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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지 않는 글을 꾸준히 쓰려는 자의 마음가짐

기대를 낮춰야 진짜가 보인다

by 명건

첫 도전에 바로 브런치 작가로 선정된 이후 기쁨을 애써 억누르며 두 가지 다짐을 노트에 적었다. 하나, 꾸준히 쓰자. 창작물의 완성도, 대중의 반응과 상관없이 나는 평생 동안 글을 쓸 것이다. 무엇이든 쓸 것이다. 글 쓰는 일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과 가슴에 퍼지는 감정을 억누르는 일이 그보다 더 고통스럽다. 그런데 어디에 올려야 할까.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꾸밈이 없기 때문이다. 글꼴도 한정적이고, 멋들어진 배경음악을 사용할 수도 없어서 활자 외에 다른 장식들로 글을 돋보일 수가 없다. 그래서 좋았다. 오로지 글에 집중할 수 있어서.


둘, 결과에 연연하지 않겠다. 창작자라면 무릇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싶은 욕망을 가슴 한편에 지니고 있다. 혹자는 관심 따위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그저 창작하는 행위 자체가 의미 있다고 반론하지만, 나는 그 말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일기장에 적어도 되는 문장들을 굳이 왜 공을 들여 정제하고 사람들에게 공개하겠나. 창작자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보다 조금 더 관심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나는 깔끔하게 인정한다. 그렇다. 나는 당신들의 사랑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랑받기 위해서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 상대를 감복시킬 만한 특별한 무언가 있어야 한다. 머릿속에 영감이 피어날 때는 황홀하다. 햇살 좋은 날 시원한 바람이 부는 정원에 앉아 가만히 푸른 하늘 위를 잔잔하게 지나가는 뭉게구름을 보는 것만 같다. 이런 영감이 내게 온 것 자체가 황홀하다. 가만히 손을 뻗으면 닿을 듯 생생하게 느껴지는 영감들을 떠올리는 과정은 몹시 즐겁다. 그래서 당장이라도 무언가 끄적이고 싶은 강력한 욕망을 느낀다.


그러나 내 부족한 표현력과 필력을 통해 빗어진 문장들은 조악하기 그지없다. 창작은 나의 부족함과 정직하게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이다. 고고한 자태를 뽐내던 뭉게구름은 사라지고, 내 눈앞에는 찌그러지고 뭉그러진 영감의 덩어리들이 추하게 엉겨있다. 뭉게구름의 형태를 한 못생기고 찐득한 솜사탕 덩어리만 있을 뿐이다. 영감은 죄가 없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나의 부족함을 탓해야지.


이렇게 엉성한 글을 브런치에 업로드해봐야 별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이미 결심했지만, 낮은 조회수와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면 매번 마음이 아프다. 처음에 결과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면서 한번 업로드한 글에 다시 들어가 반응을 살핀다거나, 구독자 수를 체크하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 했었다. 그런데 웬걸 이미 반응을 체크하는 일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플이라는 말이 절절하게 와닿는다. 게시글에 좋아요 수는 나쁘지 않은데, 구독자 수가 왜 이렇게 안 오르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대중의 반응에 집착하면 ‘명건이만의 깊고 정직한 생각 표현'이라는 본래의 글쓰기 목적이 흐릿해진다. 작성한 글을 검토하며 ‘무엇이 부족한가'를 검토해 더 나은 글을 업로드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대중의 이목을 끌 것인가'하는 뜬 구름 잡기에 연연하게 되고, 방향을 잃게 된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이성에게 인기 있는 남자가 될 것인가'와 마찬가지로 이런 커다란 덩어리의 막연한 질문들은 결과에 집착하는 마음을 만들어, 상대적으로 초라한 지금에 집중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결과에 집착하면 마음속에 조급함만 커진다. 멋들어진 상상 속 나와 보잘것없는 지금의 나 사이 간극 때문에 쉽게 지친다. 마라톤 출발 신호가 울리자마자, 결승선을 통과하는 나를 상상하는 기분이랄까. 한 발, 한 발, 한 문장, 한 문장이 더 막막해진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글쓰기 말고도 여러 분야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수영, 운동, 달리기 등. 결과에 집착하면 과정이 소홀해진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다. 그러나 인간이 기대를 하지 않을 수가 있는 생물인가? 아니 나라는 사람이 도통 기대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순수한 인간이던가? 나는 여전히 당신들의 사랑을 갈구한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자, 버릴 수 없는 내 욕심이다. 나는 당신들의 사랑이 필요하다. 다만, 갈급한 마음에 앞서 성장하는 욕망에 조금 더 집중하고자 결심했다. 더 큰 사랑을 받으면 좋겠지만, 그건 독자의 마음이다.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러나 새 글을 발행할 때마다 조금이라도 성장하도록 노력하는 것은 나의 소관이다. 나는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외로움의 시간을 견딜 것이다. 결과보다는 성장에 집착할 것이다. 훗날 더 많이 성장한 내가 이 글을 다시 읽고 그때는 그랬었지, 하며 웃을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매번 최고의 글을 선보일 수는 없겠지만 매 회차 조금씩 성장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구독과 좋아요 누르고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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