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트 이제 안 올 거예요.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6월 23일이 예정일이었다.
언제나처럼 하루하루 살다 보니 잠깐 잊었었네. 벌써 아기를 낳았고 한 달이 지났다. 아기는 눈에 넣어도 진짜 하나도 아프지 않지만 너무도 힘든 시기. 우왕좌왕 초짜 부모의 혹독한 신고식은 어떻게든, 힘들더라도 통과 중일 테지. "20년을 돌려줄 테니 육아를 하시오"라고 한다면 "예, 됐습니다" 할 그런 시기일 거다. 예정일 3일 전에 출산 잘하시고 건강하시라 마지막 인사를 했었는데.
'아기는 남자아이이고 누굴 닮았는지 너무 잘 먹고 너무 빨리 큰다. 그래서 좀 버겁다. 아기가 너무 커서 제왕절개밖에 할 수 없었고 젖도 너무 먹어서 남들과 비교되더라'는 얘기를 남편을 통해 알고 있던 터였다. 적립 번호로 유추한 고객님이 출산하였으리라 생각해 건넨 말에 이렇게 많은 소식을 기쁘게 알려준 남편분이었다. 부인께서 힘들 시기이니 잘 도와주시라 덕담 아닌 덕담을 해준 기억도 났다.
파란 원피스를 맵시 좋게 입었다. "아가씨처럼 오시네요" 말은 했지만 그녀가 맞나? 3초간 고민했다.
어릴 적 구멍가게를 한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안면인식을 뛰어나게 잘하는 건. 태어나면서부터 그 많은 사람을 보며 낯도 가릴새 없이 구분해야 했으니 말이다. 머리 스타일이 바뀌어도 화장이 변해도 사람을 잘 알아본다. 어릴 적 환경 덕인 건지 타고난 특기인지는 모르지만 도움이 된다. 남들은 아리송할 때 나만 알아보는 사람들의 면면이, 뇌를 쓸 필요도 없이 쉬이 구분 지어질 때는 말이다. 어쩌다 보니 친절하거나 배려심이 있어 관심을 쏟은 결과라 오해도 받는다.
그런데도 아기를 품고 있던 임부가 갑자기 산부가 되어 나타난 데다가 날씬한 몸으로 가볍게 걸어 들어오니 나도 헷갈렸다. 잘난척하던 기능의 퇴화인가?
물건을 계산대에 올린다. 오랜만이란 인사를 하며 아기는 잘 크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했다. 그러자 초보 엄마의 육아 얘기가 이어진다. 임신하고 10Kg 쪘는데 지금 11kg이 빠졌다. 애가 너무 먹어서 젖이 모자랄까 걱정이 될 정도다. 이제 한 달 정도인데 벌써 5kg이 넘었단다. 성장이 빠르다는 건 사람 모습을 찾아가는 신생아 때는 기분 좋은 진행이니까. 행복한 힘듦을 숨기지 않고 얘기한다.
"그때가 제일 힘들죠. 잠도 힘들고 먹는 것도. 젖은 넘쳐도 힘들고 모자라도 힘들고 엄마가 되는 건 쉬운 게 단 하나도 없다니까요. 게다가 아직 엄마 몸이 정상이 아닌데 아기가 크면 팔목이든 허리든 무리를 하게 되고요. 힘드시겠어요" 눈빛으로 최대한 토닥토닥해 본다.
그런 그녀가 지난 화요일 근무 시간에 왔는데 내가 없어 '그만두신 거냐?' 여쭤봤다며 얘기를 이어갔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못 나오게 했다'는 말을 들었다며 그만둔 줄 알고 아쉬웠단 말을 전하는 거다.
"제가 잘리면 고객님이 꼭 얘기해 주세요. 왜 그분 자르셨어요 하고요"
라고 말하자 그녀가 대답한다.
"그럼 이 마트 안 올 거예요. 사장님이 그분 잘라서 이제 안 오려고요 할 거예요"
라며 말을 한다. 호들갑스러운 리액션으로 감사함을 표했지만 실상은, 감동했다.
마트는 물건이 필요해서 오는 거지. 나에게 위로를 받는 것도 무슨 지원을 받으려고 오는 곳은 아니다. 내가 무엇을 주었다고 마음을 살포시 주지? 내가 줄 수 있는 건 없는데 그렇게 위로와 위안을 받으니 마음이 가득 차는 건 사실이다. 기쁨으로.
벌써 6개월째다. 시간이 참 빠르긴 하다. 당연하게도 항상 즐겁기만 하진 않았다. 코로나에 막 걸린 채소 직원을 굳이 챙겨 식당으로 가 밥을 같이 먹으며 즐거워하던 아니 즐거워했을 사장님. 마스크를 챙겨 쓰는 옆 동료를 조롱하던 채소직원. 면역력 약한 사람들도 오는 곳에 격리는커녕 확진 당일도 근무를 시키는 이곳이 이해되지 않았다.
기어이 사장님께도 채소직원에게도 한 소리 하며 싸우다시피 했지만 '내가 그만둬야 하나? 이곳에 맞지 않는 사람인가? 이렇게 잘리려나? 나는 왜 싸움닭처럼 굴었나? 어른다운 행동으로 대화했어야 하지 않나?' 고뇌의 시간을 가지려 했다. 조금은 뒤돌아보았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말이었다.
눈치보지 않겠다. 곧 지천명인 나이. 이제라도 나를 받아들이련다. 나는 감정에 솔직해질 테다. 마음 심란해지면 나를 기억해 주고 마음 한 자락 내어주는 사람에게서 아주 조금은 다독임 받으련다. 그렇게 플러스 마이너스 되면 다시 제자리.
그 자리로 돌아와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밴드 상품 예약을 못 해서 아쉬워하는 아기엄마 손님께 사장님에게 전화까지 해가며 한 자리 만들어 드렸고 4천 오백 원 싸게 사 가셨지만, 고객님의 진심은 원가에 산 캠벨 포도에서 나온 거 아닌 거 아니까. 느낌 아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