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0,601분의 1의 확률로 바다를 보러 간 날

by Quat

바다가 보고 싶은 날, 바다를 보러 갔던 날이 있었다



문득 하루를 온전히 보내는 게 힘에 부친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바다가 보고 싶어진다. 저 멀리 부는 바람에 실려 파도가 너울대는 바다를 바라보고 싶은 날이 있다. 이런 생각이 드는 날 열에 아홉은 집에 도착하는 순간 밀려드는 고단함을 느끼며 내일을 대비하기 위해 쓰러지듯 침대에 몸을 던진다. 하지만 열에 아홉이라는 말은, 한 번은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때로는 놀라우리만큼 멍청한 선택을 할 때가 있다. 철저하고 계획된 삶을 사는 사람도 아주 가끔은 스스로 놀랄 정도의 충동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열에 한 번, 아니 백에 한 번 정도 될까 말까 한 선택을 했던 날이 나에게도 있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날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아무리 곱씹어 봐도 이유가 기억나질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날 내가 평소라면 전혀 하지 않았을 선택과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영화 '인피니티 워'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는 어벤져스가 타노스를 이길 유일한 확률이 14,000,601분의 1이라고 말했다. 무작정 바다가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버스를 타고 1시간이 넘는 거리를 이동해 밤바다를 보러 간 것도 아마 비슷한 확률일 것이다(적어도 내 인생에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돌이켜봤을 때 '힘든 일이 있었다'라는 이유만으로 피곤함을 무릅쓰고 그 시간에, 그 거리를 달려 바다를 보러 갔다는 건 아직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그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 자체가 '그날 꽤 힘들었나 보네'라고 스스로 짐작하게 만들 뿐이다.



버스를 타고 바다 근처에 있는 정류장에 내렸다. 횡단보도를 건너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검색해 걷고 있는데 어떤 지점부터 코끝에서 바다 냄새가 느껴졌다. 평소에 싫어하던 비릿한 바다 내음조차 그날엔 설렘으로 다가왔다. 바다 내음이 익숙해지자 이젠 귀에서 희미하게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산꼭대기에서 소리를 치면 메아리가 생긴다. 처음엔 아주 강하게 들리던 소리는 점점 약해지다 서서히 사라진다. 호수나 개울에 돌을 던지면, 돌이 빠진 자리를 중심으로 동그란 파장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귓가에 울리는 파도 소리는 메아리나 물의 파장과는 반대로, 처음엔 아주 약했지만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선명하게 들렸다. 메트로놈처럼 정확한 간격을 두고 들리진 않았지만, 오히려 불규칙적인 파도 소리를 듣고 있으니 다음 파도 소리를 기다리는 찰나의 순간이 영겁처럼 길게 느껴졌다.



조금 더 걸어가자 삭막한 콘크리트의 회색빛 너머 너울대는 까만 물결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피곤함이 가득하던 내 몸에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을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검은 비단 같은 파도가 부드럽게 물결치며 수평으로 서서히 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횡단보도의 초록색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뛰어가 모래사장을 건너 바다를 마주 보고 싶은 기분이었다.



차들이 멈춰 서고 횡단보도를 뛰어넘듯 건너서 드디어 바다와 마주한 순간이었다. 무언가 간절히 그리워하던 것을 마주하면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 들리는 소음, 느껴지는 냄새가 오감에서 사라지고 그 대상의 특징만이 오롯이 나에게 담긴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아주 천천히 느껴지고, 평생 그 모습을 바라봐도 좋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움직이게 된다. 그것을 만나기 위해 지금까지 고생했던 모든 수고로움들이 순식간에 기억 저 너머로 사라져버린다. 그렇게 그날 저녁에 나는 바다와 마주했다.



