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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Mar 08. 2024

오빠에게

작은 오빠에게

그날 쓴 글을 그날 올렸어. 알잖아. 

지혜가 많지도 지식이 많지도 않은 내 글은 그나마 살아있는 감정을 담았기에 읽힐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날 캔 나물이 얼마나 값을 받을 수 있을지는 생각도 하지 않고 당장 시장에 가져가 팔고 싶은 마음처럼. 그래서 그런가 봐. 가끔 어제 쓰던 글도 오늘 이어 쓸 수가 없곤 해. 무슨 얘기를 쓰려고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글 무더기가 수두룩해. 며칠 전에 쓰던 글은 그냥 읽기도 싫곤 해. 그 얘기를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곤 해. 내가 내 얘기에 관심이 없어져 버리곤 해. 


그나마 지금 내가 느낀 감정이 활어처럼 살아있을 때나 거친 글이더라도 감정은 전달된다고 봐. 다듬고 가꾸며 시간을 들인다면, 오랫동안 퇴고를 한다면.... 깔깔거리며 어깨를 밀쳐대면서 손뼉을 쳐가며 옆에서 듣는 것 같은 내 글의 현장감마저 사라져 버릴 거야. 무미건조하고 감정이 빠진 일기. 독자가 없는 나만 보는 일기인데도 나조차 보고 싶지 않은 사실 나열이 될 거야. 그런데 어제 쓴 글은 어제 올리지 못했어. 감정만 앞선 글일까 봐 뜸 들일 시간이, 감정이 과할까 조금 떨어져 볼 필요가 있었어. 


오빠 생각이 났어. 어제 부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밤새워 관장하며 잠을 설칠 남편을 대신해 운전하면서 말야. 남편에게 말을 걸며 옆에 있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남편을 재운 후 홀로 운전대를 잡으니 그렇더라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밤의 어두운 고속도로, 점점이 아름답게 빛을 내며 달리는 차들을 바라보며 오빠 생각이 났어. 갑자기 그렇더라고. 불현듯.

왜 그럴까? 왜 갑자기 생각이 나는 걸까 생각을 해봤어. 아마 그냥 오빠가 있어야 할 자리여서인 것 같아. 지금의 우리 속에 오빠의 자리는 그대로인데 오빠는 거기 없어서.


오빠가 집을 떠난 후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시간 동안 그렇게도 오랫동안 오빠 생각을 한 적도 없으면서 오빠가 영원의 공간으로 떠난 후로는 자주 생각이 나곤 해. 오빠가 남겨 둔 오빠의 공간만큼을 생각이라는 부피로 채우게 되었나 봐. 


오빠 생각이 났어. 오빠가 같은 하늘을 이고 살고 있다면 벌써 50대도 중반이나 된 중년이 되었을 나이이지만 오빠는 여전히 여자들에게 편지를 자주 받던 예쁜 얼굴을 하고 있어. 


우린 서로 무심했어. 오빠의 지독한 숙취 같던 삶도 외로움도 사회, 집단에서 매장되던 그때도 모르고 살았어. 모른척하고 싶었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네.

우린 그저 각자의 삶만 살아내면 된다고 자위했나 봐. 우린 서로 각자의 삶만으로도 부대꼈으니까 이해해 주리라 생각했나 봐. 괜찮다고 생각했나 봐.

각자 서로의 삶을 사는 게 서로를 위하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그건 오만이고 착각이었어. 무관심을 합리화하려는 방편이었던 것 같아. 그때 난 어렸고 지금도 난 이기적이니까.

오빠가 떠난 후 우리가 가족이었다고 느꼈어. 한 탯줄을 이어받았다는 사실을 오빠의 부재로 깨닫게 되었던 거야. 우리 중 누구 혹은 전혀 다른 누구도 그 공백을 채울 수 없음에 오빠의 공간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었어. 낮에는 아무런 까닭도 없이 울거나 자다가 갑자기 오열하며 깨곤 했어.


오빠를 사랑한 적도 없고 오빠를 위해 준 적도 없는 한창 어린 동생이었지만 오빠의 마지막 모습보다 나이 들어버린 동생이라 그런가 봐. 오빠를 그 긴 세월 찾지 않은 내가 원망스러워. 그곳에서 집단이 가하는 폭행에 홀로 사투를 벌였던 용감했지만 맞서기에 불가능한 것에 절망했을 오빠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지곤 해. 미안하고 미안해져. 미안해서 미안해지곤 해.


어제 어머니 생신이었어. 존재하는 오빠였다면 왔을까? 우리가 그렇게나 떨어져 지낸 시간이었어도? 가족이라면 아무리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어도 어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듯이 오빠가 자연스러웠을까? 또 아무렇지 않게 마지막은 서로 안으며 다음에 보자는 말을 했을까? 오빠와 함께 할 수 없었던 시간, 가져보지 못한 그것이 그립다. 


언제나 그렇듯 우린 또 모이기에 힘이 들었어. 언니도 새언니도 안 오겠다는 말을 번복하며 겨우 이어 붙인 모임이야. 팔순 생신인데도. 변화만이 살길을 알려준 데도 우린 그때까지, 모든 게 사라질 때까지 변하지 않을지도 몰라. 그게 조금은 기분을 무중력으로 만들어. 나를 현실감 없이 만들어. 


오빠가 없어 눈물은 났지만, 아냐. 그런 게 아냐. 행복해. 요즘. 정말 행복해. 소소한 즐거움 속을 다니며 나를 찾는 중이야. 오빠가 늦은 밤 새로 산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주던 그날처럼. 꼭 바보처럼 웃고 행복해하기만 하던 어릴 때처럼. 행복해서 오빠 생각이 나는 거야. 나에게 매몰되어 있던 과거에서 나오니 사람도 행복도 보이더라. 오빠 때문에 슬픈 게 아니라 오빠를 생각할 수 있을 만큼 행복해진거야. 


그래 오빠 내일도 그럴게. 오빠도. 이젠 내 꿈에 매일 나오지 않으니, 무언가 즐거운 일을 찾았다고 오빠만의 행복을 찾아서 잘 지낸다고 생각할 거야. 응.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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