는데요. 결혼이라는 의무가 무서워 아이를 낳기 몇 달 전에야 겨우 혼인 신고를 했습니다.

그렇더라도 결혼한 해에 혼인 신고한 거로 보자 보자 하니 그렇다면 그해에 가사 자격증을 딴 겁니다. 예, 제 직업은 모두가 부러워 마지않는 '사'자가 들어간 일. 누구나 당당히 자랑스레 얘기하는 '사'자 직업. 가'사' 업입니다.


프리랜서인데요, 종신으로 메여있어요. 사장이 없는데요, 평생 저보다 나이 어릴 것들 눈치를 봐야 합니다. 돈은 또 관심이 없는 어떤 남자가 갖다줍디다. 근데 자꾸 추근대요. 그 남자가요. 좀 요상한 업입니다. 자격은 주어졌는데 교육도 받은 적이 없고 뭐 그래요.

그래도 방 닦기 15년 차니.. 방을 얼마나 잘 닦냐 보니깐, 손목만 나갔고요.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든 여자든 하고 싶은데요. 그러면 살림 거덜 나니 밥만 잘해야 하는 아줌마고요. 애는 내가 키웠는데요. 지가 큰 줄 알고요. 살수록 이상해요. 요지경 속입니다.


뭐 그렇게 요지경 속 법칙대로라도 흘러가면 나름 평온할 텐데요. 큰 애가 제 혼자 큰 줄 알아서 말이에요. 괘씸죄에 걸렸습니다. 진정 혼자가 뭔지 당해보라고 캠프를 보내기로 했지요. 지진 대비를 위해 학교 공사를 한다나 어쩐다나 하면서 겨울에 방학을 석 달을 준거예요. 학교에서 아이를 뱉어낸 거 아니에요? 사춘기 아이와 꼼짝없이 석 달이 무슨 변이래요? 상상하지 마! 하지 마! 혈압. 당해보라는 마음 반 방학을 어떻게든 넘겨야 한다는 마음 반 그리고 작년에 제가 슈퍼에서 아르바이트한 돈이 있다는 이유를 보너스로 챙겨보니 결국 보내게 된 거지요.


23년 12월 30일. 양산에 있는 캠프에 모셔다드리러 출발합니다. 진주에서 양산까지.


제 친정은 부산이에요. 제가 사는 진주에서 통과하는 김해도 창원도 아무 때나 갈 수 있는데요. 양산은 데이트하면서 놀이동산 가 본 게 다일 정도로 동선이 맞질 않아요. 지인 결혼식이 있더라도 절친 아니면 갈 일이 없는 곳이라는 거죠.


그러니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는데도 "다음에는 가자!", "이번 여름에는 가자", "휴가 때 가보자"며 좋은 날 받으려 기다리듯 미루고만 있었어요. 그런데 '혼자 크신 분' 가는 길이 양산이라니요. 효도 한다요~. "가는 길이니 가보자! 간 김에 가는거여~"하며 부부가 다 설렙니다. 새로 산 가디건도 꺼내 입고 몇 개 없는 화장품도 톡톡 두드리며 꽃단장에 열심입니다.



아침 9시 30분 길 나섭니다. 겨울만 되면, 딸기 철만 되면 무휴로 근무하는 남편. 몇 달 만에 쉽니다. 제 운전이 좀 거친 데다가 길을 못 찾는 증상이 심해서요. 남편이 하루 억지로 시간을 냅니다. 소중한 휴일이네요. 그러니 그냥 자기 너무 아쉬워 전날 늦게까지 수다 떨다 잠들었어요. 피곤했습니다. 아침밥만 건너뛰면 바쁜 것도 없는 출발이니 늦잠을 자 봅니다. 배가 고파지면 가는 길에 편리한 편의점에 들러 허기 처치용 음식 쇼핑을 하면 될 테지요. 여행은 둘러 갈수록, 정해진 것과 멀어질수록 의외의 깨달음도 매력도 줄 테지요. 목적지는 양산 원동면으로 치고 1시까지 도착하면 됩니다. 2시간 정도 걸리네요.