이전에 바다를 보러 온 사람들의 발자국 위에 내 발자국이 포개졌다.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며 드디어 바다 앞에 나란히 설 수 있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파도가 계속해서 밀려왔다. 파도가 밀려드는 위치를 예상하기란 매우 힘들었다. 어떤 때는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세 걸음 정도 떨어진 곳까지만 밀려들었다가, 또 어떤 때는 신발을 삼킬 것처럼 훅 밀려들어와 뒷걸음질 칠 때도 있었다.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서면, 친한 친구가 장난을 치고 모르는 척하는 것처럼 좀 전까지 서 있던 곳의 모래를 품고 아무렇지도 않게 스르륵 물러나기도 했다. 신기한 건 파도가 밀려들었다가 물러날 때마다 내 감정까지 안고 가는 느낌이 들었다. 하루 종일 왜 그렇게 기분이 꿀꿀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차분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편안한 기분이었다.



지금도 하루가 힘든 날엔 그때가 종종 떠오르곤 한다. 물론 그 이후로 바다를 보러 간 적은 꽤 있었다. 하지만 바다를 보러 간 그 어떤 날도 그때 느꼈던 감정을 느낄 순 없었다. 바다를 보러 갔던 매 순간 좋았고 행복했지만, 그때만큼 바다에 '몰입했던' 날은 없었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의 내용 중엔 주인공인 산티아고가 바람으로 변하는 방법을 묻기 위해 해와 바람 등 자연과 마음속으로 대화를 하는 구절이 나온다. 그날 나는 멍하게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고 기억하지만, 바다에 몰입했던 순간 속에서 어쩌면 나도 모르게 산티아고처럼 바다와 소통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바다에게 내 감정을 토로했고, 바다는 그저 말없이 들어줬고 그렇게 위로를 받았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힘들 때마다 사람들이 '바다가 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도 사실은 바다가 보고 싶은 게 아닌, 바다가 우리를 불러서 찾아가는 건 아닐까.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터놓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세상 속에서, 바다에게만큼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라고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각자만의 색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인생의 철학이 있고, 독특한 색을 가지고 있다. 사람마다 각자 가지고 있는 장점들이 있는데, 스스로 생각하는 내 장점은 '물처럼 흘러간다는 것'이다. 누구를 만나도, 어떤 곳에 가더라도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예전엔 이런 특징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휘둘리거나 지나치게 맞추려고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좀 더 내 의견을 말하고, 주관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나라는 사람의 물길을 '바꾸려는' 사람이 아닌, 함께 '흘러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로 했다. 연락하는 사람이 결코 많은 편은 아니지만, 연락을 하며 지내는 사람 모두에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페르소나(가면)가 필요 없어졌다. 내 장점을 더욱 키울 수 있었고, 또 다른 좋은 점은 필요할 때 내 의견을 더욱 쉽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말해야 할 때도 듣기만 했던 과거와는 달리, 들을 땐 듣고 말할 땐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관계에서 나의 궁극적인 바램은 '바다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힘들 때 가만히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혹자는 이렇게 행동하다 보면 이른바 '감정 쓰레기통'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나를 감정 쓰레기통처럼 여기는 사람에게까지 잘해주고 싶지는 않다. 사람을 보는 눈을 기르고, 듣는 것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운다면 이것은 내가 가진 강력한 장점인 것이다.



타고난 자신의 성향을 바꾼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을 대가로 바쳐야 한다. 어떤 성향이든 상황에 따라 좋게 발현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가장 좋지 않은 것은 자신의 성향을 모른 척하거나 거스르며 '애매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 '자기 객관화'에 대해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객관화할 수 없는 사람은 나이를 먹더라도 그저 어린아이일 뿐이다.



내가 요즘 바라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내년도 지금처럼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나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의 가치를 나 또한 알아주는 것이다. 아직은 능력이 부족해 바다 같은 사람이 되기엔 그릇이 작지만, 내 주변의 사람들이 힘들 때 언제든지 찾아와 편하게 머물다 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것이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분들 주변에도 잘 맞춰주는 사람이 있다면 꼭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원래 잘 맞춰주는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이 당신을 그만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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