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꿈꾸는 일상 속 모습들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시간과 돈에 구애받지 않고 가보고 싶었던 나라로 떠나고 싶을 것이다. 꾸미는 걸 좋아한다면 평소 선호하는 브랜드의 의류나 악세서리, 신발 등을 마음껏 산다거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한번쯤 먹어보고 싶던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과 즐기는 로망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이러한 꿈들에 도달하기 전 좌절하거나 포기하게 된다. 흥미로운 건 앞서 언급한 것들처럼 큰 돈이 들거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데도, '원하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들'이 의외로 꽤 많다는 사실이다. 오늘은 "바라던 것을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최근 한 지인과 대화를 나누던 중 과거 자신의 연애에 대한 주제가 나왔다. 각자의 연애에 대해 말하던 중, 지인은 과거 사귀었던 사람들이 썩 괜찮은 사람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쓰레기들만 만났나 몰라요." 나는 대답했다. "만나기 전엔 그 사람이 쓰레기인지 몰랐으니까 그렇지 않을까요?" 내 말에 지인은 맞장구를 치며 웃었다. "그러니까요. 근데 그런 낌새가 사귀기 전에도 조금 있긴 했어." 그러면서 지인은 말을 덧붙였다. "그땐 내가 어리긴 어렸나봐요. 쓰레기인걸 알면서도 좋아한다는 내 감정이 중요했거든. 근데 요즘은 나 좋다는 사람이 좋아요." 지인의 말이 끝나자 내가 장난스레 덧붙였다. "음, 나이가 먹어서 그런거겠죠?" 한바탕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사람마다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어떤 것에 호감을 가지는 기준은 다르다. 하지만 그것이 꼭 자신에게 이롭게 작용한다고는 볼 수 없다. 자신의 상태에 따라, 또는 상대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가에 따라 우리는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받아들이곤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이다. 아주 별로였던 경험은 그 다음 비슷한 무언가를 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 기준이 되버리곤 한다. 그리고 새롭게 시도를 하는 경험이 썩 좋지 않더라도, "그래도 전보다는 낫지"라며 좋게 해석을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아주 힘든 연애를 한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그는 전에 만난 연인으로부터 아주 큰 상처를 받은 상태이다. 시간이 흘러 그는 오랜만에 호감이 생긴 사람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상대와 만나서 얘기를 하면 할수록, 무언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 때가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그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머릿속으로 생각한다. '그래봤자 전에 만났던 걔보단 이 사람이 훨씬 낫겠지' 그렇게 그는 연애를 시작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전과 비슷한 이유로 또다시 그 사람과 헤어지게 된다.
앞서 설명한 예시는 내가 '상대적인 기준'보다 '절대적인 기준'이 중요하다고 믿는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다. '얘보단 그래도 쟤가 낫지'가 아니라 '이런 건 좋고, 이런 건 별로라고 생각해'라는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이 있으면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크게 휘둘릴 일이 없게 된다.
상대적인 기준을 갖고 살아갈 때 우리가 마주하는 위험은, '자신에게 해로운 사람과 상황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분명 무언가를 하면서 또는 어떤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전혀 즐겁지 않거나 시간과 돈만 축내는 듯한데도, "그래도 전에 했던 것보단 지금이 낫지"라거나 "그런 사람보다는 그래도 얘가 사람이 괜찮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과거와 현재 모두 멈추거나 끊어내야 하는데도, 최악의 상황에 기준을 두고 살아가니 무엇을 해도 그때보단 괜찮게 느껴지게 된다.
나는 이러한 마음가짐을 '해로운 긍정'이라고 생각한다. 해로운 긍정을 하면 할수록, 순간의 마음만 편해질 뿐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삶의 질이 서서히 떨어지게 된다. 안타까운 점은 해로운 긍정을 반복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과거 아주 힘들고 괴로웠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곁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끼지만, 현재 그들 곁에 있는 사람들 또한 상처를 줬던 이들보다 조금 더 나을 뿐 별반 다르지 않은 부류의 사람들이라는 게 특징이다.
이것을 조금 더 쉽게 풀어서 설명하자면, 당신이 과거 '이성을 지나치게 밝히고 거짓말을 자주 하는 사람'과 아주 친하게 지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다 그 사람에게 큰 상처를 여러 번 받고 그와 관계를 끊은 뒤, 이번엔 '거짓말을 자주 하는 사람'과 친해지게 되었다.
전이나 지금이나, 둘 다 끊어내야 하는 사람인 건 분명하다. 그러나 해로운 긍정을 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예전에 그 친구는 거짓말도 자주 하고 너무 이성한테 들이댔지. 그래도 지금 이 친구는 거짓말만 자주하니까 그나마 나은 편이야." 이런 사고에 한번 빠지면 그 어떤 악질적인 사람도 좋은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과연 그러한 생각이 정말로 좋은 것일까?
누구나 좋은 사람과 행복하게 연애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최악의 경험에 기준을 두고 '그것보다는 낫겠지'라는 해로운 긍정으로 인해, 그것을 간절히 원하면서도 하지 못하게 된다. 어디 사람뿐이겠는가. 하고 싶은 것이 있음에도 그것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이정도면 됐지'라는 마음을 먹으면, 목표를 이루는 건 아주 힘들어진다. 즉,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선 무조건적인 긍정보다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모든 불행은 비교에서 온다는 말이 있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분명 좋은 태도이다. 하지만 그것 또한 비교에서 비롯된다면, 결코 좋다고 보긴 힘들다.
현재 당신의 곁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 또한 분명 여러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을 만날 때마다 이유없이 피곤함을 느끼거나, 왠지 모를 불편함이 자꾸 생긴다면 한번 깊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거듭 말하지만 장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무엇을 지속하거나 누군가와 관계를 유지함에 있어 중요한 건 그것을 함으로써 당신의 에너지가 소모되는지, 오히려 충전되는지이다.
모든 긍정이 꼭 좋다고 볼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사람이, 또다른 사람에겐 그렇지 않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건 무조건적인 긍정이 아닌, 상황에 맞는 긍정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