비교해보면 크지도 않지요. 우리나라가. 그래도 우리집 우리 동네에 비하면 계산도 안 되는 면적입니다. 그러니 사는 동네만 벗어나도 무척이나 신기하고 새롭습니다. 익숙한 길을 조금만 벗어나도 새 장난감 받아든 아이 눈빛으로 변합니다. 입꼬리가 절로 올라갑니다. "우와~저기 좀 봐!"시작입니다.


아이를 데려다 주는 길은 보이는 곳마다 낯선 풍경이라 눈이 바쁩니다. 양산은 울산시 울주군, 밀양, 경북 청도군, 경주시까지의 해발 1,000m가량 산지를 이르는 영남 알프스에 포함된 곳이에요. 그래서 그렇겠죠? 이름에 걸맞게 산도 웅장하고 바위마저 위엄있습니다. '야~양산이 이렇게 멋졌나?' 하면서 구경에 바빴지만, 사실 양산을 제대로 구경한 적도 없네요. 가는 절마다 바위를 깎았든 그대로를 이용했든 돌부처도 보았습니다. 대웅전에 곱게 앉아 계시는 부처님만 보다가 마주 보고서니 크기도 감동도 다르더라고요.


그럼, 호수도 강도 산도 절도 이뻤던 양산 가는 길 소개 하겠습니다. 사진도 기록도 아직 초보라 많이 버벅댑니다. 눈치껏 따라오셔야 해요. 아셨죠?


사실 말만 영남 알프스라고 하는 줄 알았습니다. '유럽에 있는 알프스를 왜 갖다 붙이냐…. 좀 그렇네. 되게 할말 없나보네. 새로운 것이 없나?' 하며 별 감흥 없이 흘려 보았더랬죠. 이렇게 바위산의 풍광이 수려할 줄 몰랐어요. 이해시키기 쉬우라고 붙였나보다 할 만큼 장관이었어요.


고속도로에서 내려 양산에 진입하고는 산세가 아득해 보이긴 했어요. 굽이굽이 산을 휘돌아 흐르는 물도 깨끗하고 산도 골이 깊다고 느낄 즈음 절이 나와요. 절 이름이요. <천태사>인데요. 천태산에 있어요. 편하게 이름 지었다 그죠? 들어가는 입구가 길 바로 앞에 있는데 느낌이 이상하게 드루와 드루와 분위기를 풍겨요. 시간도 있겠다 가볼까? 잠시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고 오자며 내렸죠.


우리의 목적지는 아이의 캠프 시설이기 때문에 가면서 여행 계획을 짜고 동선을 미리 둘러보지도 않았어요. 아이를 데려다주고 양산에 책 사러 가는 게 오늘 우리의 계획이라면 계획이었죠. 그렇게 즉흥적으로 내려서 사부작사부작 걸어본 절은 '깜짝 놀람'을 선물합니다. '계곡으로 물이 참 적당히 흐르네. 어? 다리도 있네. 절이 꼭 부산에 있는 동의대 가는 길 같다.' 생각하며 오르는데요. 계곡을 옆에 끼고 지어진 절이라 물길 따라 오르니 법당 대웅전 응진전 용량당 용앙당 부속 건물들이 하나씩 둘씩 보이고요. 공양실이니 시주함이 놓여있는 매점 겸 물품 판매소도 지나서 무슨 전. 무슨 각이 많아요. 절에 가서 대웅전까지 봤으면 대략적으로다 본 거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지라 이쯤에서 내려가 볼까? 생각할 때였어요. '거어대에한' 무량수궁의 아미타불이 떡 하니 보입니다. 대충 보고 내려갔으면 가까이에서는 보이지도 않으니 못 볼 뻔했답니다. 크기와 양으로 승부를 띄우는 중국인가 잠시 착각이 들 정도였죠. 가까이에서 보면 어디가 어딘지 모르려나 싶게 컸습니다. 4주 후 아이 데리러 가서는 가까이 가보고 싶었어요. 무척이나 신기한 절이었답니다.

천태산에 있는 천태사

절은 산으로 산으로 자꾸 지어야 맛이죠. 부속 건물이 늘어나고 있는듯 보입니다.

