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퇴근 후에 라면을 끓였다

by Quat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침대에 누워있는 내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천장에 비치는 어슴푸레한 빛이었다. 낮에는 걷고 있으면 살짝 땀이 날 정도로 따뜻해졌지만 아침은 여전히 쌀쌀한데, 오늘은 유난히 공기가 차게 느껴졌다. 코 끝에서 살짝 비릿한 물 냄새가 났다. 무겁지 않지만 덮고 있던 이불을 힘겹게 걷어내고서 침대에서 일어났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화장실로 간 뒤 창문을 열자, 회색빛으로 뒤덮은 하늘이 보였다. 빗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창문 너머 보이는 모든 것이 촉촉해져 있었다. 비가 왔나 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출근은 해야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비 오는 날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몇 년 전만 해도 비 오는 날 일부러 공원에 산책을 나가기도 했었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날에 이어폰을 귀에 꽂고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노래들을 들으며 슬리퍼를 신고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공원까지 걸어가서 1시간 정도 산책을 한 뒤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다. 호아킨 피닉스의 명연기가 일품인 영화 '조커'의 개봉일에도 태풍의 영향으로 비바람이 몰아쳤었다. 엄청난 바람 때문에 우산도 소용이 없었던 그날, 기어코 태풍을 뚫고 영화관에 간 뒤에 평소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비가 오는 걸 멍하니 보고 있었다. 갈 때마다 테이블이 만석인 카페였지만 그날은 손님이 나 혼자뿐이었다. 비에 쫄딱 젖은 생쥐꼴이었지만 카페에 앉아 좀 전에 보고 온 영화를 떠올리면서 창문을 세차게 때리는 빗소리를 듣는 기분은 꽤 괜찮았다.



작년 한 해 여러 가지 힘든 일을 겪으며 조금씩 비 오는 날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비 오는 날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비가 내리는 날엔 유독 기분 좋지 않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었다. 그러면서 차츰 비가 오는 날이 두려워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날은 꼭 혼자였다. 내 인생의 불운이 이 날만을 기다려온 것처럼, 흐르는 비를 타고 좋지 않은 기분이 스멀스멀 나에게 다가오곤 했다. 혼자서도 잘 놀고 시간을 잘 보내는 편이지만 작년엔 비가 오는 날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사실은 그랬다.



평소 주변 지인들에게 먼저 연락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나를 찾는 사람들은 꽤 있었다. 유들유들한 성격과 상대방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점 때문에 힘든 상황에 처한 지인들이 먼저 연락이 오는 편이었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이상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곤 했다. 물론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사람들의 경우엔 이제 얘기를 그만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오죽하면 이렇게 말하겠나 싶어 꾹 참고 얘기를 들어줬다. 길고 긴 통화가 끝나고 '고마워"라는 말을 들으면 좋은 사람이 된 듯한 기분에 뿌듯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하루는 지인들에게 연락을 먼저 해본 적이 있다. 혼자 있다는 게 너무 싫어서.



