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이 있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 세상의 힘들고 아픈 사람들을 돕는 그런 거창한 거 말고.
로또 1등에 당첨되어 먹고 놀고, 먹고 자고 하는 지금과 같은 생활을 이어가는(?) 것 말고.
유식한 데다 지혜로워지기까지 해 사람들에게 세상 사는 이치를 알려주는 그런 것도 말고.
작은 마을에 살면서
돈과 관련 없는 것을 추구하며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
그러기 위해 최소한의 돈이 필요하니,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혹은 전천후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엉뚱한 상상이나 하는 내 적성에 맞는 만화가 있다.
어른이 된 후 본 스폰지밥. 그걸 좋아한 것과 또 다르게 사랑하는 애니메이션이 따로 있다. 스폰지밥이 과거형이라면 이 만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우리 가족처럼 아무렇게나 농담하고 그럼에도 코드가 맞아 아무 말에도 웃어주는 가족의 이야기다. 학교에서는 누가 크게 소리 지르나 시험(?)을 치고 소심한 엘리펀트가 별 용도 쓰지 않고 1등 해버리는 식의 물 흐르듯 자연스레 진행되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는 영국 만화, 페파피그 되겠다.
으엥 하고 우는 막내의 울음소리도 귀엽고 웅덩이에 첨벙하는 재미로 사는 영국다운 문화도 사랑스러우며 평지가 없는 지역 특색을 살려 모든 집은 언덕 꼭대기에 있는 설정도 깨알같이 눈치채는 맛이 있다. 그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담고 있어 그냥 만화지만 보고 있으면 영국문화도 자연스레 알게 되고 유치원에서 배워야 할 생활 습관도 자동으로 어느 정도 얻게 된다. 하지만 내가 반한 지점은 이런 많은 장점이나 깨알 영국살이 팁이 아니다. (실은 진짜 영국 문화가 그런지는 모른다)
좋아하는 캐릭터가 있다. 뭐 고르라면 너무 많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아끼는 역은 래빗여사다. 마트에 가면 래빗 여사가 계산대에서 계산하고 있고 콜택시에 전화를 하면 래빗 여사가 전화를 받아 줄 서있는 사람들은 내버려 두고 택시 운전을 하러 가며 갑자기 헬리콥터 운전할 일이 생기면 또 래빗여사가 출동한다. 어디에나 필요한 래빗 여사의 업무를 모두가 이해하고 감내하는 상황도 볼 때마다 웃기지만 아무렇지도 않고 자연스럽기까지 한 다 업종 다 가능한 홍반장 같은 배역도 마음에 쏙 든다. 모르겠다. 이런 유치한 지점에 왜 혼자 웃고 즐기고 곱씹고 있는지. 아마도 그냥 유쾌한 아줌마가 되는 게 꿈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나도 저렇게 (머리를 쓰는 일은 안 되니) 다방면으로 실용적 노동이 실천적으로 가능한 사람이 되어 어디든 척척 일감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일지도.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하다 보니 그 덕분에 글감도 많이 얻어 -경험치로만 보자면- 따라올 자가 없는 경험 경력자가 된다면 좋겠다는 속셈도 없지는 않을테고. (상습적으로 퇴사한 경험을 살려 글을 쓴 작가가 있듯) 이런 일까지? 하며 놀라게 되는 사람으로 다양한 일들의 장단점을 읊어줄 수 있는 체험 폐활량이 크다면 멋지지 않을까? 또 엉뚱하게 생각해 봤다.
일은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일을 하고 싶다. 뭐 하나 포기하기 싫은 욕심으로 생겨난 이상한 의식이겠으나 일을 하고 싶으면서도 하기 싫은 감정은 언제나 팽팽한 줄다리기 중이다.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은 들면서도 이 일은 이래서 싫고 저 일은 저래서 싫다고 말하는 걸 보면 일이란 걸 하고 싶지 않다는 결론밖에는 내릴 수가 없게 되곤 한다.
일을 해야 한다.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다. 뭐 아닐 수도 있지만.
당근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이것저것 따지다 보니 그리 많지 않은 일이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그중 조건에 제법 부합하는 업이 있었다. 업장이 가깝고(15분 거리) 짧고(3일간) 힘들지 않은(계산원) 일, 금토일 주말 동안 7시간 마트 계산일이 떴다. 3일이라면 하기 싫다고 생각할 때쯤 끝나겠지. 적성 따지고 노동 강도 따지기도 전에 얼렁뚱땅. 무슨 일에 대한 것인지는 몰라도 워밍업이라 생각하고 해 보자. 스무 번쯤 고민하다 지원을 눌렀다. 그러고 잊었다. 잠들기 전 아 맞다. 확인 한 번 해야겠는데... 아 몰라... 잠이 들었다. 아침 뮤지컬 배우는 수업(취미를 찾아서 매거진에 올리겠습니다)에 가서 열심히 노래 부르고 춤추며 놀았다. 집에 와서 점심을 먹이고 그림을 그리며 글도 썼다. 아차차 확인을 안 했구나. 당근을 켜본다. 연락이 6시간 전에 와 있다. 어이쿠. 나도 참 나다. 어쩐다고 구인에 지원서를 넣어놓고 확인도 안 하냐. 나 같으면 이렇게 연락 안 되는 사람, 지원자 없어도 안 쓰겠네. 어휴. 미안하다 사정을 얘기하고 연락처를 남겨 놓았다. 전화가 왔다. 받을까 말까. 하겠다 지원까지 해 놓고 미안하다 문자까지 넣어놓고 또 잠시 고민. 아냐 이성적으로 굴어. 전화를 받자 젊은 어른(?) 목소리다. 30대? 한번 만나지도 않고 바로 일하란다. 모자 쓰고 티셔츠에 바지 입고 운동화 신고서. 하 7시간 쭉 서 있는 일,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누워서 돈 버는 일은 세상에 없으니, 대안은 없지 싶다.
그렇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모방하기 위해 마트 에스컬레이터 옆 타코야끼(? 야끼 어쩌고 가 상호라는데 뭐 파는지도 모른다) 매장으로 출근할 예정이다. 그러고 나면 도서관에 주말 알바를 하고 그러고 나면 진주 유등축제 행사도우미를 하고 유등 색칠하는 알바를 하고 뭐 이런 아무 연관 없는 일을 마구잡이로 하며 소원을 이루어갈지도 모른다.
살다 보니 소원 이루기가 이렇게 쉬운 줄 참으로 몰랐구나 싶을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