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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Aug 20. 2024

여유와 센스는 버스에 두고 내렸습니다

무엇에 쫓겼을까요?

 면접장을 박차고 나온 길이다.



박차고 나오고 싶었던 건 내 속마음이고 직원분이 (이쪽 문이야!)문도 열어주고 들아갈 때 보관해 준 (니 가방이잖아!) 가방도 건네준 바람에 고개 숙이며 나왔더라도, 마음은 그랬다.


면접을 봤다. 농업기술센터 동물복지 분야 기간제 근로자. 4개월 계약을 하고 시간당 최저시급을 받으며 민원 전화를 받는 일에 지원했다. 주말에도 일해야 하는 분야와 포토샵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지원가능한 분야가 있어 제하다 보니 민원 파트까지 찾게 된 거다. 민원에 대단한 경력이나 의지가 있는 게 아님에도 갈 곳은 이곳뿐이라..

평소에 관심 있었던 일도 아니고 아르바이트급 면접인데 2시간을 기다렸다 이제야 끝이 난 참이다. 2시까지 오라더니 4시에 끝이 난 거다. 면접 시간은 고작 3분, 나의 대기 번호는 20번. 뒤에 십여 명 더 남았으니 1시간은 더 앉아 있어야 할 사람도 있겠다. "이런 곳은 면접 보러 오라고 했으면 거의 되는 건데..." 하던 남편 말은 옛날 옛적... 일인가 보다. 경쟁도 있고 한창 일할 젊은이도 많이 있다. 경기가 안 좋긴 안 좋은 지도.


무슨 말을 했는지 잊고 싶지만 헛웃음만 나오는 답변을 한 터라 나답지 않게 기억난다. 점심으로 국수를 먹고 온 벌인가 보다 생각 중이다. 말아먹었다. 김밥도 말았고 국수까지 말았는데 면접까지 말아먹을 줄이야. '긴장할 게 뭐 있어 안되면 마는 거지' 라고 생각한 건 가식이었던 거다. 면접관이 점심에 말아먹은 그릇 수만큼 -3명- 앉아 있는 걸 보는데 '여기가 어딘가? 삼송전자 면접장인가? 엘쥐면접장인가?' 잠깐 혼란이 왔다. 글쎄 더 대단한 공무 수행원인가? 그러고 보니 공무 알바 면접장이긴 했다.


동물복지 분야에 어떻게 지원하게 되셨나요?

입 밖으로 나온 말 : 동물보호센터 입양 홍보 등에 관심이 있었는데 공고가 떠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이 해석한 말: 돈 준다는 데는 아무 곳이나 이력서 쓰고 있습니다. 알고 온 거도 아니걸랑요.)


동물복지에 대한 좋은 의견이 있나요?

입 밖으로 나온 말 : 진주시에서 그 부분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들은 말 : 저는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그냥 채용공고가 떠서 왔다니까요. 동물복지가 뭔데요? 설명 좀..)


업무 특성상 다른 과 지원도 나가게 되는데 가능하신가요?

과거 제가 한 업무의 특성상 여러 이벤트성 업무가 많았던 일을 했었습니다. 융통성을 발휘해서 일 처리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시켜주세요. 일 좀 달라고요.)


주말에도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괜찮으세요?

예. 괜찮습니다.

(아~ 진짜 나중 일은 모르겠고 일단 무조건 고! 라니깐!)


"되면 어쩌지?" 남편과 농담이나 했는데.. 떨어지게 생겼다. 면접을 저렇게 성의 없이 했다니. 최소한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지원했는지에 대한 생각도 없었다니. 내일 결과 발표다. 당연히 떨어졌을 테니 나는 하던 백수 일이나 열심히 해야겠다. 근무복을 사네, 작은 차를 한 대 뽑네 어쩌네 했던 고민은 한 여름 -더위 먹은- 꿈이 되었다.

갑자기 일하려니 건강검진도 해야 할 것 같고 하다만 원고 퇴고도 막 하고 싶을 것 같고 어반스케치하러 진주를 샅샅이 걸어 다녀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이젠 진짜로 하면 되겠다. 어쩔래? 이젠 진짜 해야 하는데. 변명거리도 시간 없다는 핑계도 댈 게 없는데.. 혹시나 돈에 시간을 저당 잡혀서 하고 싶은 일도 못 하게 되면 슬플까 별생각을 다 하고 있었는데, 기뻐해야 하는 거?


그럼에도 내일 혹시 합격한다면 이건 이력서 탓도 말발(?) 탓도 아니고 그냥 내가 예뻐서라고 해야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원인과 결과가 없으니 말이다.


자! 기억해. 내일 내가 이쁜지 못생겼는지 나도 몰랐던 현실을 알게 되는 날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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