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고개, 이현

이현동이라 하옵니다

by 노사임당

"매다"

"응? 까마귀 아니었어?"

"매가 낮게 날아…."


운전하다가 큰 아이의 외침에 깜짝 놀랍니다. 저는 까마귀를 보았는데 아이는 매라고 외쳤으니까요. 차를 타면 고작 한 평도 되지 않는 작은 창을 통해 세상을 봅니다. 한 평도 되지 않는 유리창이지만 그걸 통해 보는 시선은 무척이나 다양하고 또한 다름을 느낍니다. 누구에게는 강 속 물고기를 사냥하려 저공비행 중인 매가 보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창으로 달려들지 않을까 두려움이 느껴질 만큼 크고 가까이 있는 까마귀가 보입니다.


창문을 통해 보는 세상만 그럴까요? 우리가 매일 들여다보는 활자, 스마트폰이든 종이책이든 같은 글자와 문장을 읽어도 느끼는 점이 다릅니다. 해석이 다릅니다. 감정을 건드리는 부분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배웠던 학교에서는 '이 글의 주제는 이것' '본문에서 중요한 부분은 첫째 이 문장, 둘째 이 문장'이라며 가르쳐 주곤 했습니다.


누군가는 좋은 책만을 읽으라고 합니다. B급 정서가 가득한 글들은 읽지 말라는 사람도 만나보았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배울 점은 늘 있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통각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적은 독서 시간으로 효용 있는 결과만을 보려면 좋은 글이 적힌 책이 낫겠지요.)

진주 시청 홈페이지에서 발췌 (진주 시가 안에 이현동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현동을 걸을까 합니다.(진주 지도 중에서 진주시가라고 적힌 곳입니다) 저에게 이현동은 낯선 곳입니다. 진주라는 도시는 인구도 적고 도시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도 그만큼 적어 조용합니다. 그런 도시이지만 면적으로만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부산보다 작을 것 같아도, 예 좀 작습니다. 서울보다 작을 것 같아도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장)군을 흡수해 버린 부산이 오히려 서울보다 더 크니 서울(605.21k㎡), 부산(771.33k㎡), 진주(712.86k㎡)를 비교하면 진주는 서울보다 거대한 면적을 가진 도시인 것을 알게 됩니다.


이현동을 걷고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단순했어요. 그저 360번 버스가 우리 집이라는 종점에서 출발지인 그곳까지 간다는 이유였지요. 진주를 소개하려면 "뻔한" <진주 가볼 만한 곳>이 아닌 곳으로 모시고 싶었고요. 그렇다면 도보 여행, 혹은 자전거 여행, 오토바이 여행 정도는 되어야겠지만 자전거나 오토바이가 있어도(자전거 무서워요. 전용도로 자주 끊어져요.) 없고요. 걷는 건 글쎄요. 제 무릎이…. 그런 연유로 좋아하는 버스를 선택했고, 그렇다면 우리 집에서 가장 자주 오는(20분마다, 지금은 방학이라 주말 시간표로 운행 중) 버스를 타고 가는 게 맞을 테고, 그 버스를 타고 여행한다면 '끝에서 끝까지는 가야지'라는 쉬운 계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선택된 동네지만 어디를 가볼까, 어디가 좋을까 생각은 했습니다. 이현동의 유래라거나 역사라거나 작은 이야깃거리를 소개할까. '그냥 걸었어' 노래를 부르듯 무작정 걸을까. 고민했습니다.

제가 보고 싶은 것은 어제의 역사보다 오늘의 이현동이었습니다. 제 입으로 제 이야기만 하는 그림보단 누구나 고개 끄덕이며 들어줄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만 제가 걷고 본 곳은 유적지도 근대 문화 역사거리도 아닙니다. 한 평짜리 창문을 통해 바라볼 저의 시선은 '이현동의 지금 모습, 오늘'입니다.






그럼에도 간단히 이현동을 소개해야겠습니다.


