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막신쟁이의 전설

내리막이거나 오르막이거나, 말티고개에서

by 노사임당

시인이 쓴 책에 이런 글귀가 있었습니다.

"셔터는 행간이고, 빛은 비유이며, 프레임은 절제다."<시인의 사진/홍재운>



오늘은 360번 버스 타고 말티고개에서 내립니다. 구불구불 이어진 고개 꼭대기에서 굽이쳐 흐르는 내리막을 보며 걸을 건데요. 내리막과 오르막 그 어디쯤에서 보여드릴 오늘의 프레임은 슬픈 한 장면입니다.


이야기 하나 해드릴게요. 어느 음력 섣달 스무이튿날에 있었던 일입니다.

옛날 진주에 나막신쟁이가 살고 있었어요. 가정도 꾸린 가장이었지요. 여름에는 장사가 꽤 되었답니다. 나무를 깎아 만든 굽이 있는 나막신은 장마철이나 비가 오는 계절에 유용한 물건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겨울에는 우산 장수처럼 돈벌이가 힘들었지요. 눈이라도 오면 또 달랐지만, 진주라는 곳은 눈도 잘 오지 않던 곳이니까요. 잘 말린 나무로 견고하게 깎아본들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나막신을 살 사람은 없었답니다.


어느 날이었어요. 그날도 잘 만든 나막신을 짊어지고 장에 간 나막신쟁이는요. 장이 파하도록 하나도 팔지를 못했답니다. 이걸 하나라도 팔아야 그 돈으로 곡식도 사고 어리기만 한 아이들 겨울을 날 무명천도 사련만 그날따라 손님은 더 없었지요. 이렇게 돈 한 푼 벌지 못한 채 돌아가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던 나막신쟁이의 귀에 어디선가 이런 이야기 소리가 들려옵니다.


"자네 그 이야기 들었나?"

"아, 무슨 얘기?"

"거 왜 있잖은가, 성안 부자 나리 양반 말이야. 무슨 까닭인지는 몰라도 곤장을 대신 맞아줄 사람을 구한다지?"

"곤장? 이 겨울에 매품을 팔라고? 돈 몇 냥에 매품 팔 삯꾼이 어디 있겠나. 곤장 맞고 죽을 일 있어? 그걸 누가 하겠나"

"아녀, 부자 양반이 아는 얼굴이라고 살살 쳐주기로 관아랑 입을 맞췄대. 슬렁슬렁 매 몇 대 맞고 아픈척하면서 돈만 받으면 된다던 걸."

"그래? 그렇다면 말이 다르지. 이번 장에선 재미도 못 봤는데 물 곤장이나 맞고 돈 좀 벌어볼까?"


주막에서 흘러나온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진 나막신 쟁이는 그들에게 물었어요.


"정말로 곤장 몇 대만 맞으면 돈을 준답니까?"

"아, 이 사람이 속고만 살았나. 그렇다니까 그러네"


그 길로 부잣집을 찾아간 나막신쟁이. 며칠을 굶은 몰골에 추위에 떠는 모습이 안쓰러워 부자는 저녁을 먹이고는 호출장을 들려 관가로 보냅니다. 관아에 찾아간 나막신 쟁이는 그 부자 양반을 대신해서 곤장을 맞습니다. 한대 두 대 석 대…. 물 곤장을 쳐준다던 사람도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며 제가 먼저 맞겠다던 사람도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살은 찢어질 듯 아파지고 정신까지 까무룩 혼미해집니다. 겨우 약조한 곤장 수를 채운 나막신쟁이는 돈 석 냥을 받습니다.


곤장을 맞은 성안에서 집까지 가려면 지금으로 쳤을 때 '동'을 두세 개를 지나야 합니다. 돈도 벌었겠다 이제 이 돈으로 가족들 따스운 밥 한 끼 먹을 수 있겠다는 희망에 나막신쟁이는 고통도 잠시 잊고 발걸음을 뗍니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밤바람은 거세집니다. 소한도 지나고 이제 입춘이 남았지만 어쩐지 날은 더 매워만 집니다. 몸도 성치 않은 나막신쟁이는 평소라면 문제없을 돌부리에 넘어지고 마른 나뭇가지에 찔리며 넘어질 듯 길을 걷습니다.


강바람은 밤이 되니 반짝임을 멈추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합니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추위는 찢어진 살 속을 파고듭니다. 겨우 평지를 걸었을 뿐인데 나막신쟁이는 기력이 다해가는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저 고개만 넘으면, 저 말티고개만 지나면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입니다. 가족들의 웃음소리와 따뜻한 밥 한 끼가 되어줄 돈을 꼭 쥔 나막신쟁이는 한 발 한 발 힘겨운 걸음을 이어갑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밤새 돌아오지 않은 남편이 걱정이 된 아내는 그를 찾아 나섰습니다. 길은 얼고 미끄럽지만 그가 다니는 길을 압니다. 가파르고 휘어지는 길을 걱정 가득한 마음으로 걷습니다. 그때입니다. 마른 잎에 덮인 채 누군가가 흙바닥에 누워있습니다. 섬뜩한 기분에 달려간 아내는 그만 오열하고 맙니다.

