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서 가끔 이런 장면을 봤던 기억이 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며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던 주인공이 어른이 된 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상대방의 부모님을 만나러 간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던 중, 연인의 부모님은 주인공이 어렸을 적 부모에게서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결혼을 반대한다. 그들은 자신의 딸(아들)에게 '그 사람이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사랑을 줄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정말로 그런 걸까. 오늘은 "사랑받지 못한 사람도 사랑할 수 있을까"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뉴스나 유튜브를 보다 보면, 평소 상상도 하지 못할 끔찍한 범죄와 관련된 영상들을 접할 때가 있다. 헤어졌다는 이유로 상대의 집에 찾아가 흉기를 휘두르거나,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 묻지마 폭행이나 살인 등등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범죄들이 점점 늘어만 가는 듯하다.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범인들 중 대부분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경우가 많다고 한다. 부모의 도를 넘는 가정폭력이나, 매우 가난했던 집안환경, 친척 또는 이웃의 지속적인 성폭력 등으로 인해 그들의 성향이 비뚤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겪는 경험들은 자신의 가치관 정립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매일 부모님이 싸우고 다투는 모습을 보며 자라온 아이가, 결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할 확률이 얼마나 낮을지 생각해 보라. 한 끼 식사조차 제대로 해결하기 어려울 정도로 궁핍한 환경에서 자랐다면, 어른이 되고 안정된 경제력을 갖추게 되더라도 절약하는 습관들이 자신도 모르게 나올 것이다. 이렇듯 어렸을 때 겪은 특정한 기억들은, 어른이 되어 의식 속에서는 잊혔을지라도 무의식 속에 여전히 남아 어떤 순간이 닥쳤을 때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나곤 한다.
하지만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겪었다고 해서, 모두가 범죄자의 길을 걷진 않는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더욱 올바르게 살며 타인을 향해 따뜻한 손길을 건네는 사람들 또한 아주 많다.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해 이름을 알린 사람들 중에서, 자신이 쓴 책 또는 방송에 출연해 그러한 경험을 스스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제는 괜찮다고 말하는 그들. 그렇게 괜찮아지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없이 인고의 시간들을 보냈을 그들을 상상하면, 대단하다는 생각밖엔 떠오르지 않는다.
무엇이 이들을 다르게 만드는 것일까. 똑같이 지우고 싶은 과거를 갖고 있음에도 누군가는 폭력적인 성향이 두르러지는 반면, 또 다른 이들은 그것을 극복해 낸다. 나는 이 차이에 대해 각자 타고난 성향이나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앞서 말한 것들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인생의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다면 우리가 하고 있는 노력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 중에서도 그 시기를 잘 극복한 사람들에겐 무엇이 존재했던 것일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그들이 만나왔던 사람"이라 말하고 싶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인생에서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 찾아오곤 한다. 그 순간을 극복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정적으로 그것을 극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누군가의 존재'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부모, 형제자매, 사랑하는 연인, 가장 가까운 친구. 때로는 처음 본 사람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배려 덕분에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그러한 사람들이 곁에 있더라도 그것을 이겨낼 용기와 의지가 없다면 소용이 없겠지만 말이다. 힘든 순간을 이겨내기 위해선 전적으로 스스로의 의지와 행동이 필수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을 해야 할 이유도 모른 채 너무나 지치고 힘들어 무기력하게 살아갈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살아야만 하는지'에 대한 동기부여를 줄 수 있는 사람의 존재 유무는 너무나도 중요하다.
지금으로부터 몇 달 전, 지하철 역에서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한 남자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허공에 손을 휘두르는 그의 곁엔, 경찰 2명이 서서 혹시나 그가 지나가는 행인들을 위협할까 감시하며 그의 행동을 제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남자가 천천히 그에게 걸어가더니, 경찰에게 괜찮다는 제스처를 보이곤 그를 살며시 안고는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좀 전까지 팔을 휘두르며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던 남자가, 몸에 힘을 빼더니 조금씩 흐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역 안에서 누구보다 위험해 보이던 그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해있었다. 그가 순식간에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 '사랑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무언가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그것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해보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을 평생 할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누군가가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사랑받을 수 없고 그 사람 또한 사랑을 줄 수 없다고 말하는 건 지나친 편견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좀 더 많이 경험하고 누릴 수 있는 시기가 있다는 것엔 동의한다. 그러나 그 시기에 그것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평생 그것을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물론 그 시기를 놓친다면 다음번엔 그것을 하기 위해 조금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겠지만 불가능하다곤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어렸을 적 사랑받지 못한 기억이 있다면 조금은 서투를 수 있다. 나이에 비해 미성숙한 모습이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큰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사랑 또한 여러 번의 실수를 통해 경험을 쌓으며 배우는 것이다. 자신 주변에 좋은 사람이 찾아왔을 때 그 사람과 잘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한 사람이 자신 곁에 머무른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는 마음가짐. 나에겐 없는, 그 사람의 좋은 점들을 배우며 전과는 달라지기 위해 행동하는 것. 그러한 사실이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있는 것'이, 자신이 '제대로 된 사랑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의미는 아니다. 운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정확한 자세를 취하지 않고 무작정 무거운 무게를 들기만 한다고 멋진 몸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운동에 맞는 자세, 호흡, 현재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중량 등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운동을 해야지만 효과적인 운동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무작정 운동만 한다면 부상당할 위험만 높아질 뿐이다.
자신이 원하는 사랑이 자기 자신과 상대 모두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랑인가.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애정을 쏟아붓는 것. 호감이 있음에도 단지 두려워 시작조차 하지 않은 채 포기하는 것. 자신의 감정만을 생각하는 것과, 하기도 전에 겁부터 먹는 것 모두 좋은 선택이라 보기엔 힘들다. 당신은 현재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가. 또 어떤 사랑을 원하고 있는가. 당신이 원하는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 당신 또한 그러한 사랑을 상대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