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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Apr 26. 2022

인디언 텐트가 있는 미용실의 단골이 되었다


한 달 전 했던 파마가 많이 풀려 지저분해졌다. 여행을 가기 전에 한 번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퇴근을 하고 나서 미용실에 다녀오기로 했다.








요즘 내가 가는 미용실은 대학교 인근 골목에 위치한 곳이다. 길을 걷다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외관이 으리으리하지도 않고, 인테리어가 화려하지도 않다. 스마트폰으로 새로운 미용실을 찾다가 알게 된 이곳은, 주변에 있는 다른 곳들에 비해 리뷰가 많진 않았다. 대신 몇 개 없는 리뷰들에서 이미 다녀간 손님들이 정말 만족하고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들 중에서 수많은 '좋아요'와 '긍정적인 리뷰'에 솔깃해서 갔다가 실망한 적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 미용실에 더 마음이 끌렸다. 반신반의하며 처음 간 후로 오늘이 벌써 세 번째 방문이다.



 





처음 이곳에 방문했을 때 가장 신기하다고 느꼈던 건, 미용실 중앙에 커다란 인디언 텐트가 설치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입구에선 안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미용실에 웬 텐트?'라는 의문이 가장 먼저 들었다. 안쪽에서 커트를 하고 있던 여자 미용사 분께서 손을 멈추시곤 나에게 다가와 예약하셨냐고 물어보셨다. 첫 방문이라는 내 대답에, 잠시만 의자에 앉아서 기다려달라는 말씀을 해주시고는 마무리를 하러 다시 원래 자리로 걸어가셨다.




텐트 옆면에 대기용 의자가 있어서 앉아있는 동안, 자연스럽게 시선은 텐트로 향했다. 미용실 내부의 4/1 정도는 거뜬히 차지할 크기의 텐트가 왜 있는지 궁금증이 점점 더 커지던 중, 텐트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앳된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그러자 커트를 하고 있던 미용사 분이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응." 의문은 금세 풀렸다.




잠시 후 키가 큰 남성 분이 미용실 안으로 들어오시더니 텐트 안으로 허리를 숙여 들어가셨다. 도란도란 아이와 대화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아이의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목소리에선 다소 무뚝뚝하지만 최대한 딸에게 다정하게 말하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옷에 전혀 관심이 없는 누군가가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의 옷장을 보며 쓸데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처럼, 아버지도 딸이 말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나 "맞아"라고 여러 번 대답하는 소리가 텐트 안에서 들려왔다.




그러던 중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걸어가자 텐트 정면이 보였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힐끗 안을 쳐다보았다.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귀여운 여자아이와 신발을 신은 채로 텐트 입구 쪽에 앉아 비스듬히 상반신을 기울여 딸과 대화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커트를 하는 동안 엄마를 찾는 소리가 두어 번 들렸지만, 아버지의 노력 덕분인지 잘 넘어가는 듯했다. 나 또한 미용사 분과 대화하면서 이전엔 몰랐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나와 잘 어울리는 머리스타일, 피해야 하는 커트 방식, 머리카락 및 두피 관리 등 궁금한 것들을 묻고 들을 수 있었다. 커트가 끝난 모습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올해 새롭게 방문한 첫 미용실은, 지금까지 가본 어떤 곳보다도 기분 좋게 나올 수 있었다.



 




두 번째로 미용실을 방문했을 땐 파마를 했다. 여전히 텐트가 있었고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통 다른 곳에서 파마를 하면 최소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시간이 걸렸는데, 이곳에선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결과 또한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 날은 아이가 '이모'라고 부르는 분이 나보다 먼저 도착해 머릿결 관리를 받고 계셨다. 내가 파마를 할 동안 관리가 끝이 난 '이모'가 텐트 안으로 들어가 아이와 놀아주는데, 계산을 하고 나서 나갈 때까지 깔깔거리며 웃는 아이의 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오늘 미용실에 도착했을 땐 부모님 모두 손님을 받고 있었다. 내가 본 아이는 텐트 안에 앉아 아이패드와 같은 전자기기로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를 보고 있었다. 양갈래로 동그랗게 땋은 귀여운 모습과 달리, 뚫어지게 화면을 보는 집중력이 대단했다. 전날 비가 내려 흐린 날씨 탓인지 살짝 졸기도 했지만, 무사히 커트를 마쳤다.



 





오늘로 세 번째 미용실을 방문하는 동안, 나는 부모가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혼내는 걸 본 적이 없다. 아이도 가끔 징징거리긴 해도 지나치게 그러진 않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잠깐씩 틈이 날 때마다 부모 중 한쪽이 아이에게 다가가 잘 놀고 있는지, 별다른 문제는 없는지 세심하게 살피는 모습이었다.




일터에 아이를 데려온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분들은 자신들의 일뿐만 아니라, 아이에게까지 최대한 배려를 해주고 있었다. 아이가 심심하지 않도록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틈날 때마다 아이를 살피고, 아이가 부르면 즉시 대답해주곤 했다. 내가 저 아이의 부모였다면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자식에게 부모로서 저 정도의 책임감을 가지고 사랑을 줄 수 있을까?








돈이 많을수록 물질적인 풍요도 커진다. 많은 것을 가질수록 우리는 행복해진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경제적인 부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평소 갖고 싶었던 것들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언젠간 한계에 부딪힌다.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라. 어린 시절엔 만 원만 있어도 내가 갖고 싶은 것들을 다 가질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백만 원이 있어도 생활비와 카드값 등을 내고 나면 금세 얼마 남지 않는다. 정서적 안정감과 행복은 부의 축적만으로는 결코 충족될 수 없다.




내가 다니고 있는 미용실의 부모가 돈이 아주 많아서, 굳이 아이를 미용실에 데리고 올 필요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넓은 집,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보모, 풍족한 먹을거리, 아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들.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은 충분해 보인다. '부모가 없어도' 말이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부모의 역할까지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내가 이 미용실을 좋아하는 이유다. 비록 다른 곳에 비해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은 부족할 수 있지만, 그것을 실력과 책임감으로 메꿔내는 것이다. 아이가 정말로 행복하다고 생각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아이가 불안해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성인이 되더라도 이것 하나만큼은 알아주길 바란다. 자신의 부모가 맡은 일뿐만 아니라, 자식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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