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하지 않기로 했다

by Quat


요즘 들어 '매사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고 있다. 일, 가족, 사랑, 우정 등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과 관련해 잘해나간다는 게 정말 가능한 것일까. 100가지 중 99가지를 잘해도 1가지를 실수하는 사람과 100가지 중 99가지를 실수해도 1가지만은 잘하는 사람. 아마 그 한 가지가 무엇인지에 따라 나머지를 완벽하게 하더라도 외면당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 하나를 너무나도 잘해 99가지의 실수가 용서되는 사람 또한 있을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굳이 99가지를 잘해야만 할 필요가 있을까. 오늘은 "최선을 다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아무런 이유 없이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다. 모든 것이 순조롭고 평화롭게 흘러가고 있음에도 덜컥 겁이 나는 찰나의 순간이. 분명 아무도 내게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보게 된다던가, 앞으로 걷게 될 미래를 생각하면 현재의 내가 너무나도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기분이 들곤 한다.



소설 '모모'에 등장하는 '회색 신사'들처럼, 어디선가 불쑥 등장한 이러한 생각들은 머릿속을 금세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채워버린다. 이 생각들은 아무리 잊어버리려고 해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뇌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말을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코끼리'를 기억하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코끼리'인 것처럼, 무언가를 '하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되려 또렷이 기억나는 것이다.



이럴 때 내가 자주 사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몸이 편하면 잡생각이 많아진다"는 말이 있다. 이것을 반대로 해석하면, "잡생각을 없애려면 몸이 힘들면 된다"로 바꾸어 볼 수 있다. 운동을 하든, 청소를 하든, 설거지를 하든, 음악을 들으며 산책을 하든 자리에서 일어나 무언가를 하다 보면 금세 평소와 같은 상태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올해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런 생각이 든 날이 전보다는 더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에 대해 깊게 파고 들어가 보기로 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활동적인 성격은 아니었다. 친구들과 만나는 것보다 집에 있는 걸 좋아하고, 나가서 뛰어노는 것보다는 방에서 책을 읽는 걸 좋아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 간의 관계에 적응을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결코 나서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선생님 또는 친구들이 무언가를 부탁하면 할 수 있는 데까진 그것을 해주곤 했다. 하기 좋든 싫든, 어쨌든 내게 주어진 역할에 대해서는 끝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편이었다.



이것과 관련해 떠오르는 어렸을 적 기억 하나가 있다. 초등학생이던 시절, 반에서 소풍을 갔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날은 나를 포함한 다른 친구 몇몇이 청소 당번이었고, 함께 식사를 하고 나서 남은 쓰레기들을 정리하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나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들 급하게 우비를 입은 채로 비를 피했지만, 뒷정리는 해야 했기에 선생님과 나를 포함한 다른 청소 당번들은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비가 많이 내리는 것뿐만 아니라 식사를 했던 자리와 쓰레기를 버리는 곳까지 거리도 멀었기에, 육체적으로도 꽤나 힘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지만 나는 청소당번이었으니까 당연히 '쓰레기를 모두 치워야 쉴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날씨 탓에 기온이 떨어져 온 몸이 오들오들 떨리는데도 쓰레기를 버리러 왔다 갔다 움직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몇 번을 움직였을까. 누군가 내 손을 덥석 잡길래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쓰고 있던 안경에 빗물이 송골송골 맺힌 탓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 사람은 바로 나의 담임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나를 보며 비가 많이 오니 얼른 들어가자고 말하셨고, 나는 아직 쓰레기를 다 치우지 못했으니 마저 치워야 한다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결국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끌려가다시피 안으로 들어갔고, 시간이 지나 어머니가 선생님과 면담을 했을 때 그 일을 말씀하시며 칭찬을 하셨다는 말씀을 전해주셨다.






지금도 나는 귀찮은 것을 아주, 매우 싫어한다. 하지만 내가 받아들이거나, 또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라도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되면 그것을 제 시간 안에 완수해야 마음이 편해진다. 시간을 너무 딱 맞춰서 끝내도 마음이 불편하기에 조금은 여유 있게 마무리 짓는 것을 훨씬 선호한다. 오죽하면 한 지인이 내게 썼던 편지엔 '뭐든지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서두에 있었다.



귀찮은 것을 그리 싫어하면서도 막상 어떤 일이 맡겨지면 정말 열심히 무언가를 하곤 했다. 특히 그 일로 인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땐, 그런 성향이 더욱 두드러졌다. '피해'라는 단어를 쓰는 게 우스울 정도로 정말 소소한 것일 경우에도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예나 지금이나 남들에게 피해 주는 걸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책임'을 지는 상황 자체를 회피하고 두려워했다는 생각이 든다. 귀찮은 상황 자체를 싫어한다는 걸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알고 있기에, 내가 그것을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혹여나 피해가 가진 않을까라는 걱정이 들어서였다고 본다. 그렇지만 막상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면, '피해주기 싫은 마음'의 크기가 '귀찮음'보다 커지면서 정말 열심히 그것을 해왔던 것 같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 자체는 귀찮은 것을 너무나 싫어하기에 본능을 억누르면서 그것을 하다 보니, 막상 일이 끝나면 멍하게 지쳐있는 상태 또한 자주 있었다.






가만히 떠올려보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게 이런 경우들은 점점 잦아지고 있었다. '책임감'은 있지만 '책임져야 하는 상황'을 싫어하는데,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책임을 져야만 하는 상황'이 점점 더 많아졌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 또한 누군가에게 부탁이나 무언가를 요구하는 말과 행동을, 웬만큼 친하지 않으면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도 2가지 이상을 한 번에 하지 않는다. 그것에 뒤따르는 '책임'이라는 게 나에게 있어 얼마나 무겁고 큰 지를, 이제는 잘 알기 때문이다. 또한 소요되는 에너지가 크다는 것도 알고 있어서, 무언가를 하고 나면 반드시 일정 시간의 휴식을 갖는다. 이 때는 웬만큼 친한 사람들과의 약속도 잡지 않는 편이다. 제대로 충전이 되지 않았을 때 섣불리 움직였을 때 오는 부작용이 어떤지,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적당히 열심히 하기." 인간관계든, 일이든 모든 면에서 나는 이 말을 적용하려고 하는 중이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것, 친한 사람일수록 예외는 있다. 하지만 모든 일,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를 깨닫게 된 이후부터, 나는 한 가지를 결정했다. '최선을 다해도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기로 말이다. 최선을 다해도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좋은 사람들, 좋은 것에만 에너지를 쓰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느낀 사람은 알 것이다. 당신 또한 당신의 최선에 응하는 사람, 결과가 나오는 것에 최선을 다하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