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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May 07. 2022

부정적인 말을 달고 살면 안 되는 이유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흥미로운 피드 하나를 보았다. 커뮤니티 게시판에 한 사람이 올린 글이었는데 내용인즉슨 이랬다. 글을 쓴 사람은 회사에서 '피곤하다', '퇴사하고 싶다'라는 말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게 습관이라고 했다. 일이 터진 날도 피곤하다는 말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말을 지나가던 직장상사가 들은 것이다. 상사는 자신에게 회사에서 안 피곤한 사람이 어디 있냐는 말을 했고, 자신 또한 피곤하다는 말도 하면 안 되냐는 식으로 받아쳤다고 한다. 그러자 상사는 그렇게 피곤하면 회사를 안 나오면 되지 않겠냐며 퇴사처리를 해주겠다고 했고,  이후 사내 공지에 자신의 퇴사일과 송별회 날짜까지 잡히게 된 것을 보게 됐다고 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 과정들을 지켜본 직장동료들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글이 정말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글을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을 쓴 사람이 잘못했다는 의견이었다. 글쓴이의 주장대로라면 자신은 단지 피곤하다는 말만 했을 뿐이었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않았으며, 자신뿐만 아니라 회사생활을 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피곤함을 느끼지 않냐고도 말했다. 만약 글쓴이가 말한 게 모두 사실이더라도, 글쓴이가 잘못했다는 결론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처럼 보인다. 왜 그럴까?








앞서 언급한 글쓴이뿐만 아니라, 직장인들이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피곤하다', '퇴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내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때로는 힘들어도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 생각해보라. 당신이 피곤함을 무릅쓰고 일을 하는데, 옆에서 누군가 계속 '피곤하다'라는 말을 한다면 어떻겠는가? 굳이 떠올리지 않고 싶은 기억을 누군가가 자꾸만 캐물어 억지로 기억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을 타인의 혼잣말로 인해 강제로 느껴야 한다니. 얼마나 불쾌하겠는가! 결국 글쓴이의 잘못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굳이 느끼고 싶지 않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혼잣말을 통해 강제로 상기시켰다는 것이다.








말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입에서 나온 이후 금세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말은 누가, 어떻게, 어떤 상황에서 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다. 칭찬이나 응원과 같은 의미가 담긴 말들은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전달한다. 반대로 화를 내거나 잔소리를 하는 등 부정적인 말들은 상대방을 주눅 들게 하고 눈치 보게 만드는 등의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부정적인 말들은, 특정한 상대에게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형제가 여러 명 있는 집안의 경우, 똑같이 실수를 해도 유독 한 아이에게만 부모가 호되게 야단을 치기도 한다. 친구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에겐 한없이 친절하고 따뜻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연인 또는 특정한 친구에겐 유난히 차갑고 냉정하게 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정한 사람에게만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신뢰할 수 있고 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내는 입장에선 그것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단지 누군가가 남들보다 당신을 신뢰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만날 때마다 부정적인 감정이 담긴 말들을 들어야만 하는 게 당연할까? 예를 들어 자신은 솔직한 성격이라고 말하며 그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는 사람이 당신의 주변에 있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그 사람과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배려 없는 솔직함은 단지 무례함일 뿐이다.








사람은 누군가를 깊게 신뢰할 때, 차마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속 얘기를 꺼내곤 한다. 이것은 인간관계가 지속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서로가 가진 상처나 아픔 등을 공유하고, 이 과정을 통해 전보다 상대를 더욱 믿고 신뢰하게 된다. 하지만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내는 것은 이것과 다르다.




전자의 경우엔 서로가 각자의 아픔에 대해 공감한다면, 후자는 일방적인 공감만이 있을 뿐이다. 전자는 서로 대화가 오고 가며 상대방의 의견에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도 한다. 후자는 상대의 피드백엔 크게 관심이 없다. 힘들었던 부분들을 상대방의 공감으로 치유받고자 하는 욕구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보다 크게 작용한다. 전자와 후자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상대방의 힘든 감정에도 관심이 있느냐'다. 전자는 상대방의 힘들었던 부분들에 관심을 갖고 공감해주고 싶어 하지만, 후자의 관심사는 오로지 '나'다. 그래서 자신이 기분이 좋을 땐 상대를 찾지 않다가, 힘들어지는 순간이 오면 다시 상대방에게 연락을 해서 공감받길 원한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당신도, 나도 마찬가지다. 고통이 있기에, 우리는 일상 속 별 것 아닌 것들에도 행복을 느낀다. 평소엔 별생각 없다가도 배탈이 나서 하루 정도 고생을 하고 나면, 건강하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가끔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한 날이 있다. 뭘 해도 맘처럼 풀리지 않고, 세상이 오직 내게만 훼방을 놓으려고 작정한 것 같은 날 말이다.




그런 날에 당신이 느낀 감정들을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상대방이 당신을 위해 얘기를 들어준 것처럼, 당신 또한 그 사람을 위한 무언가를 해줘야 한다. 여유가 된다면 물질적인 선물도 괜찮다. 별일 없을 때 상대에게 연락해 안부를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중요한 건 당신이 상대방에게 느끼는 고마움을, 상대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행동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이런 것들을 소홀히 하며 점차 관계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행동해도 상관은 없다. 그 사람을 당신의 인간관계에서 잃어버리는 결과 또한 당신이 책임지는 것이니까 말이다. 결국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누군가에게 의존해서 풀려는 순간부터, 그 사람을 잃어버릴 각오 또한 해야 한다. 그만큼 사람의 부정적인 감정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을 보고 듣는 타인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말처럼, 좋은 말을 듣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먼저 좋게 말하는 것을 잊지 않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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