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가 되어가는 골목을 걷는다
나는 바다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적 바다를 접한 도시에 살았기에 귀함을 몰랐다고 둘러대고는 했으나 이유는 그게 아니었음을 최근에 깨닫는 중이다.
지금은 강을 끼고 도시가 발달한 지역에 살고 있다. 아마 내 사주에 물이 부족하니 이렇게 물과 함께인 도시에 신세를 지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나고 자란 부산에선 외지 사람들이 일부러 먼 길을 달려와 바다를 보았다. 아름다워하고 감탄하고, 아쉬워하며 눈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진주엔 사람들이 달리기하거나 커피를 마시기 위해 강가를 찾았다. 나에게는 그런 모습이 부럽지 않았다. 나도 언젠가 바다가 보이는 찻집에 앉아 책도 읽고... 는 희망 사항에 없었다. 강을 보며 윤슬이 눈부신 한 낮을 즐길 생각도 없었다.
그 시간 나는 골목을 누비고 있었다. 더 이상 길로 이어지지 않는 골목을 오르고, 나무의 하향지처럼 갑자기 아래로 꺾어지는 제멋대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바람마저 부딪혀 깨어지면 움직이던 공기마저 쳐들어오지 못하는 골목에서 나는 오래된 냄새를 맡곤 했다.
오래된 냄새. 지워지지 않는 세월의 냄새다. 켜켜이 쌓인 짐들이 내뱉는 숨 냄새. 오래전 아들딸이 들고 온 선물 상자마저 버리지 못해 마당 한편에 쌓은 집들과 쓸모없는 것들은 좀 버리시라 짜증을 내는 자식이 가고 나면 다시 제자리를 찾는 온갖 물건들이 체취처럼 붙어있는 곳. 기억의 냄새가 나는 곳이다.
바다는 새로움을 상징했다.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와 같은 대사가 어울리는 곳이었다. "힘내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자"와 같은 우렁찬 함성과도 어울렸다.
끊임없이 새로운 물이 흐르는 강도 마찬가지였다. 고인 곳도 없이 모든 물은 새로웠다. 잠시도 머물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새롭고 희망적이고 후회와는 무관한 삶보단 과거에 천착한 삶과 가까웠다.
오늘이었던 어제에 살았다.
불어온 바람마저 갈 곳을 잃는 곳. 공기마저 머무는 골목을 다시 찾는 이유였다.
새 옷보다 어제 버린 옷에 미련을 보이고, 새롭게 시작하겠다며 정리해 버린 글에 후회하는 나는 바다가, 강이 상징하는 새로움이나 변화보단 골목이 보여주는 어제에 안심하곤 했다. 내 뿌리를 잃지 않았다는 다행한 마음이 들었다. 나와 같이 오래되어져 가는 무언가가 있다는 동지 의식이었다.
오래된 냄새. 지워지지 않는 세월의 냄새다. 켜켜이 쌓인 짐들이 내뱉는 숨 냄새. 오래전 아들딸이 들고 온 선물 상자마저 버리지 못해 마당 한편에 쌓은 집들과 쓸모없는 것들은 좀 버리시라 짜증을 내는 자식이 가고 나면 다시 제자리를 찾는 온갖 물건들이 체취처럼 붙어있는 기억의 냄새가 나는 곳.
혼자 살아야 하는 세상에 결국 홀로 남겨졌더라도 슬프지만은 않다. 홀로 남겨져 세월을 먹고 오늘을 기어이 어제로 만드는 골목길에서, 나는 추억과 함께 세월을 몸에 묻힌다. 덕지덕지 붙은 돌담의 이끼처럼 내 몸에도 세월이 곰팡이처럼 번진다. 시간은 흘러갔건만, 몸에 새겨진 세월을 보며 시간을 붙잡았다 나는 또 위안한다.
오늘 옥봉을 보며 나는 과거의 한 남자가 걸었던 길을 상상한다. 매매 추운 겨울날 매를 맞고는 추위 속에서 먼 길을 걷다 고통 속에서 죽었을 그를 생각해 본다.(05화 나막신쟁이의 전설) 성안에서 매를 맞고 -지금은 쭉 뻗은 길이 만들어졌지만 그럼에도 멀고 구불구불한 흔적은 남아있는 먼 길을 팔지 못한 나막신과 돈 몇 푼을 제 몸보다 소중히 감싸안고서 걸었을 길을 걸어본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코트를 입고서도 귀가 아파지던 길을.
두툼한 울코트 속으로 손을 깊숙이 꽂아놓고서도 어서 이 길을 걸어버리겠다며 서두르던 나와 눈 내린 밤길을 짚신 하나 신은 채 오르고 또 오르며 가족만을 생각했을 그가 겹친다. 따뜻한 차 한 잔이 기다리는 곳으로 가겠다고 생각하며 걷는 나와 이 겨울 먹을 것도 없이 추위에 떨 가족을 위해 몸을 내어주고 삶의 고개처럼 휘어지고 꺾어지고 휘돌아 치는 고개를 넘었을 그를 생각하며 나는 또 그만 미안해져 버린다.
편안한 찻집에서 따뜻한 라테를 마시며 글을 쓰는 지금 커피가 유난히 쓰다. 미안함과 가여운 마음이 카페라테처럼 섞이어 어느 마음인지 잘 모르게 되었다. 혹은 둘 다거나.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고 내일은 다가올 오늘일 뿐이라고 누가 그랬더라. 오늘만을 생각하며 오늘을 살길 바라면서 나는 또 어제에 지내는 제사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 어제를 추모하며 오늘을 보내면 내일은 오늘이라는 어제까지 얹어져 하루만큼 더 무거운 추모의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조금도 머물지 않고 오늘만을 살고 내일을 맞는 강가보다, 어제의 상처도 흔적 없이 지우며 오늘을 미리 보여주지 않는 바다도 아닌 골목을 헤맨다. 나는 어제에 머문다. 과거에서 오늘을 보고 오늘을 조용히 묻으며 걷는다. 오늘보다 어제의 냄새로 덮인 옥봉을 걷는다.
갑자기 반말 조로 변해서 당황하셨죠. 곧 고쳐서 다시 올리겠습니다. 9일 월요일부터 전시라 게으름 좀 피우느라(?) 글도 자꾸 늦어지고 해서 일단 작가님들께 검사받고, 혼나고, 정신 좀 차리라고 확 올립니다. 읽으시는 작가님들께는 죄송….
옥봉동은 그림 그릴 곳이 많아도 너무 많은 곳이라 글을 몇 편으로 나눠서 올리겠습니다. 그러니 이번 글은 펜화로만 스케치하듯 올립니다.
옥봉동 같이 걸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