근데 무슨 캠프장이 이렇게나 첩첩산중에 있는지 아이들이 도망도 못 가겠다 싶게 들어갔어요. 그렇게 밥 잘먹고 잘 살어. '4주 후에 뵙겠습니다' 하고는 들여보냈습니다. 4주 지나서 다시 데려왔다가 다음날 필리핀으로 보낼 겁니다. 또 4주요. 헤어짐을 위한 4주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한 4주가 될 겁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기 위한 4주요.

두메(?)산골 캠프

거기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를 찍어준 사진


자유다~! 아까운 마음 아주 잠시 살랑였으나 사춘기 딸 없는 마음 홀가분함이 조금 더 크네요. 이제 편안하게 목적지 재설정입니다.

양산 책방 가려 설정한 길에,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길에 무언가 번쩍번쩍. 금절이 있어요. 이게 도대체 무슨 건물이야? 신기해하며 가까이 갔습니다. 우와.. 호수를 바라보는 풍광이 상당히 근사하더군요. 금빛 빛나는 절도 꼭 중국..아니 여긴 왜 크거나 유난스럽거나 한 거죠? 이질적인 절이 무척이나 흥미를 끌었던 <쌍미륵사>

깔끔떠는 둘째보면 싫어하겠다. 속옷 보인다고..

호수의 윤슬과 쌍을 이루는 쌍미륵사의 윤나는 금룡. 절 어디를 봐도 금빛. 화장실까지 번쩍번쩍. 유쾌해지는 절이었어요.

왼쪽은 금 지붕 화장실.

부처님 바위인데요.

바로 앞 전봇대 뒤에 부처님 얼굴 보이네요.ㅎㅎㅎ
가장 위에 부처님 얼굴과 몸이 보입니다.

절을 벗어나 다시 출발.


가는 길에 얼어있는 물이 보여요. 수제비 한 번 떠야죠. 내려보았습니다. 살면서 이렇게 깨끗한 물 처음 봅니다. "겨울이라 더 깨끗해 보이겠지" 했는데 알고 보니 수자원 보호구역이네요. 돌도 만지면 안 되는 곳이라나 뭐라나. 물이 물이 정말 떠서 마시고 싶은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펜션은 왜 이렇게 많죠? 수자원 보호구역이라면서? 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가는 길마다 언덕마다 집이 지어질 공간만 있으면 펜션이었습니다.

아.. 드디어 도착. 오늘의 두 번째 목적지입니다. 사람들이 다니는 곳으로 꼼지락꼼지락 걸어보니 무언가 보입니다. 평산책빵. 아니 이름 너무 신박한데? 책방옆에 책 빵집도 있는 거야? 하면서 갔죠. 룰룰랄라 하면서요. 그랬더니..... 전혀 관계없는 개인사업장이었다는.. 하지만 이름 너무 깜찍했습니다. 책빵..아하하


그런데 말이죠. 오르는 길에 아직도 확성기를 하루 종일 틀어놓고 욕설하더라고요. 세상에 끔찍해라. 일반 국민이 밥 해먹고 마당 쓸고 하는 가정집 앞에서 쌍욕에 확성기에 트럭이 진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참 씁쓸했습니다. 불쾌하고 혈압이 오르더군요.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기도 민망하지만 그럼에도 사저 아주 가까운 곳은 경호구역 지정이 되었고요.

근데 책방에서도 소리가 다 들려요. 그래도 전에 비하면 나아진 거겠죠?


남과 북이 나누어지는 것도 모자라 생각이 다른 진영은 적으로 간주하는 지금의 이분법이 안타깝습니다. 다름이 제거되어야 하는 무엇이 되는 현실이 무섭습니다. 아무렇게나 칼을 휘두르고 죽음을 쉽게 여기는 현재가요. 찢어진 살이 아물듯 갈라진 우리들이 다시 화합하는 날이 가까워지길 바랍니다.


행복하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던 방문이었네요.

책 샀다 자랑 한 번. 안경 한 번 올릴 시간은 주고 찍어라 남편아.


오랜만에 남편 운전하는 차에 타서 시외 드라이브 잘했습니다. 생각이 많아졌지만, 나가길 잘했습니다.

사려고 했던 책이 눈에 띄어 1월 7일 현재 퍼질러 앉아 읽었습니다. 박경리 작가의 일본산고 속 한 대목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