전화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를 끊었다.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첫 번째 전화를 건 사람과 비슷한 시간에 통화가 끝났다. 또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한 사람은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하고 있다고 했다. 다른 한 사람은 친구들과 만나기로 해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람에겐 전화를 왜 받지 않았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사람들은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도 소중하다고 한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이 메달을 따지 못하더라도 그들이 4년 동안 흘린 땀이 대단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경기 도중 실수를 한 선수들에게 사람들은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며 위로의 말을 건넨다. 하지만 선수들은 어떨까? 물론 메달의 색깔이 모든 것을 결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어떤 선수에게는 위로의 말 백 마디, 천 마디보다 메달 하나가 간절할 수도 있다. 위로는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도, 목에 걸 수도, 액자에 넣어서 그것을 볼 때마다 감격스러워할 수도 없다. 때로는 실재하는 무언가가 더욱 값지게 느껴질 때가 있다. '다음에 한 번 보자'라는 말보다, '어디야?'라는 말이 더욱 와닿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출근할 때 비는 내리지 않았다. 마침 쓰레기를 버리려고 가지고 나오느라 깜박하고 우산을 챙기지 않았는데 말이다. 출근 후 회사에서 점심을 먹은 뒤 휴게실에 있는 커피를 마시며 바깥을 바라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문득 우산을 갖고 오지 않은 사실이 기억났다. '어떻게든 되겠지' 다시 일을 하고 퇴근 시간이 되었다. 밖으로 나오자 바닥은 촉촉하게 젖어있었지만, 비가 오진 않았다. 오랜만에 비가 내린 덕분에 상쾌한 공기가 느껴졌다. 바로 집으로 들어가기가 아쉬워 잠시 산책을 했다. 요즘 유행하는 포켓몬스터 빵이 있나 편의점 두세 군데도 들러보았지만 역시는 역시였다.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자 문득 허기가 느껴졌다. 비도 오는데 따끈한 국물이 먹고 싶어 라면을 먹기로 했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한 뒤에 옷을 갈아입고 본격적으로 라면을 끓일 준비를 시작했다. 가스 밸브를 열고 동그란 냄비에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은 뒤 불을 켰다. 물이 끓는 동안 라면 두 봉지를 꺼내 반으로 쪼개고, 수프와 플레이크는 꺼내서 주방 선반 한쪽에 두었다. 잠시 후 보글보글 물이 끓자 수프와 플레이크를 먼저 넣었다. 예전에 TV에서 본 내용인데, 수프를 먼저 넣으면 끓는점이 올라가 라면을 좀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누군가 말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면을 먼저 넣어도 크게 상관은 없다. 면이 먼저든, 수프가 먼저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결국엔 2가지가 합쳐져야 '맛있는 라면'이 되는 것인데.



물이 약간 부족해 보여서 생수를 2번에 걸쳐 조금씩 더 넣은 뒤에야 라면이 완성되었다. 집들이 선물로 받은 테이블에 신문지와 물티슈를 올리고, 그 위에 냄비를 올렸다. 자리에 앉아 크게 면을 집어 후후 불어 골고루 식혀준 뒤에 입에 가득 넣었다. 살짝 짜긴 했지만 역시 비 오는 날과, 술을 마신 다음 날에 먹는 라면은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욕심을 내서 라면을 2개나 먹었더니 포만감과 함께 노곤함이 밀려왔다. 비가 오긴 했지만 빨래통에 빨래가 반 이상 차있어서 세탁기를 돌린 후, 의자에 앉아 빨래가 다 될 때까지 유튜브 영상들을 보고 있었다. 1시간 정도 뒤에 세탁된 옷들을 꺼내 건조대에 널고 지금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다. 작년엔 그렇게 비가 오는 날이 싫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부모님과 떨어져 독립을 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아졌는데도 그다지 힘들지 않다. 맞지 않는 사람들을 정리하고, 삶의 목표를 정했으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돈을 벌고 있다. 여전히 무엇 하나 뚜렷이 이룬 것은 없다. 하지만 지금 내 곁엔 긍정적이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있고, 이루고 싶은 인생의 꿈이 생겼고, 라면 하나에도 행복을 느끼는 내가 있다. 사실 비가 오는 날에 힘들었다는 건 핑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힘든 상황이 닥쳤을 때 그것을 극복할 자신이 없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생각들을 하다 보니 나 혼자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닐까. 사실 내 인생에서 비가 내렸던 날은 무수히 많았을 텐데 말이다.



인생을 살며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겪는 동안 배운 교훈이 하나 있다면, '미리 걱정해봤자 해결될 일은 없다'는 것.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지도, 아직 불확실한 미래에 떨지 않고 그저 현재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아무리 힘들어도 결국엔 지나갈 것이며,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죽도록 힘든 이 순간도 과거가 되면 '그땐 그랬지'라며 추억하게 된다. 삶의 마지막이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것은 때로는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오늘 힘들더라도 내일은 뜻밖의 행운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게 인생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오늘에 집중하며 살자. 퇴근 후 맛있게 먹은 라면, 친구들과의 즐거운 통화, 시원한 맥주 한 잔 등 각자만의 방식으로 오늘 하루를 잘 마무리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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