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머리가 샌다. 머리가 검은 사람과 흰 사람이 있다면 누구 나이가 많겠는가? 새치도 있다 치면 누가 나이 들어 보일까 정도로 바꿔 질문을 해도? 머리가 하얀 사람. 몸에서 머리카락만 남기고 다 가린다면 색으로 가늠.. 되겠지? 그 공식을 나이가 70 이상인 분들께 대입하면 어떨까? 단순히 머리카락 색으로만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을듯싶다.
누가 봐도 언니처럼 보이던 분과 동생 같던 분이 있다. 사실은 나이가 동생이신 할머니와 <머라카노?> 하며 나이 드신 것을 들켜버렸던 <연세 인증> 할머니 얘기다. 머리가 더 하얀 사람이 동생이고 허리가 꼿꼿하고 머리는 검은 자그마한 할머니가 언니여서 동생분 억울하겠다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키 작은 할머니는 귀가 약하셨다.
주인공 할머니는 추석 전에 한 번 추석을 나고 한 번 더 오셨다. 앞으로도 더 오시겠지만. 며칠 전 오셨을 때는 머리가 많이 자라서 흰머리가 보였다. 들어오시며 잠깐 멈춤 하시더니 "아이고 허리야"까지 하신다. '할머니 안돼! 할머니 콘셉트는 귀만 안 들리는 거란 말이에요.' 허리가 편찮으신지 머리 염색도 잊었다. 조금 전까지도 누웠다 오시는가 보다. 귀 옆부분, 머리가 벌어져있다. 모로 누워 아픈 허리를 잠시 쉼 하다 얕은 잠에서 깨니 게으를 새 없는 살림이 퍼뜩 떠오르셨나 보다. 마음이 편칠 않다. 가져오시는 물건을 나가서부터 들어드렸다. 새송이버섯도 사시고 부산우유도 사시고 담금주도. 편찮으신 허리를 이끌고 오신 것 치고는 다급함이 없는 장보기 물건인걸? 게다가 술이라니. 건강주 담으시려나? 싶어 여쭈어본다.
"담금주는 왜 사시는 거예요? 뭐 담으시게?"
"뭐?"
"에헴. 어어(목청 가다듬는 소리) 담금주는 술 담으시게요?"
"어, 더덕술을 다 먹어서 술 부어놓을라고."
"술만 자꾸 부으면 어떡해요. 영양분 다 빠졌겠네. 헤헤헤"
"언제 다 먹었는지 오늘 보니까 없어."
"그래서 또 사시는 거예요?"
(아이고 귀여우셔라. 자꾸 말을 걸고 싶다.)
할머니 앞에서 귀에다 대고 고함을 질러가며 친한 척을 한다. 우리 10008세 둘째보다 쪼끔 더 큰 키의, 나이는 내 두 배 되시는 할머니. 볼 때마다 귀엽고 보고 싶은데 오늘 허리가 아프다 하시니 걱정이 된다. 그래도 "아이고 허리야" 하면서 술도 사러 오셨으니, 됐다. 오래 써서 좀 낡은 것일 뿐. 이 정도면 연세보다 정정하시다. 오늘 더덕주 한잔 꺾으며 드라마 재미나게 보셔요. '근데, 요즘 8시 드라마는 제목이 뭐예요?' 다음에 물어봐야겠다. 할머니들의 일상은 8시에 동시 행동이 국룰이니까. 각자의 공간에서 공영방송 혹은 문화방송 드라마를 보시는 걸로. 좋겠다. 누구를 만나도 대화가 통하는 주제가 항시 준비되어 있다는 게 말이다.
4. 아 ㅏ.. 이러면 안 되는 거 같은데.. 에라 모르겠다!
<읍> 뉴스입니다. 오늘 10월 12일 3시 현재입니다. 집안 살림이 잠시 소강상태인 틈을 타 '타 행성'에 거주 중인 여성이 지구로 또 내려왔습니다. 타 행성에서도 여자가 집에서 살림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니 지구식 해석입니다. U.F.O탑승 규칙으로 추정되는 고무줄로 머리를 묶고 있습니다. 지구인의 외모를 한 외지인은 또다시 들어오자마자 하찮은 슈퍼 물건을 금방 집어 나왔습니다. <마늘과 꽈리고추>입니다. 외계인의 입맛에 지구땅 다양한 고추가 중2들의 마라탕 같은 맛인가 봅니다. 올 때마다 희한한 메뉴 구성입니다. 저녁 장 같은 건 보지 않는 거 같습니다. 밥은 안 해도 되다니 부럽습. 어험. 중요한 사실은 <돼지갑>을 벌린 순간 일어났습니다. 외지인의 <돼지갑>에는 말입니다.
신분증 자리에
그분이 또 있었습니다.
지구 방문 통행증인 <돼지갑>에는 지구 물건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걸 간과한 거다. 임영웅 사진이 고작 지갑 하나에만 소중히 들어있을 줄 알았다니. 쯧쯧. 다음에 뒤를 밟아 외계 주거지에 무단 침임 시도를 해보고 싶다. 국민학교 시절 달동네 친구집에 놀러 가서 봤던 이선희 브로마이드처럼(친구 오빠 취향) 벽에 임오빠 사진이 도배되어 있는지 참으로 궁금해진다. 그녀가 머리를 풀고 지구를 떠나기 전에 현장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좋겠다. 인류발전에 많은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슈퍼에서 바라본 맞은편 건물. 가끔 칼국수를 먹고 일하러 갑니다. 프렌차이즈지만 이곳 메가커피집은 더 맛있는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