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사임당 Oct 29. 2024

재미있는 새드 무비

는 아니고 에세이///부제의 부제:성인 ADHD의 방황


주부 노래 교실은 아니다. <꿈꾸는 뮤지션-보컬> 수업을 신청했다. 뭐 대단한 이유는 없지만 중요한 이유라면, 무료라서.



나는 노래를 잘한다.

이렇게 적으니 노래를 자주 한다는 소리로 들릴 수 있겠다. 예리한 독자(를 가장한 작가님)에 그렇지 못한 보통의-는- 인간의 소통에는 오류가 뜨기 마련이니까.


나는 노래를 잘 부른다.

이렇게 적어도 나는 노래를 자주 부르는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다. 아냐, 그렇게까지는 가지 말자. 보통 노래를 잘한다는 것에 따른 해석까지만 용납하는 걸로.


자, 그러면 평범하게 다시. 나는 노래를 잘한다.

얼마나 잘하냐면 무대에 서도 될 만큼 한다. 아니 그 정도나? 뭐 무대에 서면 목이 막히고 숨이 쉬어지지 않아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상태로 변하기 때문에 무대에 선 기억은 뭐, 사실 거의 없다. 그래도 일단 '평력', 평소 실력이 그 정도라 -아무도 공인해 줄 수 없는- 실력으로만 보자면 무대에 서도 손색이 없다고 말하는 거다. 무대에 서면 평소 실력으로는 절대로 부를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하기 때문에 한 사람을 하나의 인간 존재로, 단일한 방향에서 본 존재로만 규정할 수 없는 인간 특징까지 끄집어내어 말해야 하는 어려움은 있다. 그러므로 이런 표현은 강조로만 쓰는 걸로. 나는 무대에 서도 될 만큼 노래를 잘한다~끝.


여하튼, 어떤 노래를 얼마만큼 잘해서, 그러니까 실력이 어떻기에 그렇게까지 얘기를 하나.

우선 그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려면 간단한 조건이 있다는 점만 주지해 주기 바란다. 그 간단한 조건이라 하면


일단 아는 노래여야 한다.

너무 높지 않아야 한다.

너무 낮지 않아야 한다.

랩이 없어야 한다.

너무 빠르지 않아야 한다.

부르고 싶을 만큼 좋은 노래여야 한다.

부르고 싶은 분위기가 잡혀 있어야 한다.

듣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들을 사람이 생길 가능성도 없어야 한다.

누가 시키면 안 된다.

그날의 날씨와 내 기분과..


이런 간단한 조건만 성립하면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다. 잘 부르기 전에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하는 건, 나는 내 음역을 모른다. 어느 정도가 빨라서 따라가지 못하는 정돈지 모른다. 내 기분도 잘 파악하지 못해서 허구한 날 감정 과잉 상태, 감정 공허 상태에 빠지곤 한다. 애창곡도 없는 데다 그때그때 자주 듣던 곡으로 선곡하여 부르다 보니 높아서, 빨라서, 랩이 있어서 전주만 듣고 노래는 못 부르는 일이 매번 일어난다. 쉬운데 그 쉬운 걸 못하네(별이 다섯 개 사장님 스타일로).


참,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남았다.


내시경 후 목에 피가 나지 않아야 한다.


당황스럽지만 나에게 일어난 일이다. 처음으로 수면 내시경을 했다. 두 눈 번쩍 뜬 상태로 많은 사람 앞에서, 그 사람 보란 듯이 (헛)구역질하는 상황이란. 누가 혼내지 않아도 혼자 모멸감이, 내 속을 발가벗겨지는 현실 앞에서 수치심을, 내 몸을 내 맘대로 할 수 없어 굴욕감을, 아이고 잘하네 다 끝나가네! 식의 위로와 위안이 범람하는 그곳에서 모욕감까지 들곤 하는 것.


직장 다닐 때 살도 자꾸 빠지고 어린 날의 몸처럼 자꾸 아파져 의식이 있는 상태의 내시경을 처음 했다. 그 후 내시경은 그렇게 눈 뜨고 하는 것이란 자동 반응만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방송에서든 주변에서든) 진정제를 투여한 상태, 의식이 거의 없는 채로 하는 수면 내시경을 하고 있었다.


알게는 되었지만 내시경을 자면서까지 받냐 그 정도도 못 참을까 봐 싶은 묘한 자존심이 고개를 치들었다. 세워진 자존심을 꺾을 순 없고 그렇다고 또 그 수치심까지 참아가며 하려니 망설이게 되었다. 두 해 네 해... 내시경을 2년에 한 번씩 하니 한 번 건널 때마다 2곱절로 는다. 이러다 위궤양이라도 뒤늦게 발견해 장기 약물 투여와 걱정을 달게 받아야 하는 벌이라도 받을까 걱정 또한 늘었다. 걱정하느니, 미루느니 차라리 내 뇌가 모르는 상태에서 몸만 그 모든 것들을 견디고 넘기게 할 결심을 하였다.


