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Jerry You [Ep.2] 고양이의 홍채

by Quellen

딸아이 말이 맞았다. 고양이를 본 순간 나 역시 느꼈다.


'내 고양이다. 내 가족이다.'


생후 4주밖에 되지 않은 이 아이는 300ml 생수병만큼 작았다. 답답한 유리 케이지 밖으로 나와 꼬물대는 것이 어찌나 애처롭던지. 고양이는 낮에 만났던 딸아이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나는 고양이를 유심히 보았다.


작은 얼굴에 둥글고 큰 눈, 특히 큰 동공은 마치 순박한 소의 눈인 듯, 영민하고 지혜로운 올빼미의 눈인 듯 느껴졌다. 눈에 비해 입은 한없이 작았다. 그래서일까 마치 한 때 유행했던 토끼 캐릭터 헬로키티나 미피를 보는 듯했다. 큰 눈과 작은 입. 그것은 전형적인 순종과 보호본능의 이미지였다.


사육사에게 품종을 물었다. British Short Hair Silver Shaded. 이 아이의 품종이다. 흔히 브숏실버라고 불리는 이 아이들은 잔뜩 심술 난 얼굴을 가진 일반적인 브숏과는 달리 매우 온화하고 순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처음 만났던 날. 유난히 눈이 크고 입은 작았던 고양이


관상에 관심이 많은 나는 이 아이의 눈을 좀 더 관찰해 보았다.


4 백안(四白眼)의 눈이었다. 아니 내가 아는 4 백안에 관한 관념을 무너뜨리는 눈이었다.


동공이 작아 흰자가 상하와 좌우로 보이는 4 백안은 간사하고 사악한 인상을 준다. 만화가나 영화감독들이 범죄자를 그리거나 섭외할 때 이런 눈을 먼저 떠올린다고 한다. 하지만 이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동공이 워낙 커서 순박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그뿐인가. 이 아이에게는 소위 세로동공(Vertical Pupils)이 주는 공포마저 없었다.


고양이 동공은 광량이 증가하면 세로로 가늘어진다. 그 모습이 공포를 자아낸다. 뱀과 도마뱀, 악어같은 파충류의 동공이 대표적인 세로동공형이고, 포유류 가운데에는 고양이의 눈이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 포비아가 되는 것도 바로 이 눈 때문이다.


전형적인 고양이의 세로동공. 뱀의 눈과 닮았다.

하지만 이 아이의 눈은 달랐다. 행여 공포스러운 세로동공을 가졌을까 봐 고양이를 안고 밝은 조명아래로 데려가 보았다. 물론 이 아이의 동공도 세로로 수축되었다.


하지만 그 모습마저 사랑스러웠다. 왜 그럴까 유심히 보았다. 그건 바로 검은 동공 주변에 펼쳐진 깊고 푸른 바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은 세로동공 주변에 펼쳐진 푸른 바다. 세로동공을 한 모습이 오히려 사랑스럽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태어난 지 4주밖에 안된 고양이가 어쩜 이렇게 깊고 푸른 눈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이 아이의 눈빛에 빠진 나는 오래전 보았던 영화 <I Origins>을 떠올렸다.


사람은 그 누구든 자신만의 홍채 모양을 갖고 있다. 사람의 지문이 그러하듯, 홍채 모양은 그 사람의 고유한 전유물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죽은 사람의 홍채를 가지고 태어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이 영화. 그리고 망자의 홍채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전생의 업보와 인연을 물려받을 수도 있다는 이 영화.


서양의 과학적 추론과 동양의 윤회론이 잘 버무려졌고, 또 지성 넘치는 배우 Brit Marling이 나오는 영화이기에 서너 번은 본 것 같다.


그러면서 인간이든 동물이든 눈동자에는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것들은 감정일 수도, 사상일 수도 있으며, 무거웠던 인생의 굴곡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리해서 어쩌면 헤어진 인연을 다시 결합시켜 줄 표식일 수도 있겠다고도 생각했다.



영화 <I Origins>, 나와 동일한 홍채를 가진 사람은 없다. 사랑하는 여인과 사별한 홍채연구자는 어느 날 그녀의 홍채를 가진 소녀를 인도에서 발견한다.


고양이의 눈을 본 나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나는 반드시 만나야 할 인연을 생각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리라. 어린 고양이는 내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 순간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남겨두지 못했지만, 고양이의 그 눈짓은 인연의 징표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다시 만났네요."


고양이가 말했다. 아니 그렇게 내 귀에 들렸다. 그런데 그게 누구일까? 드디어 다시 만나야 할 인연이 누구길래 고양이가 되어 나를 다시 찾아온 것인가?


영화 <I Origins>의 가설에 따르면, 그 인연은 이 고양이가 태어난 날, 그러니까 4주 전에 죽어 고양이로 환생한 것이다.


4주 전에 죽었던 이는 나와 어떤 인연이었을까? 아니, 내가 아니라 이 아이를 처음 발견했던 딸아이와는 어떤 인연이었을까?




한 순간의 고민도 없이 계약을 했다. 가격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지만 주저하지 않았다.


돈문제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딸아이뿐만 아니라 아내와 아들 모두 이 고양이를 가슴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선금을 지불했고, 잔금은 집 인테리어 공사와 이사가 끝나는 3주 뒤에 지불키로 했다. 3주 뒤에야 진정한 가족으로 동거를 하는 셈이었다. 인테리어 공사 때문에 처가에 잠시 더부살이를 하는 처지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아이들은 이해를 했고, 대신 매일 하루에 한 번 이 고양이를 면회하러 오는 기대에 벅차 있었다. 물론 나 역시 그러했다. (계속)


다시 만나야 했던 인연. 첫 만남의 순간들.


keyword
작가의 이전글I Jerry You [Ep.1] 처음보면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