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몇 짤?
차창 밖으로 만개한 꽃을 봅니다. 비도 꽃도 봄을 알리러 온 손님 같습니다.
손님 맞을 준비는 언제고 조금 부족하곤 합니다. 청소도 빼먹은 부분이 보이고, 음식도 더 신경 쓰고 싶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시간을 만들 수 있을지 손님 초대를 생각한 순간부터 고민합니다.
부모님께 자식은 올 때 반갑고 갈 때는 더 반갑다던 농담이 생각나네요. 주고 더 주어도 모자란 자식이지만 자식의 선 없는 편안한 침범에는 줄 서는 자리를 만들고만 싶어지나 봅니다. 손자의 재롱도 육체의 고됨을 초과하는 시간이 오니까요. '언제 가나'하고 눈치 아닌 눈치를 보게 될 겁니다.
같은 손님이지만 봄은 자식, 손자와 다른 감정을 줍니다. 봄의 전령, 봄을 알리는 벚꽃은 올 때 반갑고 갈 때는 너무 아쉽습니다. 춥고 춥던 겨울을 견딘 겨울잠 자는 동물 같던 마음이지요. 봄을 발견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드디어, 드디어 왔구나. 하고요.
더 이상 움츠릴 필요도 없고요. 더워 손가락도 까닥하기 싫은 무기력한 여름도 아닌 봄, 가벼운 옷이 주는 홀가분한 어깨, 살랑이는 바람이 기분까지 가볍게 만드는 봄입니다.(물론 알레르기, 봄 불청객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않은 분이 많겠지만) 기다렸던 봄, 생각 속에만 있던 봄을 실물 영접합니다.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예쁘고 더 좋습니다.
아마 유한함이 좋아함과 더 좋아함을 가르는 기준일 거예요. 봄은 지금 가던 길로 가고 나면 다음 해에 '봄'이라는 같은 얼굴로 옵니다. 가뿐한 그 이름. 무언가 볼 일이 많아질 테니 준비라도 하라는 그 이름 '봄', 이제 봄을 즐겨 보고, 소풍을 가 보고, 사람들 많이 만나고 얼굴을 보라는 봄일 거예요.
그렇게 봄은 매년 찾아오지만 -나는 한 해만큼 세월이 묻었지만- 매년 말간 얼굴로 옵니다. 순간을 영원으로 바꾸는 재주는 없으니 잡을 수 없는 지금, 올해의 봄이 그래서 아쉬워요. 날짜를 잡고 계획한 날짜에 문을 두드리듯 찾아오는 게 아닌 봄은 어느새 곁에 도착해 있고, 돌아보면 이미 없곤 합니다.
잡을 수도 만날 약속도 하지 않은 채 오는 봄이 그래서 더 소중하고 그래서 더 애틋한가 봅니다. 그래서 질리지도 않고 식지도 않고 사랑하게 됩니다.
자, 봄 구경 갈 시간입니다.
봄이 좋다고, 꽃이 이쁘다고 말해놓고 저는 또 골목만 걸었습니다. 그럼에도 가는 길에 꽃구경 많이 했습니다^^
깔롱(?)부린다고 구두 신고 걷다가 몇 십년만에 뒤꿈치 피도 보고. 여튼, 이번 주도 옥봉동입니다.
길을 잃어도 무섭지 않은 옥봉동입니다. 동네가 길죽한 모양으로 생겨서 길가로만 나오면 미아는 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