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을 놓는다는 건

이쯤이면 됐다고 말하는 것

by 노사임당

그리던 그림을 놓아줍니다.



잡았던 붓을 가만히 내립니다. 붓는 놓는다는 건 '완성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찬찬히 뜯어보면 빼먹은 부분도 있고 더 손대고 싶은 곳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제 손을 놓겠다는 나름의 판단을 내립니다.


완벽주의라는 증상에 시달린 적이 있습니다. 잘하는 것도 없이 잘하려는 마음만 가득했습니다. 아니, 하지도 않고 부담만 느끼곤 했습니다. 잘하지 못할까 봐 시작도 못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차피 못할 것이 뻔하니 지레 포기해 버렸습니다.


공모전에 낼 글을 쓰려다 시작으로만 그친 일,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해야 할 일을 시간이 남는데도 미루고 미루어 제출 기한을 넘긴 일, 다이어트하려다 '살을 빼겠다'라는 생각만 했음에도 갑자기 식욕이 솟아서 포기했던 일, 매달 창문 하나씩을 닦겠다는 계획 같은 사소하지만, 꾸준한 실천이 필요한 일들까지 결국은 포기하곤 했습니다. 꾸준히, 끝까지, 완벽하게. 무언가를 하겠다는 생각만으로도 부담이 되었습니다.


누리 소통망에서 알고리즘이 끌어온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화면에서는 완벽주의 성향으로 일을 미루는 사람이 부지런히 자기 일을 제때 하는 사람보다 확률적으로 업무 성과가 더 높다는 이야기부터, 정신과적인 이야기까지 다양하게 있었습니다.


정신분석적인 이야기도, 누구의 성과가 더 완벽한가와 같은 부분도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요. 확률이 높다고, 연구 분석이라 하더라도 일반화시켜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저 제 경우에 빗대어 보자면, 완치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러했던 증상이 호전되었습니다. 잘하지 못할 것 같아 시작도 하지 않는, 중증은 아닌 상태입니다. 그렇다고 '자! 망쳐볼까, 아무려면 어때 까짓것, 종이가 아까우냐 물감이 아까우냐, 틀리면 틀리는 거지'와 같은, 시원하고 호방한 마음가짐은 아직입니다. 그럼에도 '망쳐도 할 수 없지. 내가 그린 그림인데 뭐 어때, 남의 것 망치냐' 하는 마음은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완벽주의는 하지 않을 이유를 찾는 방법으로써 존재감이 컸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잘 못할 것 같으니까 하지 말까. 마감 때까지 완벽한 글을 쓸 수 없을 거 같으니까 그냥 시작도 하지 말자, 잘 그리지도 않을 그림을 그려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말자, 그건 너무 멍청한 짓이야 와 같은 작업 '사전 차단' 문구로서 기능했었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뭐라고. 잘하지 않을 건 뻔한 건데, 왜 내가 잘해야 하는 거지? 어쩌다가 내가 잘할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머뭇거리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언가를 잘할 자신이 있다는 듯이. 무언가를 한다면 누구보다 더 훌륭하게 마칠 수도 있다는 태도가, 마치 타인을 위해 양보하듯 구는 말투가 느껴졌습니다. 완벽하지 않고, 그럴 수도 없으면서 마치 그럴 수 있다는 듯이 구는 완벽주의 성향의 나란 인간에게 현실을 직시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난 네가 상상하듯이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 그렇게 훌륭한 결과물을 낼 수는 없는 사람이야. 그러니 잘할 수 없는 일을 잘하지 못할까 봐 걱정한다는 건 1조의 재산을 가질 가능성이 전혀 없는데도 돈이 너무 많으면 어떻게 써야 할지 걱정하는 것과 같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실수할 기회는커녕 잘할 기회마저 영영 얻지 못할 테니까요.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런 마음이 크다. 잘했으면 좋겠고 아무 노력 없이도 잘하면 좋겠다는 소원은 사실 일상에도 언제나 함께입니다. 별 재료도 넣지 않은 음식이 엄청나게 맛있으면 좋겠다. 운동도 하지 않았으면서 오늘 배송되어 올 옷이 -모델이 입은- 광고처럼 내 몸에 '착붙' 하면 좋겠다는 욕심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것.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이 내가 그리고자 했던 부분을 보여준다면 그때부터 그 그림은 완성이라는 명찰을 달 준비가 끝난 겁니다. 그럼에도 놓지 못해 물 한 번 더 묻히고 무채색 한 번 더 칠하며 시간을 끌 때가 있는데요. 어쨌든 이렇게 그려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실패할까봐 머뭇거리는 나를 데리고요.


내가 하려는 일에 기대도 욕심도 사심도 먼저 세우지 않고 먼저 낙서하는 마음. 일단, 가볍게 한 줄 긋는 마음만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 줄 하나는 다음 줄을 당기니까요. 그러면 그다음 선과 그다음 면이 제자리를 찾고 평면은 입체가 될 테니까요.


잘 그리지 않았어도 그리려 마음먹었던 계단이 완성된 순간 붓을 놓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완벽입니다. '완벽'이라는 말이 완벽히 거슬린다면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5번째 개인전을 준비하며 그림을 3~40점 정도 더 그렸습니다. 마음에 드는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그림은 어떤 사람의 눈에 완벽히 아름다운 그림으로, 다른 그림은 다른 누군가의 가슴에 닿는 그림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제가 마음에 들어 했거나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한 것과는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렇게 완성이나 완성도라는 말은 절대적일 수 없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입니다.


완벽이란 가끔 허상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닿을 수 없는 무릉도원을 꿈꾸듯, 죽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이승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림을 그린다는 건 지금을 기록하는 일입니다. 발자국을 꾹 눌러 찍으며 걷는 길입니다. 그 한 걸음이 도착지로 순식간에 데려다주지 않습니다. 그 한 걸음이 앞으로 다가올 굽이굽이 먼 길을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한 걸음을 떼어야 산을 넘을 수 있습니다. 강도 건널 수 있습니다.


도착지만 생각하지 않고 그저 한 발, 그저 한 선을 그으며 생각합니다. 지금 이 선 하나만 생각하자고. 일단 선 하나를 그어야 붓을 놓는 순간을 만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것이 완벽과는 가장 멀지만 가장 완벽해질 방법이라고 말입니다.


완벽주의자였던 저를 다독여 움직이는 방법입니다.


개인전으로 버스 여행은 한 주 쉬었습니다. 의령 그림으로 대체합니다. 브런치북 시작하고 일이 많네요. 물론 제가 벌인 일입니다만^^ 너른 마음으로 양해 부탁드립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