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죽일 놈'이 어느새 '괜찮았던 녀석'이 되었다

by Quat



나는 기억력이 썩 좋진 않은 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관심을 가진 것과 관심이 없는 것을 기억하는 차이가 심하다. 그러다 보니 관심이 없는 분야에 대해서는 '기억하고 있는 척' 연기를 한 적도 많다. '분명히 이 말을 저번에 한 것 같은데'라는 어렴풋한 느낌은 있지만, 정확한 내용이 기억나진 않는다. 쓰던 안경을 벗고 주변을 둘러보면 흐릿하게나마 형체가 보이기는 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물건을 가리키며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인 것 같다'라는 정도로만 얘기할 수 있다. 기억날 듯 말 듯 하다는 표현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기억력이 좋다는 건 여러모로 쓸 데가 많다. 공부를 하거나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때도 기억력이 좋으면 더욱 많은 내용을 단기간에 습득할 수 있다. 좋은 기억력은 인간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관심 있는 이성이 툭 던진 말을 기억했다가, 시간이 지나 그 말을 되풀이하며 짚어준다면 전보다 호감도가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뛰어난 기억력은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좋으면 좋았지, 나쁠 일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정말 그뿐일까?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도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이 꽤 많다. 처음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신기한 기분이었다.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을 포함해 다른 사람들을 만났던 적이 있었는데 같은 자리에서, 같은 사람을 만나 대화를 했는데도 그들은 "그때 걔가 그런 말 했었잖아."라고 말을 하면 그에 대한 내 대답은 거의 비슷했다. "그래? 걔가 그런 말을 했었다고?"



처음엔 신기함이 컸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들은 내게 동경의 대상이 되어갔다. 사람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기 마련이지 않은가. 무슨 말을 들었다가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십상인 내게, 그들이 가진 능력은 정말 대단해 보였다. 그들 또한 자신이 기억력이 좋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자랑처럼 말하곤 했다. 분명 그건 대단한 능력이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하루는 기억력이 좋은 사람 중 한 명과 단 둘이서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별다른 일 없이 각자의 일상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중, 상대방이 최근 있었던 일 하나를 들려주었다. 회사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인데 내용은 별 것 아니었다.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볼, 직장상사와 자신 사이에 있었던 사소한 일이었다. 신기했던 건 대화의 내용이 아니라, 그 사람이 말하는 방식이었다.



일주일 전에 있었던 일이었음에도 그 사람은 내게 마치 몇 시간 전에 일어났던 일언 것처럼, 아주 상세하게 자신이 겪었던 일을 설명해줬다. 자신이 그 일을 겪었던 상황부터 시작해, 직장상사가 자신에게 했던 말과 그 말을 할 때 그 사람의 표정과 어투, 그 말을 듣고 자신이 느꼈던 감정까지 말이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집중했던 건 내용 때문이 아니라 그 모든 걸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상대방이 신기해서였다. 그 사람과 대화를 마치고 헤어진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지난주에 내가 겪은 일들을 떠올려 보았다. 대강은 기억나지만 좀 전에 만난 사람처럼 자세하게 기억이 나진 않았다.








많은 것을 기억한다는 건 분명 도움이 된다. 하지만 많은 것들을 기억하는 게 좋다면, 왜 우리는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을까?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에 있었던 재미있었던 추억들을 왜 정확하게 떠올리지 못하는 것인가? 우리는 왜 무언가를 기억하는 동시에, 또 다른 무언가를 잊어버리는 것일까?



예전 한 책에서 '망각'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책에서는 인간에게 '망각'이라는 건, 살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좋은 경험만 할 수는 없다. 다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며, 울기도 하고, 공허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인간의 뇌가 경험하는 모든 것을 기억하기만 하고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사람은 제정신인 채로 살아갈 수 없다고 책에서는 말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로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 누구나 슬픔에 잠긴다. 헤어지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누군가는 최악의 이별을 맛보기도 한다(연인이 바람을 피운다거나). 그런 강렬한 사건은 잊으려 해도 쉽사리 잊히지는 않을 것이다. 너무나 큰 충격 때문에 헤어진 후에도 한참 동안 멍하니 시간만 보낼 수도 있다. 욕을 하고 앞으로 두 번 다시 상종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시간이 흐르면 '그땐 그랬지'라며 과거를 회상하기도 한다. 자신에게 커다란 상처를 준 그 사람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연락하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때 당시엔 이가 부득부득 갈리고 분노로 인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는데 말이다. 이런 생각과 행동이 가능한 이유는 딱 하나, 우리가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결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무언가 좋은 게 있다면, 반대로 어떤 상황에서는 그것이 좋지 않을 때도 있는 것이다. 기억력도 마찬가지다. 많은 것을 기억한다는 건 언뜻 보면 좋기만 할 것 같지만, '많은 것'에 꼭 좋은 것만 포함되리란 보장은 없다. 기억력이 좋기 때문에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까지 기억하면서 살 수도 있는 것이다. 반대로 기억력이 좋지 않다는 건 단점으로만 작용할 것 같아도, 좋지 않은 것들을 빨리 잊어버리기 때문에 정신건강엔 오히려 좋을 수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문제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그래도 기억력이 좋은 게 낫지"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기억력이 좋고 나쁘고의 차이가 아니다. 꼭 무언가가 좋고, 무언가는 좋지 않다는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때로는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도 이것과 관련된 내용을 볼 수 있다. 힘든 상황에서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면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실컷 울고 난 뒤에 오히려 개운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행복'과 '슬픔' 두 가지 감정을 선택할 수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슬픔'이라는 감정이 존재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망각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능력을 강조하는 현대 사회에서, 잊는다는 건 무책임하고 쓸모없어 보인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는 '기억하는 것'보다 '잊어버리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수도 있다. 세상에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어렸을 적의 순수함을 잊고 사는 것처럼, 기억한다는 것은 동시에 잊어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잊어버리는 것에 대해 너무 슬퍼하거나 자책하지 말자. 반대로 잊어버린 공간만큼 새로운 무언가를 기억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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