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주는 일의 기쁨
돈 없이는 살아도, 사랑 없이는 못 살아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인간의 본능이다. 아니, 모든 생물의 본능이다. 애완동물은 주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재롱을 부리고, 야생동물은 무리의 존경을 받으려 목숨을 걸고 경쟁한다. 인간은 사랑받기 위해 외모를 가꾸고, 돈을 번다. 아름다워지면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돈을 많이 벌면 더 큰 사랑을 얻을 거라 확신한다. 인간 행동의 핵심 동기가 더 많은 사랑을 받으려는 욕구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욕망의 범위와 깊이에 있다. 미디어의 영향으로 인간은 사랑에 대한 욕망이 더 커지고, 사랑을 갈구하는 대상 역시 이성이나 가족을 넘어 생면부지의 타인에게까지 확장된다. 우리는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면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빚을 내 명품 옷을 사고, 형편에 맞지 않는 고급 외제차를 산다. 그리고 이를 SNS에 올려 자랑한다. 낯선 사람들이 눌러주는 '좋아요'를 존경과 동경의 표시로 받아들이며 그 사랑에 중독된다.
하지만 사랑은 받으면 받을수록 더 많은 것을 갈망하게 만든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동시에 그 사랑이 변질되거나 사라질까 하는 두려움도 커진다. 사랑받는 일에는 늘 이런 불안이 따라다닌다. 결국, 사랑을 받는 사람은 주는 사람의 마음을 통제할 수 없기에 약자의 위치에 놓이기 쉽다.
반면, 사랑을 주는 사람은 더 여유롭다. 사랑을 얼마나, 어떻게 줄지는 전적으로 주는 사람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해관계 없이, 조건 없이 사랑을 퍼붓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들인 노력에 비해 돌아올 보상이 훨씬 적을 것이 분명함에도, 그저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 말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은 그 자체로 거대한 행복의 원천이 된다.
내 지인 중 한 사람은 쉰이 넘은 나이에 처음으로 연예인의 열성 팬이 되었다. 자식뻘인 트로트 가수를 좋아하게 된 그녀는 그를 보기 위해 수십 장의 앨범을 구매하고, 주말마다 그의 스케줄을 체크하며 팬클럽 회원들과 함께 이동한다. 그녀는 가수 ‘님’의 마음보다 자신이 그를 향해 품은 마음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어쩌면 님은 그녀의 존재조차 모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그 차이를 전혀 개의치 않는다. 주는 것에 비해 받는 것이 훨씬 적어도 상관없다.
얼마 전 그녀는 오랫동안 복용하던 우울증 약의 용량을 줄였다. 가족도 해결하지 못한 갱년기 우울증이 그 덕분에 한결 나아진 것이다. 그녀는 요즘 주말을 기다리는 설렘에 평일의 업무도 이전처럼 괴롭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류마티스로 걷기도 힘든 무릎을 부여잡고 주말마다 전국을 돌아다니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했다. 님을 만나러 가던 길에 바라본 하늘의 구름이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날 뻔했다고 한다. 사실, 그 구름은 어제도, 그제도, 일 년 전에도 아름다웠다. 변한 것은 그녀의 마음뿐이다. 그녀의 메마른 마음을 다시 설레게 만든 것은 님이 아니다. 님을 향한 그녀의 사랑이다.
누군가는 말도 못 하는 동식물을 사랑한다. 나는 얼마 전부터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루이라는 포메라니안 종으로, 동생이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데려왔다. 문을 열었을 때 하얀 털복숭이 생명체가 나를 향해 달려오는 모습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처음에는 별로 반갑지 않았다. 원래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녀석과 친해지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함께 지내며, 마음 한구석에 ‘그래도 귀엽긴 하네’라는 애정이 피어났다. 어느 날 새벽, 동생이 집에 오지 않아 칭얼대던 루이를 달래다 문득 내가 이 녀석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혀를 내밀고 잠들지 못해 보채는 모습을 보는데 가슴 한켠이 뜨거워졌다. 마치 사랑 고백을 하듯 무심코 녀석의 귀에 대고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에게 고백하듯. 그 말은 내 의식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루이와 나는 사실 불공평한 관계다. 녀석은 매일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한다. 산책, 밥, 놀이, 간식 등. 반면, 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사실 별로 없다. 기분이 내킬 때 가끔 보여주는 약간의 재롱이 전부다. 그마저도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절대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 이기적인 생명체를 사랑한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는 것 외에는 바라는 것도 없다. 동시에, 이 녀석을 위해서라면 내 소중한 무언가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다. 돈, 시간, 그리고 심지어 신체의 일부까지도.
내가 아는 또 다른 사람은 식물을 끔찍이 사랑한다. 선물로 받은 선인장에서 처음으로 귀여움을 느낀 그는, 그 선인장에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자한다. 도자기로 만든 비싼 화분을 사고, 구하기 힘든 고급 식물 영양제를 구매했다. 매일 차를 마시며 선인장을 바라본다. 그가 바라는 것은 그저 선인장이 곧게 자라는 것뿐이다. 아름답게 꽃을 피워 팔아 돈을 벌겠다거나 하는 야심은 전혀 없다.
동물과 식물은 우리에게 어떤 물질적인 이득을 주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에게 별다른 기대 없이 사랑을 준다. 그들의 행복이 곧 우리의 행복이 된다. 또 어떤 사람은 보이지 않는 존재를 사랑한다.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신’이라고 부른다. 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니면 존재했는지도 모른 채 자신의 인생을 바친다. 그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를 엄격히 통제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신은 직접 응답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인들은 그 사랑에 의심을 품지 않는다. 신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가끔은 시련을 통해 신앙을 시험하기도 한다. 그가 응답하지 않아도, 신을 향한 그들의 사랑은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의 사랑에서 다른 사랑으로 옮겨가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 마음이 결국 우리를 살게 한다. 그러니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한탄하기보다는, 지금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 돌아보자. 만약 아무것도 사랑하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분명히 불행할 것이다. 사랑할 대상이 없다는 푸념은 당신의 오만에 불과하다. 예수님이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