이현동: 본지역은 진주군 중안면의 지역으로 고개(향양과 산청으로 가는 길)가 둘이 되므로 두고개, 두우개, 이현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화동.일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이현리라하여 평거면에 편입되었다가 1938년 진주읍 구역 확장에 따라 진주읍에 편입되어 리가 동으로 되고 1954년 진주시 조례에 따라 이현동을 갈라서 이현남동, 이현북동이 되었습니다.(시청 홈페이지에 있는 이현동 소개) (기타 특이점: 몇 년 전에는 '두고개 골목 문화제'가 개최되기도..)


이현동에는 새로 생긴 비싼 아파트가 있는 시내 쪽과 예전 모습을 간직한 외곽 지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도시의 편리함과 농촌의 순수함을 모두 가진 자연친화적인 동이라는 소개가 붙습니다. 현대 건설과 한화 건설이 지은 이현 웰가, 힐스테이트 같은 이름의 대단지 아파트와 (발췌: 디지털진주문화대전) 자연지명을 한 강남골[감나무골], 나발등, 돌개비[石甲山], 무근내고개, 숯골, 두우개, 모노실(몬노실), 미륵골, 뱀골, 삐떼이, 지네산, 나불리(羅佛里), 대밭밑, 돌깨나무티, 버드골(柳谷)등의 이름을 가진 마을이 공존하니 도시와 농촌이 공존한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설명하기도 좀 민망할 만큼 심심한 이유로 만난 동네였습니다. 그럼에도 세 번째 찾아간 길에선 호젓한 기분이 들었다가 희망 같은 기분이 들었다 했습니다. 2월을 닮았습니다. 2월을 좋아하는 도종환 시인처럼 저도 2월이 주는 느낌을 어렴풋이 알 것만 같습니다. 추위가 끝도 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1월을 지나 가끔 햇살이 따스하게 느껴지고요. 조그마한 불씨에도 화르르 제 몸 온전히 태워버릴 듯 바짝 야윈 나무에 물기가 설핏 비치기도 합니다. 2월, 그렇게 봄을 기대하게 되는 설레는 달 같습니다.


이현동을 걸으며 무언가 낯설고 멀게 느껴지면서도 어렴풋이 친근함에 대한 기대가 느껴졌습니다. 2월 같은 설렘을 느꼈습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감정도 아닌, 차갑게 식어 눈물마저 말라버린 것도 아닌, 무언가를 기대한다면 그 겨자씨만 한 크기의 기대나마 조금은 키워도 좋겠다는 마음이랄까요.




찬 바람맞으며, 길도 잃으며, 버스도 여러 번 타고, 콧물도 많이 흘린 여정이었습니다. 두 번째 버스로 간 이현동은요. 귀가 떨어질 것 같았고 여기가 어딘지 몰라 하염없이 걷다가 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면 기분이 좋았다가 갑자기 후회가 들었다가 하였습니다. 제가 사는 방식 같았습니다. 계획도 없이 걷는 길에 갑자기 희망찬 기분이 들기도 하고 절망스러운 기분에 그만 포기하고 싶고는 했습니다.


미리 이런저런 동네 유래도 찾아보고 답사도 야무지게 했다면 돌개비니 두우개니 지네같이 구불구불한 지네산도 보여드렸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이현동이라 붙입니다. 여러 번 우려먹습니다.ㅎㅎㅎ

제 눈이 이리도 짧아 단거리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다음 여정은 주제를 정해서 움직여 보겠습니다. 추워서 정신없는 가운데 무작정 걸으며 당장 눈앞의 골목과 집에 시선을 빼앗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글로 풀어내기에는 그리 좋지도 않네요.

오늘은 어제처럼 그 자리에 있는 오래된 집과 이정표 같은 곳들을 그려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없지만 그림은 풍성하게 차렸으니 이번 주는 그림 여행으로 만족해야겠습니다.


못밑마을회관 근처



그럼, 다음 주는 진주 전통 설화 '나막신쟁이 전설'이 있는 말티 고개로 모시겠습니다. 다음 내리실 정류장은 옥봉 말티고개, 옥봉 말티고개입니다.

다음 주 뵙겠습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