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과 물결모양 손톱

페이지를 접으며

by 노사임당

어릴 적 살던 동네는 오토바이도 잘 다니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물론 조금 돌고 또 찾으면 비교적 비탈이 적당하고 계단이 없는 곳도 있었으나 보통은 어른 한 명이 겨우, 어린아이들이나 두 명 정도 다니는 길이 학교로 가는 길이었고 집을 벗어나는 통로였습니다.


아버지가 손님을 상대하는 사이 어머니는 골방에서 저를 낳았던 집이 있던 동네는 좁았습니다. 인가가 있는 곳 거의 마지막 구멍가게였던 우리 집. 막걸리 아저씨는 막걸리 열댓 개를 뒷자리에 실은 채 오토바이로 배달 오곤 했으나 그게 다였지요. 차가 다닐 수 없으니 급하게 물건이 필요한 사람은 우리 집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어찌 보면 그런 장점이 있는 구멍가게지만 그러한 장점은 언제나 단점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가난한 동네에 더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받은 돈으로 사는 가난한 장사치 말이지요.


그런 길이 있는 골목은 좁았고, 비탈은 가팔랐으며 군데군데 미끄럽지 말라고 그러는 건지 계단 흉내를 내어 깎아놓은 곳도 많았습니다.


아이들은 왜 그렇게 뛰고 싶은 걸까요. 짧은 거리도 먼 거리도 걸핏하면 뿔난 망아지처럼 펄쩍펄쩍 뛰어다닙니다. 저 또한 다르지 않아 그 가파르고 계단 천지인 곳을 달리다 걸핏하면 넘어지곤 했습니다. 무릎이며 손바닥이 짓무르지 않은 날이 드물었었지요.

옥봉동 현미용실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어릴 적 살던 집과 비교하면 돼지 삼 형제 첫째가 지은 볏단 집 같던 그곳에서 국내 굴지의 대기업 아파트로 바뀌었으니 천지개벽 정도의 변화입니다. 이런 곳에 산다는 게 신기하고 믿어지지 않았던 적도 있을 정도입니다. 갑자기 부자가 된 것도 아니고, 사회 분위기도 우리 집 사정도 조금씩 나아지다 보니 이젠 이처럼 자연스러운 환경이 되었지만 처음 내 집이란 것을 갖고 아파트라는 곳에 살면서 감격했던 기억이 나네요.


둘러보면 주변에 높은 그늘을 만드는 아파트가 흔하게 보입니다. 잘 지은 단독주택에 잘 가꾼 정원을 둔 전원주택도 많고요. 그러다 처음 보는 동네를 걷을 기회가 생길 때면 30년쯤은 거뜬히 건너뛴 시간 여행을 하게 됩니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 자전거에서 내려 끌어야만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을 볼 때 그렇습니다.

옥봉동 안아파컴퓨터 수리점

과거는 오늘이라는 일상에 묻히고 기억도 뿌옇게 변하곤 합니다. 어릴 적 친구와 놀았던 고무줄놀이 속 노래도 기억나지 않고, 토끼 걸음으로 벌을 섰던 그때가 중학교 때인지 초등학교 때인지도 가물거립니다. (다음날 허벅지의 통증과 후들거리던 감각은 있습니다만) 페이지를 넘기듯 과거는 넘겨진 상태라고, 지금과는 다른 얘기라며 방치하던 기억입니다.


작은 골목 사이를 걸으며 걸핏하면 넘어지던 어린 날의 내가 무릎을 털며 일어서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반창고 붙여줄 어른이 없어도 울지 않았습니다. 운다는 건 누군가 나의 어린양을 받아줄 것이라는 기대가 선행되어야 나오곤 했으니까요.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피를 흘린 들 누가 돌보아 줄까요. 혼자 집으로 들어가 수돗물에 피를 씻고 반창고를 붙이곤 했을 겁니다. 혹은 마를 때까지 방치했을 겁니다.


옥봉동 빨래방과 안아파 컴퓨터

손바닥만 한 공터라도 있으면 시멘트 바닥에 공기놀이하며 놀던 때가 떠오릅니다. 작은 공간만 있어도 우리는 모여 앉아 놀곤 했습니다. 어른들이 지나갈 때는 혹시나 야단이라도 맞을지 길을 비키며 눈치를 보곤 했습니다. 그렇게 놀고 나면 오른쪽 약지부터 새끼손가락까지 손톱은 무늬가 생겼습니다. 시멘트 바닥에 손을 훔치며 놀다 보니 생긴 흔적이었지요. 태극 모양 같기도 수프 스푼의 아래를 본뜬 듯 둥글게 홈이 생긴 손톱, 물결모양으로 갈아져 버린 손톱을 신기하게 보던 내가 보입니다. 괜히 그럴 때는 제 손톱을 또 내려다봅니다.


잘 살지 못한 시간을 후회하곤 했습니다.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곱씹고 반성합니다. 그렇게 곱씹고 곱씹으면 그때 그 선택을 바꿀 수 있을 듯이 말입니다. 아직도 습관처럼 오늘 하루를 되뇌고 과거의 어느 순간을 다시 꺼내어, 또 잘게 쪼개어 봅니다. 싱크대 아래에 붙여놓은 껌을 다시 씹듯이 부질없거나 쓸데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하곤 합니다.


그렇게 만날 수 없는,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생각하며 골목을 걷다 보면 그때와 만날 때가 있습니다. 돌아갈 순 없지만 그때를 바라볼 여유가 생긴 때도 있습니다. 가슴이 아프고 머리를 때려주고 싶었던 그날과 조금, 혹은 꽤 멀어진 것도 같습니다. 그렇게 남의 이야기인 듯 남의 과거인 듯 한 발 떨어져서 볼 마음이 자랐다고 생각합니다.


이젠 후회보단 기억이 그리운 때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후회는 그 후회를 다시 하지 않기 위해 오답 노트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렇게 오답 노트를 쓰다 보니 이젠 오답 노트에 같은 문제와 같은 오답을 적는 일은 적어졌습니다. 아니, 이젠 그 문제의 정답이 꼭 그 답이지만은 않음을, 꼭 정해진 답만 있지 않음을 조금은 아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잊었던 기억을 하나씩 되새기며 내 마음속에 상처가 아직도 있는지 묻곤 합니다. 남들보다 가난했고, 남들만큼 가지지 못했던 삶이 준 상대적 박탈감이 아직도 나를 꼬집고 있는지 묻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부끄러운 내 과거가 이젠 부사 없는 명사로 남습니다. 부끄러움을,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었던, 숨겨야 했던 어린 날이 아니라 그저 어린 시절. 과거로 말입니다.

한 발 떨어져 나는 그때의 그 집들처럼 눈앞에 존재하는 과거를 마주합니다. 그렇게도 싫어했던, 과거의 망령 같았던 골목과 낡은 집들을 보러 갑니다. 화해하고 기억해 냅니다. 아니, 기억해 내고 화해한 나를 봅니다. 그렇게 오늘도 과거 속을 걷습니다.



유난히 작고 좁은 골목이 많은 동네에 갑니다. 숨겨둔 꿀단지처럼 보물이라도 숨겨둔 듯 갑니다. 옥봉동을 걷습니다.

스케치만 해놓고 아직 색칠하지 못한 그림이 많네요..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