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희 산문집
158
우리는 부모의 영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한다. 가끔 부모가 했던 말 한마디를 평생 가슴에 품고 그 말이 자기 인생을 망쳤다거나 그 말 덕분에 모든걸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하는 이들을 본다. 그런데 아마 부모는 자기가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조차 기억 못 할 것이다. 말은 하는 사람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다.
184
요한 하리의 책 <도둑맞은 집중력>은 스마트폰에 빼앗긴 우리의 집중력을 되찾는 방법의 하나로 몰입을 제안한다. 하루가 시작될 때 세 시간 정도 몰입을 하면 몸과 마음이 이완되고, 그 덕에 남은 시간을 느긋하고 열린 태도로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주의력을 되찾으려면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방해물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며, 몰입의 원천으로 그 자리를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에서 멍하니 있으라는 게 아니라, 푹 빠져 만사를 잊을 만한 무언가를 하는 게 오히려 제대로 쉬는 거라는 얘기다.
190
일요일 저녁에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일을 하는 걸까, 아니면 쉬고 있는 걸까?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는 점에서 나는 일을 하고 있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쉬고 있는 듯도 하다. 아니, 이 글을 다 쓰고 잠깐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실 때, 그때 나는 정말로 쉬는 거겠지.
208
에릭 와이너가 쓴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소크라테스'편에는 철학은 완벽한 답을 내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는, 여러 번 들었으나 자꾸 잊게 되는 말이 나온다. 좋은 삶은 답이 아니라 질문에 초점을 맞추고 그 질문을 살아내는 것이라고도 한다.
224
공포는 무서운 일이 일어났을 때의 감정이고, 불안은 무서운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상상할 때의 감정이라고 한다.
161
그 주말에 시부모님이 아기를 보러 오셨다. 결혼하면서부터 시어머니와 나 사이는 삐걱거렸고, 우리는 종종 신경전을 벌여 중간에 낀 남자들을 괴롭혔다. 그날도 나는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시어머니는 그런 나를 한참 지켜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도 그랬다. 쟤(남편) 낳고 너무 무서워서 울었다. 다 그런 거야. 괜찮아."
놀랍게도 그 말 한마디로 산후우울증은 사라져버렸다. 나는 사실 아기가 무서운 게 아니라 내가 무서웠던 것이다. 사랑의 감정은 고사하고 아기가 무섭기만 한 내가, 다 포기하고 달아나버리고 싶은 내가 무서웠던 것이다. 내가 미친 게 아닐까 무서웠던 것이다. 시어머니 덕분에 내가 이상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러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지금도 그날의 시어머니에게 마음 깊이 감사하고 있다.
그날 나를 정확하게 위로했던 시어머니는 이제 세상에 없다. 어떤 센티멘털한 밤에는 어머니가 그립기도 하다. 우리 집 책장 위에는 어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이 놓여 있다. 어린 아들, 그러니까 내 남편을 안아 들고서 햇살 곳에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이다. 나는 종종 그 사진을 보며 어머니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하고 인사를 한다.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한다. 가끔은 그런 말도 한다. 보고 싶어요, 어머니.
한수희 산문집 <마음의 문제> 중에
책을 읽고
나는 시어머니를 싫어한 적이 없다.
나를 키운 어머니에 대한 미움으로 젊은 날을 불태웠던 감정과 비교하자면 '이런 어머니도 계시구나, 이런 아버지도 계시구나'를 깨닫는 나날이었다. 이렇게까지 하며 부모를 욕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안다. 그럼에도 그 당시 나의 고통과 우울증과 세상을 향한 두려움은 가장 보호받아야 했을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과 배려 그리고 완전한 보호의 부재가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 탓이었을까. 아이를 배고 상반되는 감정에 나조차 힘들고 혼란스러운 시간이 지나, 아이가 태어났다. 놀랍게도 이 아이는 내 생각을 고스란히 물려받고 흡수한 나머지 친정에만 가면 울고불고. 잠시도 나와 남편 손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고, 울음을 그치지 않았었다. 상상할 수 있게도 시댁에서는 잘 놀고 잘 먹으며 특히나 어머님을 많이 따랐다.
그러니까 어머님으로 말하자면 아이를 눈에 띄게, 표나게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수줍은 내향인이라 속으로 좋아하고 마는 성격이셨는데. 내 딸의 은은하고 한결같은 애정 공세와 편애에 어머님마저 사랑을 표현하기에 이르렀던 거였다. 그러자 남편의 형제자매들 모두 놀란 "우리 엄마가?" 현상이 생겼는데.
두 손 벌려 환영하고, 안아주고 업어주며(허리가 굽어서 누굴 안아주지 못하셨다.) 아이고 이뻐라, 우리 시후를 노래하셨더랬다.
예상할 수 없는 게 세상살이지만 나의 육아와 시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나를 놀라게 했다. 그러니까 엄마보다 어머님이 더 좋았던 거다. 뭐, 물론 사람이 어떻게 한결같이 좋기만 하겠냐마는 나는 대체로 그러했다. 나를 닮아(?) 응당 해도 될만한 잔소리도 하지 않으시고 무언가 무언의 압박도 하지 않으시던 어머니. 못하고 서툴고 모자란 신혼 며느리를 그저 있는 그대로 봐주시던 어머니. 같이 있으면 불안하고 뒤통수가 자꾸만 따가운 차가운 엄마보다 그냥 있어도 편한 어머님이셨는데.
물론 마음에 쏙 들지도 않으셨을 테다. 이쁘지도 않으셨을 거다. 그럼에도 잠깐 스친 눈길에도 차가움은 느껴지지 않으셨던 어머니가 참 좋았다. 지금은 뵐 수 없는 곳에 계시지만 그때의 어머님이 그립다. 누군가의 시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오랜만에 슬프고 그리운 감정이 떠올라 눈물이 흘렸다.
어머님 고맙습니다. 보고 싶네요. 사랑합니다.
(오랜만에 책 읽고 운 날 독후감 씀)
전시 이틀째입니다.
어제 고생을 좀 했습니다. 작품 70개를 이고 지고 혼자 옮겼더니 무릎에 물이 차려고 하고 어깨에 통증이 와서요. 나, 이것 참. ㅋㅋㅋ
그래도 어제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옮기고, 작품 제 자리 찾고, 걸고, 준비해 놓고 안 챙긴 건 다이소까지 갔다 오고, 설명 문구 칼로 자르고 우드록에 붙이고 벽에 박으며 애를 쓰고 나니 오늘은 뿌듯함만 남네요. 의자에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만 읽어도 왠지 빈둥거린 거 같지 않고요. (그 덕에 오늘 '마음의 문제'를 완독했습니다)
갤러리에서 내 맘대로 책 보고 왔다 갔다 하고 지인 오면 커피 마시니까 내 작업실이라도 생긴 것처럼 기쁩니다. 무료 커피숍에 앉아 있는 것 같은 가성비(?) (주차비는 조금 듭니다^^)
가까이 계시는 분은 놀러 오셔도 됩니다. 굳이 누구라고 말씀 없이 왔다 가셔도 되고요. (내향인 환영)
장소요? 안 알려줌…. ㅋㅋㅋ(사진 속에 힌트, 아니 정답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