추운 겨울 피범벅이 된 옷을 입은 채 주먹을 꼭 쥔 채 얼어있는 남편입니다. 제아무리 불러도 대답조차 없습니다. 장독(杖毒)이 퍼져 죽은 나막신쟁이. 가족과 함께이고 싶었던 나막신쟁이는 석 냥의 돈을 꼭 쥔 주먹 속에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대한도 소한도 지나 입춘만을 남겨둔 마지막 추위. 지금도 유난히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건 그날 나막신쟁이의 풀리지 않은 한이라고 합니다. 진주에서 내려오는 이 설화는 음력으로 1월 22일을 나막신쟁이의 날로 부르며 그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 우리는 그걸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나만이 아닌 우리를 위한 행동을 우리는 배려라고 배웠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마음을 요즘 어린아이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초등학생 아들에게 뉴스를 보여주다 조용히 비난하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던 지인이 생각납니다. 철로에 쓰러진 사람을 위해 내려갔던 사람도, 바다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 구명조끼를 던져준 해경의 행동도 자신을 돌보지 않은 행동이라 생각하더군요. 물론 모두의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맹자가 답지 않게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던 양주가 떠올랐습니다. 양주의 위아설이 생각납니다. 이기적으로 굴기를 권하는 것이 아니라 제 몸을 먼저 건사하라는 속뜻이었겠으나 맹자는 자신의 무릎에 있는 털 하나를 뽑아 세상을 구할 수 있는데도 그러하지 않는다고 양주를 맹비난하였습니다.


오랜 시간 유지된 이름을 가진 나라에서 태어나 그 이름이 계속되는 세상에서 죽는 지금의 '평화'로는 상상할 수 없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살던 맹자였습니다. 그는 하나의 왕을 모시고 그로써 전쟁이 사라지는 세상을 바랐을 겁니다. 그것은 소수의 희생으로 다수의 평안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니 개인이 혼자 살겠다고 은둔하거나 타인의 죽음에 무관심하다면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나무랐습니다.


세상은 바뀌었고 우리는 춘추전국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제 몸 하나 제대로 건사하는 것이 오히려 타인을 위하는 일일 수도 있는 시대를 삽니다. 물론 이름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기는 어려워도 가족,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다면 이야기는 다를 것입니다.

빨래방을 그려야 이쁜데...다음주에 그려서 올릴게요^^

춥습니다. 따뜻한 옥봉 빨래방에 앉아 이 글을 쓰면서, 이제야 평화가 찾아온 대한민국에 살면서 가난하고 가난했던 나막신쟁이의 선택을 생각해 봅니다.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면 모두가 죽을지도 모를 상황에서 그는 선택했습니다. 제 한 몸을 희생하기로요. 제가 그였다면 그 선택은 선택이 아니었을 겁니다. 제가 그의 아내였다면 그건 선택일 수 없었을 겁니다. 우리는 같이 굶을 수는 있어도 누군가의 죽음을 팔아 끼니를 때울 수는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산다는 건 고작 이런 것, 아니 어쩌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이 없다면요. 그 흔한 사랑이지만 사랑이 없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자꾸 찡해지는 코를 팽하니 풀며 생각해 봅니다.

옥봉에는 사랑이 쓸쓸한 바람이 되어 불지만, 곧 봄이 올 것을 압니다. 가장 추운 시간을 견뎠으니 살아갔을 겁니다. 남겨진 가족은 그를 위해 살아냈을 겁니다.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그를 생각하며 자꾸 감상에 빠지는 것은 그가 지나던 길에 제가 머무르기 때문입니다.

자, 저도 이제 일어나야겠습니다. 1,500원짜리 다방 커피는 식어버렸지만 뜨겁게 익은 제 이불들은 저를 기다리니까요. 이제 집으로 가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요.


(이 글은 버스로 다니며 쓰고 그렸으나, 마지막은 제 차로 왔습니다. 설이 매해 더 힘드네요. 엄살 아닌 엄살 좀 떤다고 빨래도(볼일 있는 척) 좀 갖고, 차로 와서 코 풀면서 글을 마무리해 봅니다.)




다음 내리실 정류장은 옥봉 대림아파트, 옥봉 대림아파트입니다. 옥봉에는 기억도, 이야기도 많습니다. 형평 운동도, 성당 이야기도 있으니 천천히 둘러보시도록 몇 주 운영할 예정입니다. 그럼 다....음주에 뵐게요^^



사진은 말티고개.

브레이크 파열 주의가 가파름을 대신 말해 줍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