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누구나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상황에 처한 순간, 우리는 속으로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자기 확신의 주문을 되뇌곤 한다. 대다수의 성공한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또는 잠들기 전에 이러한 자기 확신이 담긴 말을 자신에게 했으며, 이 행동이 자신의 성공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강한 자기 확신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재밌는 건, 그러한 사람들 모두가 성공했거나 평판이 좋은 건 아니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잘 될 거라는 믿음, 스스로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 이 2가지를 갖고 있음에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건 왜일까. 오늘은 "올바른 근거가 있는 자기 확신의 중요성"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무섭고 떨리는 순간들이 있다. 자신의 큰 실수를 직장 상사에게 보고해야 하거나, 남몰래 숨겨왔던 치부를 들켰거나, 확신을 갖고 시작한 무언가가 크나큰 실패로 이어지는 순간들. 자신의 실패를 예상한 채 시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 본인의 실수, 운, 급변한 주변 상황 등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순간이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우리는 특정한 상황에 처하거나 누군가를 대할 때 '이럴 땐 이렇게 해야 해'라는 자신만의 확신을 갖게 된다. 물론 사람마다 '이렇든 저렇든 크게 상관없어'라고 생각하는 범위는 다르지만, 과거에 자신이 겪었던 일을 바탕으로 조금 더 자신만의 색이 강해진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나는 어느 정도의 자기 확신과 믿음은, 현대 사회에서 성인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스스로도 자신의 말에 확신이 없는데 누가 그 사람의 말을 믿어준단 말인가! 조금은 고집스러워 보여도, 흔들리지 않는 소신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 닥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힘들 때 타인에게 의지하기보다,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누가 옆에 있든 없든, 그것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믿음을 속에 품은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스스로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가지는 건 중요하지만 그러한 확신이 모두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자신이 겪은 아주 특별한 사건을 마치 대부분의 사람이 겪는 것인 양 일반화시켜 해석하기도 한다.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의외로 아주 많다.
우리는 때때로 스스로 믿고 있는 것에 대해 '왜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되돌아볼 시간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올바른 근거가 없이, 뒤틀린 자기 확신과 믿음은 결정적인 순간에 당신을 배신하기 때문이다. 올바른 근거가 없는 자기 확신은 평소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우리가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그러한 신념들은 평소 당신이 보여주던 신뢰를 무참히 짓밟고서는 홀연히 떠나버린다.
20대 시절, 상담 일을 할 때였다.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그 과정에서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내게 몹시 고마워하는 사람들을 보며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말을 듣고 공감해 주는 건 정말 보람찬 일이구나' 그때부터 나는 주변 사람들 중 힘든 일을 겪었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에게 하루 중 꽤 많은 시간을 할애했었다.
분명 그러한 행동들이 보람차고 기쁜 일이란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길고 긴 시간 동안 그들의 고민과 이런저런 푸념들을 들으며 공감해 주는 게 쉽진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나고 처음 만났을 때보다 한결 편해진 표정과 신난 목소리를 보는 건 내게도 즐거운 일이었다. 힘든 상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스스로 대견하다는 기분도 들었다.
그 당시 내가 했던 가장 큰 착각은 내가 그들을 대하는 마음처럼, 그들 또한 비슷한 마음으로 나를 대할 것이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열심히 얘기를 들어주었던 사람들 중 몇몇은, 힘들 때만 나를 찾곤 했다. 몇 시간 동안의 대화 이후 그들은 홀연히 사라졌고, 그들의 평범하고 행복한 일상 속에 나는 없었다. 또한 내가 해야 할 것들을 미루면서까지 주변 사람들을 챙기다 보니, 정작 내 일상 중에서 '나를 위한 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타인을 챙길 만큼 스스로 안정적인 상황이 아님에도, 나는 나보다 남을 더 챙기며 살고 있었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런 일들이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일어나자, 그제야 내가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믿음을 조금 수정하기로 결심했다. '사람들의 말을 듣고 공감해 주는 건 정말 보람찬 일이구나. 하지만 적어도 내 삶에서 1순위는 나여야만 해. 내가 해야 할 것을 미루면서까지 남을 챙기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만약 내 할 일을 하지 않으면서까지 챙길 사람이라면, 적어도 그 사람 또한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 주었으면 해. 내가 가진 '무언가'를 원해 다가오는 게 아닌, '나'를 먼저 생각해 주는 그런 사람.'
이렇게 생각을 바꾼 이후로, 삶은 더욱 행복해졌다. 내가 가진 특정한 능력이 필요해서 다가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전보다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전보다 알던 사람은 줄어들었지만,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는 가식적인 관계가 아닌 진정한 주고받음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이것 말고도 좋은 점들은 더 있다. 일단 내가 해야 할 것을 먼저 마무리한 뒤에 주변 사람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언가를 하더라도 전과 비교해 책임감과 끈기가 더욱 생겨났다. 좋은 성과가 하나둘씩 생겨났고, 그러한 성취감을 느끼자 또 다른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도 쉬워졌다. 보여주기식 또는 남들과의 비교로 인해 불안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성장'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누군가의 푸념을 듣더라도 무조건적인 공감은 자제하기로 했다. 그 사람과 나, 모두를 위해 말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당장의 서운함을 마주하는 게 두려워 거짓으로 상대를 대하고 싶진 않았다. 대신 상대의 상황에 따라 그것을 최대한 좋게 말해주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자 나 또한 한결 편하고 솔직하게 사람을 대할 수 있게 되었고, 상대방 또한 그런 말들이 서운할지언정 진심으로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걸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지만,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잘못된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골프공을 치기 위해 야구배트를 사용한다거나, 햇살에 눈이 부셔 선글라스를 착용했지만 너무 어두컴컴한 탓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등 말이다.
지금 당신이 '옳다고 믿고 있는 것들' 중에서도 이러한 것들이 있을지 모른다. 인간관계를 잘하고 싶지만 당신의 신념 중 어떤 것 때문에, 당신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조차 떠나가버릴 수도 있다. 연애를 잘하고 싶지만 역시나 당신의 가치관 중 무언가로 인해, 매번 빨리 끝나버리는 연애를 반복하고 있다면 어떨까. 당신의 신념이 삶에 잘 적용되고 있고 정말로 올바르다면, '내 인생은 왜 이럴까'라는 생각은 들지 않을 거란 걸 기억하라.
과거엔 잘 풀렸을지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현재 내 상황엔 그러한 믿음이 적용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틈틈이 자신이 믿고 있는 가치관들을 재점검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현재 내가 처한 상황, 현재 내 곁에 있는 사람, 현재 내가 바라고 있는 것들.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보다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게 더욱 힘들다는 말처럼, 자기만의 신념을 가지는 것보다 그러한 신념이 정말로 올바른지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