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고양이 입양이 결정된 후, 우리 가족은 한가지 중요한 합의를 보아야만 했다. 그것은 새식구가 된 이 아이의 이름을 짓는 일.
하지만 그건 쉬운 게 아니었다. 차라리 신생아의 이름을 짓는 것이 쉬웠다. 부모로서 자식의 이름을 짓고 불러주기만 하면 되니까. 그리고 당사자인 아기는 자신의 이름에 대해 아무런 선호를 표시할 수 없으니까.
반면 새식구가 될 고양이 이름을 짓는 일은 공동의 작업이어야 했다. 가장(家長)의 권위로 밀어붙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특히 고양이를 자신들의 동생이라 여긴 두 아이들은 반드시 동생의 이름을 자신들이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도 의견을 제시했다. 고덕역 근처에 사는 고양이니까 '고덕이'가 어떨까. 아니면.... 그래 고양이가 남자니까 남자답게 '로미오' 어때. 줄여서 발음하면 '로묘'. '묘'는 한자로 고양이 묘(猫). 어때? 응?
물론 아재개그같은 이 작명이 아이들에게 통할 리가 없다. 아이들은 '고덕이'라는 이름에서 '구더기'가, '로묘'에서 음산한 묘지가 연상된다며 극렬하게 반대했다.
그렇게 열흘이 흘렀다. 아이들이 합의한 이름을 알려 왔다. 그 이름은 '제리'였다. <Tom & Jerry>의 제리라니. 그 제리는 쥐가 아닌가? 왜 고양이에게 쥐 이름을 붙이지?
이런 저런 반론을 제시했지만 뒤집을 수 없었다. 아이들이 동생을 그렇게 부르겠다는데, 부모가 어떻게 막겠는가. 하물며 실제로 케터리에 보관된 그 고양이에게 "제리야~"라고 불렀더니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겠지만... 믿어야만 했다. 늘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남매가 이번에는 사이좋게 '제리'라는 이름에 합의했다니, 부모로서 그 합의를 깨어 분란을 일으키고 싶겠는가.
그래... Jerry, 영어로는 Jerry라고 부르지만, 모두 제(諸)와 이로울 리(利)를 써서 제리(諸利)라고 지어주마. 모두에게 이로운 고양이 제리, 아빠의 성을 붙이면 윤제리.
그렇게 고양이는 제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아마 우리 가족이 나이와 지위에 상관없이 공평한 지분을 갖고 합의를 본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에 아이들이 대견했고 가족된 느낌을 가지는 기회가 된 것 같았다.
다시 열흘이 흘렀다. 그 사이 인테리어 공사가 끝났고, 자카르타로부터 이사짐이 왔다. 짐 정리가 끝난 11월의 어느 저녁, 제리는 드디어 우리와 함께 살게 되었다.
익숙해진 캐터리 케이지밖으로 처음 나온 이 고양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우리 가족을 어떻게 생각할까? 자신의 새로운 영역이 될 집을 보고 어떻게 반응을 할까? 제리뿐만 아니라 우리 네 가족 모두 긴장되었다. (두 아이에게는 미안한 말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신생아를 집으로 데리고 왔을 때보다 더 긴장되었다.)
다행히 제리는 새 보금자리에 잘 적응했다. 그 순간을 남겨놓아야겠다 싶어 제리가 처음 집에 왔던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두었다.
고양이는 철저한 영역동물이다. 그래서 새로운 공간을 만나면 불안함부터 느낀다고 한다. 제리 역시 그랬다. 좁은 케이지에서만 생활했던 아기 고양이가 넓은 거실을 본 순간 우선 공포심부터 느꼈을 것이다. 자신을 해칠 수도 있는 것들이 어디에 존재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리는 소파밑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아이들은 소파밑으로 팔을 넣어 제리를 꺼내려 했지만, 나는 그만 내버려 두라고 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기 전 제리를 찾았다. 하지만 보이지 않았고, 거실 한쪽에 놓아둔 사료도 입에 대지 않았다. 화장실 역시 깨끗했다. 불쌍했다. 낯선 곳에 와서 얼마나 무서웠으면 식욕도 배변욕도 참았던 것일까...
퇴근을 해서 집에 왔을 때, 비로소 사료를 먹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집안 여기저기를 탐색하기 시작했으며, 아이들과 사냥놀이도 같이 했다 한다.
다행이었다. 캐터리에서 우리 가족을 만난지 벌써 한 달 정도이니, 적어도 우리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는 모양이다. 이제 새 공간에 적응하기만 하면 우리 가족과 지내는데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제리는 브리티시 숏헤어답게 사람을 좋아해서 늘 집사옆에 머물지만, 어지간해서는 집사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씩, 아주 가끔씩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곤 했는데, 그 순간이 적쟎이 내 가슴을 애틋하게 만들었다.
우선 이른 아침에 나를 깨우는 제리의 모습이었다. 야행성인 제리는 아마 밤에 잠들지 않고 집 여기저기를 탐색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랜 시간동안 가족들이 잠들어 있어 외로웠는지, 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누구인지 관찰했던 모양이었다.
그 사람은 나였고, 제리는 언젠가부터 정확하게 아침 일곱시면 내 방 침대로 와서 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이 집사가 눈치도 없이 계속 잠을 자면 제리는 가차없이 내 배위로 올라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이 고양이의 얼굴을 보면서 잠에서 깬 그 순간 얼마나 행복했던지, 아니 이 아이는 긴긴 밤 혼자 얼마나 외로워 했을까... 애틋한 마음으로 목과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제리에게도 분리 불안증이 어느 정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번은 가족들이 모두 외출하고 나 혼자 집에서 제리와 놀아준 적이 있었다. 그러다 나 역시 외출을 나가려는 순간, 제리가 내 심장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신발을 신고 현관의 중문을 닫았는데, 그 중문 너머로 제리가 서글픈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마치 혼자 남겨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 애처로운 모습을 보고 사진부터 찍는 집사라니....)
그 모습에 나는 중문을 열어 제리를 안아 주었다. 물론 끌어 안는 수준의 스킨십을 극도로 싫어하는 제리는 정확히 1분만을 나에게 허용했고, 놓아달라는 의사를 명확하게 표시했다. 나는 놓아주었고, 제리는 어딘가로 도망쳤다. 그제야 나는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고 외출을 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새식구가 된 제리의 에피소드들이 늘어갔다. 가족들은 매일매일 제리의 새로운 면모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얘기하기를 즐겼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는 제리가 집사들이 꾸민 이 공간을 자신의 공간처럼 편안하게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우리에게나 제리에게나 큰 축복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