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걸까, '사랑해야 한다고' 믿는 걸까

by Quat


세상에서 가장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존재가 있다면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나 자신'이라는 대답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나'를' 사랑하는 것과 나'만' 사랑하는 것의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늘은 "나를 사랑하는 것에 대한 진정한 의미"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30대가 된 이후, 나뿐만 아니라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가장 관심 있어하는 주제라고 한다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가 아닐까 싶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며, 어떤 것에 관심이 있고, 어떤 사람과 만나고 싶어 하며, 무엇을 하는 걸 즐기는가. 20대 때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생각을 하는 빈도나 깊이 등에서 전과는 차이가 확연히 난다고 느낀다.



종종 이런 주제에 대해 대화를 할 때, 개인주의자임을 자청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주변 사람들을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내가 관심 있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들. 나 또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 또한 좋아하는 편이기에, 그런 부분에서는 공감하는 편이다.






다만, 그들 중 일부는 지나치게 '자기 자신'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도 했다. 나 또한 스스로 옳다고 믿는 부분에 대해선 쉽게 양보하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내가 옳다고 믿는 신념과 가치관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기에 곁에 있는 누군가와 무엇을 함께 해야 할 때, 상대가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을 때 적절한 타협점을 찾기 위해 충분한 대화를 나누려고 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인 성향인 사람들의 경우엔, 어느 정도의 타협이 필요한 상황에서 타협 그 자체를 거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상대와의 대화가 아니라 일종의 '통보'를 한 뒤에, 미리 알려주었으니 괜찮지 않냐며 스스로를 합리화하려 하기도 한다. 그러한 자신의 모습에 상대가 서운해하거나 화를 내면 사과는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마치 자기가 해야 할 일은 끝났다는 듯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며 상대는 사과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짙은 서운함을 느끼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과거에 비해 눈부신 발전을 했음에도 아직 인간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감성'이라고 생각한다. 문제 상황에서 최고의 해결책을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해 단 몇 초만에 제시할 수 있지만, 기계는 그것으로 끝이다. 사람은 그렇지 않다. 특히 인간관계에선 가끔은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가장 최악의 방법을 사용했을 때, 오히려 상황이 훨씬 잘 풀리기도 한다. 모든 경우에 적용될 순 없지만 때로 분노로 가득 찬 사람을 진정시키기 위해 폭력이나 진압이 아닌, 따뜻한 포옹이 답이 될 때도 있다.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인 사람들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순간은 "자신과 타인의 가치관이 충돌할 때"이다. 이들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너무나 강해, 이런 순간에서 '타협의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머릿속으로 '다를 수 있다'라는 생각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분노하게 된다. 앞서 말한 부류의 사람을 상대하는 사람이 느끼는 분노가 바로 그것이다. 존중을 받는다는 건 꼭 자신이 원하는 결과로 나타나야만 느끼는 게 아니다. 상대가 자신의 의견을 얼마나 경청하고, 그러한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충분히 노력했다면 비록 원했던 결과가 아니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공부를 하고 있던 당신에게 심부름을 시켰다고 해보자. 집중하고 있던 당신은 어머니에게 심부름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만약 여기서 어머니가 당신에게 "갔다 오라면 조용히 갈 것이지, 뭔 말대꾸야! 얼른 다녀와!"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은가. 심부름은 가지만 분명히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닐 것이다. 이번엔 반대로 어머니가 "엄마가 갈 수도 있는데 그 사이에 음식이 탈까 봐 걱정돼서 그래. 공부하는 중에 방해해서 미안하지만 잠깐 부탁 좀 해도 될까?"라고 한다면 어떨까. 대부분 흔쾌히 어머니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다.



'심부름을 한다'는 결과는 같다. 하지만 전자와 후자가 느끼는 감정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왜일까? 바로 부탁을 하는 어머니가 '당신을 충분히 존중해 주었기' 때문이다. 현재 자신이 그것을 할 수 없는 합당한 이유, 부탁을 하는 상대방의 상황과 감정에 대한 정확한 파악. 전자의 어머니는 자신의 기준과 감정만을 중요하게 생각한 반면, 후자의 어머니는 자신과 상대의 상황을 모두 고려했다. 말로만 상대를 배려하는 것과 진심으로 상대를 배려한다는 것 또한 다르지 않다. 표현과 행동은 생각에 근거하여 나오기에, 전자와 후자의 어머니가 평소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를 예측해 볼 수 있다.






'내가 편하면 그만이지', '굳이 남들한테 맞출 필요 있나'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무언가가 틀리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옳은 것 또한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지금까지 본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했던 사람들이 가장 싫어했던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과 똑같은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쟤는 항상 자기밖에 모르더라" "자기 말만 다 맞다는 식으로 행동하니까 무슨 말을 못 하겠어" 종종 내게 불만을 토로하는 그들을 보며, 머릿속엔 단 4글자만이 떠올랐다. '동족혐오'.



아무리 개인주의적인 성향이라고 한들, 이 세상을 혼자서 살아갈 순 없다. 기술의 발전으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아도 충분히 생활은 가능하지만, 그것이 '타인이 필요 없다는 걸' 보여주진 않는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살 때를 떠올려보라. 당장 눈앞에 사람이 없을 뿐이지, 내가 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건 이름 모를 수많은 타인의 도움으로 가능한 것이다. 만약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인터넷망이 없다면, 그 물건을 생산하고 유통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는 건, 착각에 불과하다.






'나'는 소중하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나'말고 다른 사람들도 하고 있다는 걸 기억하라. 당신이 스스로에게 쏟는 애정과 관심을, 타인 또한 마찬가지로 쏟고 있다. 서로가 자신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어떻게 제대로 된 대화를 하고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겠는가!



만약 당신이 정말로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고,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스스로에 대한 사랑을 조금은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지금 당신이 당신에게 쏟고 있는 관심이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강박' 때문이거나,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자 쏟는 '지나친 애정'은 아니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라. 상대의 요구에 대한 일말의 고민조차 없이, 그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관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무시한 건 아니었는지 말이다.



'존중받고 싶다면 먼저 그렇게 상대를 대해주어라'라는 옛 격언처럼, 자신에게 쏟는 관심을 상대에게도 나눠줄 줄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나다움'은 진정한 '나다운 것'이라 보긴 힘들다. 지금껏 옳다고 믿고 살아왔을지라도 상대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기준을 어느 정도 굽힐 줄 아는 것. '대화가 중요하지'라고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말하지 않아도 실천할 줄 아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나 자신을 무작정 사랑해 주기보단, '정말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종종 해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갖춰야 할 태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