그렇게 며칠 전 수면 내시경을 했는데. 뇌는 의식이 없었지만 목구멍은 단단히 의식하고 있었던 거다, 이물질의 존재를. 쪼고 있던 목구멍은 내시경의 공격을 부위로 막아내다 350도 출혈을 해야 했고 나는 심한 목감기 상태가 되었다. 목이 따끔따끔 삼키기가 힘들다. 6년 만에 하는 내시경을 9번의 노래 수업이 끝난 후 받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 나는 최상의 목 상태로 노래할 수 있었을까? 내 좁은 시야와 작은 사고(思考)의 양으로 일어난 실수라면 나보다 더 영리하거나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우연이라는 건 정말 우연~~ 히 일어나는, 배고픈데 하늘에서 먹을 게 떨어지는 식의 내게는 가능하지 않은 일 정도의 무게일까? 필연을 더 많이 만들 수 있는 것도, 계획을 계획대로 하는 것도 가능에 가까워지는 건지 궁금해진다.


실은 완벽한(?) 평소의 목 상태로 노래 수업에 들어 최상의 노래를 한 곡 뽑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삶은 제아무리 계획해도 계획대로 되지 않으리란 걸 계획하고 있었을 뿐. 내시경 이틀 후 들어간 수업에서는 칠판 앞에 나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모두 그러고 있었다). 남 앞, 자신은 없지만 노래를 잘하기에 괜찮으리라 생각했었는데 내 목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노래를 못 부르는 것에 대한 완벽한 변명을 만들기 위해 무의식이 한 짓일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그러지 않았으니 모르쇠 중이고 그런 연유로 내가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상태에서 노래를 불러야 함을 통탄하는 척하며 내심 '다행이다'를 외쳤다.


내가 고른 노래처럼 글도 중구난방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내시경 후유증과 우울증 후유증이라 가볍게 퉁치고 넘어가자. 일단 이 글은 취미를 찾는 글이며 나는 노래를 잘 불러 "취미는 노래요!" 라 적으려는 원대한 꿈을 가진 준비생이니까. 준비생의 풋풋한 서툶이라 쳐두자. 실수할 수 있지, 학생인데.


뭐 부끄러울 것도 없다. 선생님은 여자 키로 올려 부르는 게 음역에 맞다는데 맞긴 뭐가 맞는지 음 이탈에 목만 아프다. (남자 노래를 왜 골랐는데! 내가 생각한 내 음역이니까 골랐지) 내가 떠든 내 얘기가 얼만데 겨우 노래 좀 못 부른 거로 그런 기분이 들겠나. '삑사리 천국 노래'한 곡 듣고, 한 회 한 회 나아져야 할 나의 노래 실력을 기대...많이 해 보시길 바랍니다. 꾸우벅. 갑자기 공손 모드.

벌벌 떨며 부르니 바이브레이션 무엇. 박자는 자꾸 쳐지고. 뒤로 갈수록 더 삑사리가 나지만 모두의 청력 보호를 위해 들을 수 있는 곳까지만. (그럼에도 원하신다면 다음에? 흠흠)



실은 이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닌가 싶다. 나, 알고 보니 음치다. 나이트클럽을 그렇게 다녔는데 몸치였고 노래를 그렇게 불렀는데 음치라니. 나라는 인간에게 '치'는 길치 방향치만 첨가된 줄 알고 살았는데. 그것만 자랑하고 살았는데. 내 뇌 속을 내가 전부 모르듯 내 몸도 내가 아는 건 겉에 보이는 모나미 볼펜 똥처럼 보이는 큰점이나 술 먹은 다음 날 쓰린 속 정도일지 모르겠다.

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인간. 그런 인간이 자신의 현재 상황도 모르면서 무언가를 배우려니 쉽지 않다. 역시나 무언가를 익힌다는 건 자신의 부족을 알아야 다음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 똑같은 문제에서 다시 안 틀리려면 오답 노트가 필수이듯, 모른다는 걸 모르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없네. 이러니 배움을 끊을 수가 있나.

비록 내가 그토록 사랑한 노래를, 내가, 못 부른다는 결론을 안 날이지만 절대 슬프지 않다. 노래 잘하는 그날까지, 가보는 거야~~레츠고, 히위고~ (음성 지원이 안 되어 다행이다. 삑사리 났다~~)



(내가 부른 이 노래 이상하게 자꾸 듣게 된다. 중독적이다 하....TT우울할 때마다 들어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